이제 스포츠에서 과학을 빼면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선수들이 취하는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다. 파퓰러사이언스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공동으로 스포츠 속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을 3회에 걸쳐 파헤쳐본다. 공동기획: 한국과학창의재단
축구경기는 주도권 싸움이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의 그리스전과 아르헨티나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 그라운드의 주도권을 잡으면 더 많은 슈팅 기회가 찾아와 경기를 손쉽게 풀어갈 수 있다. 이처럼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수들은 자신의 포지션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자로 잰 듯한 패스, 수비수 사이를 꿰뚫는 절묘한 센터링, 공격루트를 차단하는 압박 수비, 정확하고 강력한 슈팅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능력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이 있다. 바로 눈썰미다.
매의 눈을 가진 축구선수
흔히 한두 번 본 것을 잘 기억해내는 사람을 보고 눈썰미가 좋다고 한다. 축구선수, 특히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 중에는 눈썰미 좋은 사람이 많다. 7,140㎡에 이르는 넓은 경기장에서 순간적으로 수비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동료를 보고 센터링을 하거나, 노마크 상태의 동료를 찾아 패스를 하고, 시야 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슈팅을 날려야 하는 축구경기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998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KISS)이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빛반응 속도를 테스트한 결과, 이영표 선수는 0.247초, 김남일과 박지성 선수는 각각 0.300초, 0.321초를 기록했다. 세 선수 평균은 0.289초, 대표팀 전체 평균은 0.291초로 일반인의 0.377초보다 0.1초 가량 빠르다. 농구 0.332초, 배구 0.311초, 야구 0.308초 등 다른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의 평균치와 비교해도 그 차이가 나타난다.
이는 소리 반응 속도도 마찬가지다. 축구대표팀이 평균 0.251초로 농구(0.300초), 배구(0.267초), 야구(0.270초) 보다 0.01초 이상 빨랐다. 0.1초, 0.01초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축구경기에서 이 시간이면 골과 노골, 송곳 패스와 오프사이드가 갈린다. 이 점에서 축구선수들은 가히 매의 눈과 박쥐의 귀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주호 KISS 스포츠과학연구실 선임연구원은 "반응속도가 빠른 선수는 상대편의 압박수비에 대한 대처 능력이나 공간을 열어주는 등 2차 동작에 여유가 있다"라며 "때문에 긴박한 상황에서도 공을 뺏기지 않고 정확하고 효율적인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09년 K-리그 신인왕에 오른 강원FC의 간판 공격수 김영후 선수도 "경기 중 동료와 상대선수의 움직임을 읽고 판단하는 데 시각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며 "이러한 순간포착력은 경기력과 직결된다"고 밝혔다. 김 선수는 또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선수는 유니폼 색깔로 피아(彼我)를 식별한다"고 덧붙였다.
신전근, 굴곡근 황금비율 3:2
이렇듯 탁월한 순간포착력은 빠른 신체반응과 만났을 때 최상의 결과를 낸다. 특히 슈팅, 드리블, 2선 침투 등 대다수 동작이 하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축구는 하체 근육의 발달 정도가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등속성 근력측정기 사이벡스(Cybex)로 측정한 일반인의 평균 하체근력은 약 170~200 뉴턴미터(N·m)다. 반면 2010 K-리그 10라운드 베스트 수비수로 뽑힌 강원FC 하재훈 선수의 하체근력은 좌우측 다리가 각각 285N·m, 298N·m에 달한다.
일반인 대비 30~40% 높은 수치로 전 세계 톱클래스 선수들은 이보다 더 높은 다리 근력을 갖추고 있다. 차창일 강원FC팀 트레이너는 "대포알 슈팅, 빠른 순간스피드, 현란한 페인팅 등이 모두 다리 근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물론 무조건 다리 힘이 세다고 능사는 아니다. 축구선수는 슈팅과 순간 스피드에 필요한 폭발적 파워와 드리블 및 페인팅에서 요구되는 세밀함을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다리근육은 크게 앞쪽의 신전근과 뒤쪽의 굴곡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전근은 다리를 앞으로 뻗는 힘의 원천이 되는 '엔진'이며 굴곡근은 이 힘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고 세밀하게 제어 하는 '브레이크'에 해당한다.
스포츠과학 전문가들이 말하는 축구선수의 황금비율은 신전근과 굴곡근의 비율이 3:2일 때다. 이 비율에서 근 육 밸런스가 최적화돼 볼 컨트롤의 강약을 조절하며 슈팅, 패스, 드리블의 정확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이에 국가 대표팀이나 프로축구단에서는 선수들의 균형 잡힌 하체근육 발달을 위해 바벨을 들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스쿼트 훈련을 한다.
