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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뒤흔든 구제역의 정체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에 구제역(口蹄疫)이 창궐해 큰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구제역은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감염 동물은 살처분 되며 인근지역 가축들도 이동이 제한된다.

또한 소고기, 돼지고기 등 우제류(偶蹄類) 동물들의 소비가 급감하며 축산농가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한 구제역은 지난 2000년부터 2002년에도 국내에 대유행한 바 있는 등 잊어질 만 하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단골손님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구제역 발생이 잦은 것일까. 그리고 발병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2010년發 구제역 파동

지난 1월 7일 경기도 포천의 한 젖소 농가에서 구제역 의심 증세를 보이는 젖소들이 발견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검사한 결과, 확진 판정이 나왔다. 이 농장에서 사육하던 185마리의 젖소 중 6마리가 구제역에 걸린 것.

이를 시작으로 지난 2002년 이래 8년 만에 국내에 다시 구제역이 창궐했다. 작년 말 우리나라가 구제역 청정국으로 지정된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5월 10일 현재 구제역 발생은 경기 포천·연천에서 6건을 비롯해 인천 강화, 경기 김포, 충북 충주, 충남 청양 등 총 11 건에 달한다.

이로 인해 살처분된 가축도 450여 농가에서 무려 5만6,000여 마리에 이른다. 이를 금액으로 따져 보면 살처분 보상금 780억원과 생계안정자금, 경영안정자금, 가축입식자금(이자보전) 등 2,000억원을 더해 총 3,000억원에 육박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살처분이 결정된 농가 중에는 직접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보다 수의사로 인한 2차감염이나 발생지 반경 500m 내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예방차원에서 이뤄진 사례가 더 많아 축산농가의 애간장을 녹였다. 여기에는 우량 종자나 고능력 젖소까지 포함돼 향후 축산 연구와 우량축 보급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되고 있는 상태다.

일례로 충남 청양의 축산기술연구소에서 기르던 토종 칡소 14마리와 씨수소, 씨돼지 1,500여 마리가 살처분 됐기도 했다. 칡소는 국내에 1,000여 마리만 사육되고 있어 UN 식량 농업기구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던 품종이다.

구제역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행락철인 5월은 전통적으로 돼지고기 소비가 늘어나는 기간이지만 전국 돼지고기 평균경락값이 1㎏당 5월4일 4,453원, 6일 4,382원,7일 4,319원, 10일 4,119원, 11일 4,001원으로 연이은 하락세를 보이며 이중고를 안겼다. 또한 살처분 농가는 가축을 새로 구입한 뒤 실질 소득을 올릴 때까지 2년여가 걸린다는 점도 경제적 손실함께 심리적 상실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구제역의 피해는 우리만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이웃나라인 일본 역시 현재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4월 9일 일본 규슈의 미야자키현에서 구제역이 확인되는 등 146건이 확진됐다. 때문에 12만5,266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해야 하는 지경이지만 5월 20일 현재 살처분된 가축은 2만9,000마리에 지나지 않는 등 살처분 속도가 늦어지면서 구제역 확산 방지에 급급해 하고 있다.






우제류 동물들이 취약

구제역은 영어 'foot-and-mouth disease'의 약자를 따 FMD로도 불린다. 주로 우제류 동물들이 잘 걸리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전염성과 치사율이 매우 높다. 구제역에 취약한 우제류로는 소, 물소, 돼지, 양, 염소 등의 가축과 영양, 바이슨 등의 야생동물을 들 수 있다.

실험실에서는 인공적 방법으로 쥐와 생쥐, 닭도 감염될 수 있지만 자연 조건 하에서 감염된 사례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간은 신체나 의복 등을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를 전파할 뿐 감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구제역도 포천 농장은 외국인 근로자가 고향에서 묻혀 들어왔고 강화의 구제역은 농장주가 중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유입된 것으로 판명됐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크기 25-30nm의 피코르나 바이러스로 변이도와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는 게 특징이다. 잠복 기간은 보통 2~12일 사이며 고열, 구강내 수포, 거품 및 침의 과다 분비, 발의 수포 및 수포 파열에 따른 절뚝거림이 주된 증상으로 나타난다. 바이러스 성체의 경우 심한 체중 감소를 일으켜 수개월 동안 회복되지 않기도 한다. 수컷은 고환이 부어오르기도 하며 젖소는 우유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다.

