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부터 5일간 모로코 아가디르에서는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연례총회가 열렸다. 88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IWC는 현재 포경과 고래자원의 보존에 관한 사항을 국제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특히 이번 회의는 오는 2011부터 10년 간 IWC의 정책을 결정할 'IWC의 장래'가 논의되는 자리여서 그 중요성은 다른 때보다도 컸다.
통제권을 상실한 IWC
IWC는 지난 1982년 총회에서 상업포경의 전면 금지를 규정,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후 남극해에서의 원양포경은 1985년 10월 1일, 연안포경은 1986년 1월 1일 이후 전면 금지 시켰다. 당시 노르웨이, 일본, 아이슬란드 등 전통적인 포경 우호국들은 이 조치를 극렬히 반대했다.
IWC는 이런 양 진영의 대립을 봉합하기 위해 지난 2007년 '합의에 의한 일괄타결'을 목표로 IWC의 개혁에 대해 논의해 왔다. 이번 회의의 목표는 향후 10년을 잠정기간으로 정하고 그동안 IWC의 통제권 밖에 있었던 포경활동을 IWC의 규율 하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IWC는 잠정기간 내 포경 물량의 단계적 감축을 이뤄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IWC는 '현행 포경국에게만 포경을 허용한다'는 등의 조항이 포함된 의장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포경 찬 성국과 반대국 모두가 의장안에 반대해 통과되지 못했다.
호주, 라틴아메리카를 위시한 포경 반대국들은 의장안 내용이 지나치게 포경국의 입장을 반영했다며 국가당 연간 1마리의 쿼터를 제시했다. 포경 찬성국가들 역시 포획 수의 지나친 감축을 지적하며 의장안에 반대했다. 특히 일본은 다른 포경 찬성국와 함께 상업 포경을 허용하되 국가별 쿼터를 연 400마리로 하자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회의 결과, 포경 찬성국과 반대국은 서로의 팽팽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앞으로도 IWC의 정책 결정에 상당한 난관이 예견되는 부분이다. 과연 포경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국가 간의 대립이 일어나는 것일까.
자원으로서의 고래
현재 상업 포경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물 등에 걸리거나 해안에 떠내려 온 고래 사체의 매매는 허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가격이 보통 수천만원을 훌쩍 넘어 1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선원들이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래 고기는 맛도 맛이지만 효능과 영양소로서도 최고의 식품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고단백, 저칼로리, 저지방 식품이며 미네랄과 비타민 등이 고루 함유돼 있어 성장기 어린이나 저혈압, 성인병 예방에 특히 좋다. 특히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노화를 방지하고 피부를 부드럽게 해주며 암과 저혈압에도 효과가 있다. 고래 고기를 즐겨 먹는 노르웨이인과 에스키모에게 천식, 동맥경화, 심혈관 질환 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고래의 지방, 즉 경유(鯨油)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자원이다. 경유는 엄밀히 말해 석유와 같은 연료는 아니며 화학적으로 액체 왁스에 해당한다. 색상은 그 상태와 고래의 종에 따라 밝은 꿀색에서 짙은 갈색 사이로 다양하다. 이 경유를 0℃ 이하로 냉각하면 스테아린, 경랍 등의 경지 성분이 굳어 결정화돼 분리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경랍은 양초원료·연고·화장크림 등의 경도증강 및 조정제로 쓰인다.
고래는 차가운 물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다량의 피하지방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두께가 무려 30㎝ 이상인 경우도 있다.
또한 혀, 내장, 뼈 등에도 상당량의 지방이 있어 고래 한 마리에서 나오는 지방은 대형 고래의 경우 보통 수십 톤 단위에 이른다. 인간이 상업적으로 대량생산한 첫 번째 동물유가 왜 고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활용성으로 인해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고래를 사냥해왔다.
고래 사냥 산업
가장 초기에는 작은 배를 타고 고래 무리 사이로 끼어들어 시끄러운 소리를 낸 뒤 고래를 해안으로 몰아가 죽이는 방식이었다. 이에 당시의 포경은 육지 인근의 연안에서만 이뤄졌고 포획되는 고래도 덩치가 작은 종에 한정됐다.
그러던 중 부표를 매달은 작살을 사용하는 포경선이 등장하며 고래잡이는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서기 9세기경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지대에 살던 바스크인들이 이런 방식의 포경에 가장 선구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또 이 기술을 바탕으로 훨씬 먼 바다에서 대형 고래를 사냥한 최초의 민족이기도 했다.
그러나 15세기경 이미 바스크 해안의 고래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도한 남획의 결과였다. 바스크인들은 활동 무대를 북극권까지 넓혔지만 프랑스와 스페인 간의 충돌로 바스크인들의 포경기업들은 무너졌다.
1864년에 이르러 노르웨이의 포경선장 스벤드 포윈 이 폭발식 포경 작살을 발명하면서 포경은 재차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된다. 과거에는 수십개의 작살을 명중시켜야 겨우 한 마리의 포경에 성공했지만 이 폭발식 작살을 사용하면 단 한 발만으로 포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초에 노르웨이에서 고래 해체용 기계설비를 갖춘 포경선인 이른바 '공장선'을 선보여 포경과정의 효율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지나친 남획으로 인해 전 세계의 고래 수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바로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지난 1946년 IWC가 발족된 것이다.
남획의 폐해
유럽인들이 포경에 열을 올리던 시기인 16~20세기에 인간 이 사냥한 고래의 수는 엄청났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만 해도 매년 전 세계적으로 5만 마리의 고래가 포경됐다.
현재 지구상의 고래 총 개체수는 대략 200만 마리 정도며 고래는 한 배에 새끼를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속도의 남획인지 체감할 수 있다. 고래의 멸종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예고된 것이다.
