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공간과 자원을 지속적으로 잡아먹는 콘크리트의 정글이다. 때문에 오늘날 도시개발의 최대 관건은 제한된 공간 내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도시를 건설·운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선진국들이 탄소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친환경 신도시의 개발에 잇달아 뛰어들고 있는 근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최근 발표된 기후변화 연구결과들은 선진국들에 더해 개발도상국들까지 환경 중심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눈을 뜨게 했다. 가뭄, 물 부족, 해수면 상승 등의 기후변화 문제로 인한 타격이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도시계획 실천
싱가포르는 지속가능한 도시계획을 실천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도시국가다. 지난 1965년 독립 이후 줄곧 제한된 공간에서 친환경 도시계획 실천 방안을 제시해 왔다.
인구 밀도 대비 국토 면적이 좁은 싱가포르로서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이 국가의 성장과 직결된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것. 인구 500만명의 소국인 싱가포르가 아시아 최고의 녹색도시로 성장한 배경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인구는 지난 1986년 이후 70%가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싱가포르의 녹지 또한 50%나 증가했다. 인구의 증가는 곧 녹지의 파괴를 의미함을 감안할 때 신기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 비밀은 자연난방시스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공원 조성에 앞장섰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술을 사용하고 관련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을 꾸준히 강화해 온 데 있다.
현재 싱가포르는 이에 더해 한층 효율적인 상하수 처리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바로 전기장 방식의 해수 담수화 플랜트다. 이는 전기장을 활용, 바닷물에서 염분을 분리해 담수화 하는 것으로 바닷물을 끓인 뒤 식히는 증발방식이나 삼투막에 통과시켜 염분을 제거하는 역삼투압 방식과 비교해 전력 소모량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올해 10월경이 플랜트를 시험 가동할 예정이다.
싱가포르와 인접한 중국도 환경친화적 도시 성장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땅은 넓지만 인구도 많아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 중 4분의 1이 중국 내에 있을 만큼 도시화 문제가 심각한 탓이다.
더욱이 석탄 연료 발전소를 통해 대부분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는 탓에 2006년 이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공장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동탄 신도시 프로젝트
이랬던 중국에서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베이징 올림픽 개최, 상하이 엑스포 개최 등을 앞두고 기존 도시 기반 시설의 에너지 효율성과 친환 경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
그 선두에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도시를 기치로 내건 '동탄 프로젝트'가 있다. 총 13억달러를 투자, 지난 2001년부터 동부 연안 동탄 섬에 2,600만평 규모로 건설되고 있는 동탄 신도시는 오는 2050년까지 5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친환경 도시로 거듭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하고 쌀겨, 볏짚 등의 바이오 연료를 난방에 활용한다. 그리고 섬 전체 면적의 65%가 생태 공원으로 조성된다. 뿐만 아니라 물길과 차로, 자전거 도로, 보행로 등이 구성되며 물길에는 수상택시가 띄워지고 차로에는 오직 유해배기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전기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자동차만이 달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동탄을 기화로 중국은 환경오염물질 배출 저감과 도시녹화에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다는 복안이다. 가장 먼저 난방연료 사용량 감소를 위해 단열재, 친환경 건축자재, 통풍 시스템, 친환경 설계·시공 등의 확대에 공을 들일 전망이다. 중국은 또 오는 2020 년까지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5%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3분의 1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탄소제로 도시의 원형, 베드제드
이 밖에도 여러 나라에서 '탄소 제로'를 향한 다양한 친환경 도시 건설을 시도 하고 있다. 그 효시는 영국. 영국은 지난 2002년 런던 남부 서튼에 세계 최초의 탄소 제로 마을인 '베드제드(BedZED)'를 건설했다. 현재 이곳 주민들은 석유, 도시가스 등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 지붕에 부착한 태양전지와 바이오가스 콘덴싱보일러를 통해 전기 및 온수를 얻는다.
또한 자연 환기 및 자연 채광 설계, 고성능 외단열 시스템, 고기밀 창호 등으로 냉난방 에너지를 줄이고 있다. 햇빛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 대부분의 집들은 남향으로 지어졌으며 벽면은 유리창으로 뒤덮여 있다. 유리창은 모두 삼중창을 채용, 열 손실을 최소화했고 두께 50㎝의 벽면에는 300㎜의 단열용 목재가 들어 있다.
특히 지하에는 지름 1.2m의 빗물저장 탱크가 설치됐다. 파이프를 통해 빗물을 모았다가 화장실 용수와 정원수로 재활용하기 위함이다. 현재 베드제드에는 총 100여 가구 가 거주 중에 있는데 다양한 자원절감 시스템 덕분에 인근지역의 일반 가정과 비교했을 때 전기 소비량 45%, 물 소비량 50%, 온수용 에너지 소모량 81%를 절감하고 있다. 재활용을 통해 쓰레기도 60%나 줄였으며 거주민의 86%가 유기농 식품을 구매하고, 39%는 직접 길러서 먹고 있다.