구제역의 혈청형은 O, A, C, SAT-1, SAT-2, SAT-3, 아시아 1형 등이 있는데 O형이 가장 흔하다. 올해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도 포천을 제외한 강화, 충주, 청양이 모두 O 형이었다.



문제는 현재까지 구제역의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일단 구제역이 발생하면 감염 동물의 격리와 도 축, 축산물 수출 금지 등의 조치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것이 유일한 대처법이다. 우리나라는 구제역 발생지대 반경 500m 내의 우제류를 모두 살처분하며 반경 10㎞의 경계지역, 3㎞의 위험지역 내에서는 우제류의 이동을 제한한다. 구제역의 종료는 살처분 완료 후 3주 뒤에 혈청검사를 수행, 이상이 없을 때 이뤄진다.

백신으로 예방 가능

물론 예방백신은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바이러스처럼 구제역 바이러스 또한 변이를 거듭해 각 혈청형에 맞는 백신을 제작·접종해야 한다.

게다가 구제역 바이러스는 한 혈청형 내에서도 여러 유형으로 나뉘며 이들 변형 바이러스의 뉴클레오티드 배열은 원래 유전자와 많게는 30%나 차이가 난다. 즉 구제역 백신은 바이러스 유형에 맞춰 완전히 새로 개발해야 하며 유효기간도 수개월에서 수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구제역 백신과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은 이 백신이 세계 최초의 유전자 조작 백신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초기의 구제역 백신은 보통 죽은 구제역 바이러스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 백신이 오히려 구제역 발병을 일으키는 결과가 많이 발생했다.

이에 1970년대 들어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단 일 주요 단백질만을 사용해 백신을 개발하는 법을 발견했다. 그런데 충분한 양의 백신을 제조하려면 그만큼 충분한 단백질이 필요했고 그 해법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단백질 을 계속 생산하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이 백신의 완성을 발표한 것은 1981년 6월 18일이었다.

현재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각국의 구제역 청정도를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구제역 발병국, 구제역 백신 이 사용 중인 청정국, 백신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구제역 청정국이다. 이 중 구제역 백신의 사용이 없는 청정국의 지위를 얻으면 축산물 수출 시장에서 엄청난 이득을 점할 수 있다. 캐나다, 미국, 영국 등 주로 선진국들이 여기에 속해 있는데 이 지위의 유지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그 외의 국가들은 수출에 적지 않은 핸디캡을 안아야 한다. 수출 가축에 대한 통상의 혈액 검사로는 구제역 감염여부의 구분이 극히 곤란하기 때문이다. 설령 구제역이 발병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국가에서 수입을 꺼려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구제역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인간도 구제역 감염 동물과의 접촉을 통해 구제역에 감염될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무시해도 좋을 만 큼 드물며 사람과 사람 간의 대인 감염 역시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영국에서 가장 최근에 보고된 인간 구제역 발병 사례가 지난 1966년일 정도다. 유럽대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에서도 인간 구제역은 극소수만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위산과 접촉하며 사멸하기 때문에 식도로 넘어가기 이전이 아니라면 구제역에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먹어도 구제역에 걸리지 않는다.

만일 사람이 구제역에 감염된다면 불안감, 고열, 구토, 구강점막의 적색 궤양성 병변, 피부 궤양성 병변 등의 증세가 발현된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난 1884년 영국에서 어린이 2명이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유를 마시고 사망하기도 했다.

종종 아이들에게서 잘 발병하며 대인 감염율도 높은 수족구병이 구제역과 증상이 비슷해 혼동을 주지만 수족구병은 콕사키 A바이러스가 감염원이다. 구제역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피코나비리데 과에 속하지만 장내 바이러스라는 점에서 구제역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르다.

이처럼 구제역은 대인 감염율은 매우 낮지만 동물 간의 감염 속도가 빠르고 치료제도 없는 급성 전염병이다. 축산농가의 피해를 막고 국민보건 증진을 위해 예방과 확산방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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