그리고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고래는 실제로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긴수염고래, 흰돌고래, 향유고래 등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남극의 대왕고래와 북동 태평양의 귀신고래가 처해있는 상황은 유독 심각하다. 지구상의 대형고래 13종 중에서 최소한 5개 종이 멸종 위기종인 셈이다.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에 따르면 18세기에 들어와 대서양의 귀신고래는 사실상 멸종했다고 봐도 될 정도라고 한다.
사실 고래의 적은 포경만이 아니다. 어부들의 그물, 대형 선박의 프로펠러 그리고 기타 여러 인간들의 활동과 환경오염 등이 고래의 생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고래의 멸종이 "고래 고기를 많이 먹지 못하겠 구나"하고 아쉬워하며 넘길 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고래는 해양 생태계에서 명실상부한 최종 포식자에 위치한다. 그 수는 적지만 왕성한 포식력과 천적의 부재라는 두 가지 조건을 이용해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균형을 맞춰 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즉, 고래가 멸종한다면 중간 포식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되며 이로 인해 먹이사슬 피라미드 아래 단계에 있는 생물들이 숫자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중간 포식자의 개체 감소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다.
상업적 포경 금지의 효과
이미 과거에 국지적 남획으로 인해 고래 개체 수가 감소했을 때에도 해당 지역의 어민들이 "고래 떼가 몰고 다니던 물고기가 줄어들었다"며 포경 선주들을 상대로 항의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일이 전 세계의 바다에서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안 그래도 다른 물고기들 역시 지나친 남획으로 어족 자원량 감소를 걱정하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IWC는 고래 개체수의 급격한 감소와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응하고자 지난 1966년 혹등고래, 1967년 대왕고래에 대해 포경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에 IWC의 권고를 받아들인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전통적인 포경국들 조차 포경선의 남극해 원정을 중지했다. 이를 거쳐 IWC는 결국 1986년 모든 상업적 포경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다른 국제기구들이 흔히 그렇듯 IWC도 현재 회원국들에게 자체 결의안의 이행을 촉구할 강제수단이 없다. 그런 점이 IWC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IWC의 강제적 고래 보호조치에 힘입어 일부 고래 종의 개체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도 반가운 사실이다.
실제로 IUCN의 고래전문가 그룹에 따르면 남방 긴수염 고래와 여러 해역의 혹등고래, 북태평양 동부의 귀신고래, 북태평양 동부 및 북대서양 중부의 대왕고래 등에서 개체수 증가가 나타났다. 또한 그 외에 다른 고래, 특히 밍크고래는 아직도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업 포경을 과거처럼 전면 허용하면 경제 논리가 환경보전 논리를 압도하게 될 것이라는 게 포경 반대국들의 입장이다. 때문에 포경 찬성국과 반대국은 과연 어떤 종의 고래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일례로 포경 반대국들은 긴수염고래를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하는 데 찬성하지만 일본은 긴수염고래의 수가 1978년 9,000마리에서 2002년 2만8,000마리로 늘어났다고 주장하며 이를 반대한다. 또한 일부 북대서양 국가들도 최근 들어 긴수염고래를 더 이상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멸종 위기종 명단이 부정확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비판에는 멸종 위기종을 축소하고 포획 쿼터를 늘려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얄팍한(?) 속셈이 숨겨져 있음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포경 실태와 우리의 현실
실제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일본 등은 IWC 회원국임에 도 불구하고 과학연구라는 명목을 빌어 상업 포경이 금지된 1986년 이후에도 계속 포경을 해오고 있다.
특히 1986년 이전까지 매년 2,000마리 이상의 고래를 포경해 오던 일본은 1986년 이후 그 수가 크게 감소, 1987 년경 300마리에 불과했지만 서서히 포경량이 늘어나 지난 2006에는 무려 900마리의 고래를 자칭 과학연구용으로 포경했다. 이렇게 지난 1988부터 2009년 사이에 일본이 포경한 고래의 수는 북반구에서 2,984마리, 남반구에서 9,409 마리나 된다.
다른 나라들도 과학연구 목적의 포경을 하지만 일본처럼 많은 고래를 잡는 경우는 없다. 아이슬란드는 1986년 이후 많을 때에 연간 100마리 내외, 2007년에는 단 39마리를 포경하는 데 그쳤으며 노르웨이도 지난 2008년 885마리의 쿼터를 허용 받았음에도 실제로 포경한 숫자는 그 절반 수준인 484마리 뿐이었다.
과학연구를 위해 1년에 무려 900마리나 되는 고래가 필요하다는 일본의 주장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며 IWC의 규제를 피해 자국민에게 고래 고기를 팔기 위한 수법에 불과하다. 석유나 기타 자원에서 얻은 합성 소재에 의해 고래 기름의 입지는 상당히 약해졌지만, 그래도 고래 고기를 꾸준히 찾는 자국민들의 입맛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필요하고 그 결과 이러한 편법까지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고래 연구는 어떨까. 활발한 연구 활동을 통해 고래와 바다 생태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국내 고래 연구는 초라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에 고래연구소가 생긴 것은 극히 최근인 지난 2006년이며 그나마 정규직 연구원의 수는 단 3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IWC 총회의 개최와 때를 함께 해 국내에서도 포경에 대한 찬반양론이 들끓었다. 포경 찬성론자들은 그동안 의 상업포경 금지로 인해 '포동포동 살찌워진' 한국 앞바다의 고래 고기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론자들은 고래를 먹거리가 아닌 관광자원으로서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고래 연구에 충분한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은 현 상태, 즉 고래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가 거의 수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적인 합의만으로 섣불리 행보를 정하는 것은 반드시 지양해야할 일이다. 그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우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이 향후 진로를 놓고 진통을 벌이는 IWC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