이와 관련 강원FC의 김영후 선수는 "부상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근육 단련에 더해 충분한 준비운동도 중요하다"며 "시합 전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의 폭을 넓혀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송주호 KISS 선임연구원은 "만일 신전근의 비중이 더 커지면 굴곡근이 신전근의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수 있다"며 "허벅지 뒤쪽의 근육이 뒤틀리거나 파열되는 소위 햄스트링 부상의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15분 간격 200㎖ 수분섭취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준비를 해도 한 경기당 10㎞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축구선수에게 근육의 피로는 불가피 하다. 후반전에 나타나는 운동능력과 체력의 저하, 다리근육 경련이 그 결과물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선수들은 경기 중 기회가 생길 때마다 수분을 섭취한다. TV나 경기장에서 이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목이 마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수분을 보충해 근육 피로를 풀고 90분간 지치지 않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다.
보통 축구 선수들은 경기 2~3일 전부터 수분 섭취량을 조절, 컨디션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일례로 강원FC 선수들은 경기 3일 전부터 조금씩 자주 수분을 섭취하는 연습을 한다. 1회 음용량은 우유팩 하나 분량인 150~250㎖ 사이다. 이렇게 경기 당일에 이르면 시작 1시간 30분~1시간 전 500㎖의 수분을 마시고 경기장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경기 중에는 연습했던 데로 약 15~20분 간격으로 150~250㎖의 수분을 꾸준히 복용한다.
강원FC 차창일 팀트레이너는 "장시간 유산소성 근력운동을 하는 축구경기에서는 수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줘야 운동능력 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며 "이때는 가급적 적은 양을 자주 마셔야만 복부 통증을 막고 의도된 효과를 얻 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분보충제는 단연 이온음료다. 90%의 물과 7%의 포도당, 3%의 전해질이 함유된 이온음료는 체액과 성분이 유사해 흡수가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과 달리 당분이 들어있어 입안에 잔물감이 남는다는 게 단점이다. 따라서 선수들은 기호에 맞춰 이온음료와 물을 약 3:1로 혼합, 점도를 낮춘 뒤에 마시거나 이온음료와 물을 번갈아서 섭취하기도 한다.
서영진 기자 artjuck@sed.co.kr
박주영은 지난 남아공 월드컵의 본선 조별예선 나이지리아와의 2차전에서 1-1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4분, 멋진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뜨리며 전 국민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이날 박주영은 자신이 만들어낸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우측 골 포스트를 보고 감아 차 골망을 흔들었다. 많은 득점 장면 중에서도 박주영처럼 수비벽과 골문을 벗어난 공이 마법에 걸린 듯 방향을 바꿔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프리킥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축구를 예술에 비유하는 것이 이해될만한 장면이다. 최근에는 어느 팀이든 박주영과 같이 프리킥을 차는 전담 키커가 존재한다. 가장 많은 선수가 애용하는 프리킥 기술은 일명 바나나킥이라 불리는 스핀킥이다. 공에 회전을 줘서 휘어지도록 차는 기술을 뜻하며 공의 궤적을 본 따 UFO 슈팅으로도 불린다. 이러한 스핀킥은 '마그누스 효과(Magnus effect)'를 이용한 묘재(妙才)다. 마그누스 효과는 1852년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마그누스가 포탄의 탄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으로 회전하는 공과 공기의 마찰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키커가 슈팅을 할 때 한쪽 방향에 회전력을 가하면 한쪽은 공기의 저항을 받아 압력이 높아지고 반대쪽은 상대적으로 압력이 낮아지면서 공이 압력이 낮은 방향으로 휘게 되는 원리다. 톱클래스 선수들의 경우 볼을 찬 후 9.15m 지점을 지나면서 공이 휘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마찰력이 발휘된 만큼 공의 속도도 떨어진다. 프리킥을 찰 때 공과 수비벽의 거리를 9.15m로 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비 선수들의 보호를 위한 일종의 안전거리인 셈이다. 오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자블라니보다 더 원형에 가깝게 설계된 축구공과 첨단과학기술이 접목된 기능성 축구화가 등장하며 축구공의 움직임이 한층 변화무쌍해질 전망이다. 때문에 손가락보다 더 섬세한 발묘기를 통해 만들어갈 멋진 드라마를 다시 한 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글_체육과학연구원(KISS) 선임연구원 송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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