다만 초기에는 목재 폐기물을 태워 발전하는 열병합발전소(CHP)가 운용 됐지만 발전량이 적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2005년 가동이 중단됐다. 영국은 이처럼 베드제드의 운용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 2007 년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 정책의 장기 목표 중 하나로 정했으며 오는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모든 주택에 탄소제로를 의무화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산유국에 세워지는 마스다르시티
탄소제로도시에 대한 열망은 산유국도 예외가 아니다. 석유 자체가 유한한 자원인데다 이미 오래전부터 고갈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탄소제로도시를 '포스트 오일 시대'의 대책으로 삼은 것이다.
220억 달러가 투자되는 아랍에미리트의 마스다르시티가 그런 존재다. 지난 2008년 2월 마스다르 사막에 착공된 이 신도시는 인구 5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된다. 아직 초기단계임에도 첨단 친환경 기술의 적용으로 세계 탄소제로도시 개발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마스다르시티는 고 에너지 효율 시스템, 친환경 교통체계, 그리고 폐기물 재활용과 신재생에너지 사용 등의 방법으로 탄소배출을 제로화하도록 설계돼 있다. 도시 중심에는 대형 태양열발전소가 들어서고 시내 곳곳에는 풍력발전기가 운용된다. 또한 각 건물의 지붕과 외벽에 태양전지를 부착하는 한편 쓰레기의 50%를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소각하여 추가 전력 생산에 투입한다.
당초 오는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의 신재생에너지 기술 수준과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대한 문제로 전체적 공정에는 다소 수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2016년까지 550만㎡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2013년까지 36만㎡ 규모의 1단계 공정을 완료하는 수준으로 변경할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여 캐나다의 독사이드 그린, 호주의 모어랜드, 리비아의 그린마운틴 등 지구촌 곳곳에서 창의적 아이디어에 기반한 녹색도시 비전 실현을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그린홈 100만호 프로젝트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최근 몇 년 사이 탄소제로가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필두로 녹색산업을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삼는 전략을 제시하며 급속도로 분위기가 갖춰졌다. 각 가정에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그린홈 100만호 프로젝트'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그린홈이란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자체 조달함으로써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주택을 말한다. 기후와 환경조건에 따라 다양한 신재생에너지를 에너지 공급원으로 선택, 이용하며 그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린홈의 필수 조건이다.
그린홈은 동탄, 마스다르시티처럼 특정 도시나 지역을 탄소제로도시화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25%가 주택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치와 효용성은 탄소제로도시만큼 크다.
이에 따라 국내 대형 건설사들도 주택건축의 초점을 친환경 에너지 활용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물산은 지난 2008년 입주한 대구 래미안 아파트에 지열로 온수와 냉난방 에너지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설치했다. 또한 GS건설은 현재 청약을 받고 있는 서울 서교 자이 웨스트 밸리 주상복합 아파트에 도시가스 등의 연료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이때 발생하는 배기가스 폐열을 이용, 주민공동시설의 온수를 공급하는 소형열병합발전시스템을 설치했다.
이에 맞물려 각 지자체들의 탄소 제로 프로젝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시는 최근 '에너지 효율 강화 방안'을 발표, 에너지 사용량을 현행 1㎡당 500kWh에서 300kWh 미만으로 40% 가량 줄인다는 방침을 세우고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25% 감축, 에너지 사용량 15% 저감 및 신재생에너지 10% 보급을 목표로 설정했다.
환경 생각하는 창의적 아이디어
이와 관련 오는 11월부터는 친환경 전기버스가 서울 시내를 달릴 예정이다. 서울시는 일단 11월 시범적으로 15대를 보급하고 기술개발과 실용화 단계를 거친 내년부터 보급을 본격화해 오는 2020년까지 전체 운행 버스의 50%인 3,800대 이상을 전기버스, 나머지는 하이브리드 버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목표가 달성되면 연간 40톤 이상의 온실가스가 감축되며 2020년에는 감축량이 연간 14만톤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경북 구미시도 탄소 제로 도시를 선언했다. 구미시는 2005년 75만2,700톤이었던 탄소 배출량을 2015년까지 5%(3만7,635톤), 2020년까지 10%(7만5,270톤)를 감축하는 탄소 저감 목표를 세웠다.
이렇듯 녹색도시 건설을 위한 각국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탄소제로 주택과 도시를 현실화할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개발·적용도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적 전기·전자기업 지멘스의 경우 광합성의 원리를 이용한 건물의 특수 외관을 연구 중이다. 공장들이 굴뚝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 연료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거 및 사무용 빌딩들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메탄올 등의 물질로 변환한 뒤 연료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미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는 LED 가로등을 들 수 있다. LED는 소비전력이 기존 가로등의 절발 수준에 불과해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도시에서 설치가 확대되고 있다. 조명기기의 선도기업인 오스람은 LED의 차기주자로 효율성이 더 높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램프도 개발 중이다. OLED는 투명한 성질을 갖는 광원으로 낮에는 태양빛을 투과시키는 창문으로, 밤에는 조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도시의 빌딩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거대한 온실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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