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여행이나 입학식,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사진을 찍을 일도 거의 없었다. 사진 촬영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행사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카메라는 더 이상 사치품도, 귀중품도 아니다.
디지털카메라 한대쯤 보유하지 않은 가정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생활필수품이 됐다. 하지만 카메라가 무려 3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문명의 이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는 현대인이 선호하는, 그리고 가장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영상문화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팝콘과 음료수를 마시며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활력이 재충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말이면 전국 극장가에 몰려드는 인파는 이 같은 영화의 힘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에 맞춰 영화도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로 진화를 계속했다. 지금은 현실감 넘치고 스펙터클한 화면으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이 같은 영화의 발전을 보면 미래의 영화, 미래의 영화관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재 영화와 영화관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장밋빛 비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관론이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미래에는 영화관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비관론자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과거의 영화관에서 느꼈던 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벤허, 애수, 시네마천국, 대부처럼 뭉클한 감동과 잔잔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영화들이 사라졌으며 죠스, 쥬라기공원, 인디애나존스와 같은 가족이 즐길 만한 대형 영화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근거다.
이에 따라 영화가 영상문화의 왕좌를 차지하며 만인의 사랑을 받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시네마 천국'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1990년대 중반부터 관객의 분화 현상이 일어났으며, 다양한 디지털 영상매체의 출현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TV, 컴퓨터, 휴대폰,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영상기기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영화관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미국과 유럽의 경우 2000년대 초부터 이 같은 현상이 확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영화 전문가들은 이미 1990년대 중반 "영화 탄생 100년이 되는 1995년에는 안타깝게도 영화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심지어 1990년대 말 미국의 한 비평가는 '영화관의 죽음'을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
과연 영화는 시대의 조류에 밀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가게 될까.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격언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영화가 위기를 맞았을 때 예전부터 시도돼 온 방법이 있는데, 이것이 위기탈출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 극복의 열쇠는 차별화
사실 영화는 1950년대에도 큰 위기를 겪은 바 있다. TV의 보급 때문이었다. 이때 영화가 선택한 활로는 한층 증폭된 영상과 음향을 구현함으로써 다른 매체들이 제공할 수 없는 영화만의 독특한 경험을 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시네마스코프 혹은 비스타비전으로 알려진 70mm 필름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시스템이 시도됐다. 벤허,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이 이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미국 할리우드의 돔형 영화관인 시네라마도 당시 이 같은 배경에서 세워졌다. 이 점에서 아이맥스와 3차원(3D) 입체영화는 위기에 빠진 영화계의 구원투수로 지목된다.
먼저 아이맥스는 '이미지 맥시멈'의 약자로 최대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즉 종래의 영화필름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고해상도의 영상을 기록할 수 있는 일종의 필름 포맷이다. 이 때문에 아이맥스 영화는 일반 영화관보다 월등히 큰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그만큼 관객이 느끼는 현실감이 탁월하다.
아이맥스는 기술적 혁신이 수반된 영상기법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엑스포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방식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 당시 다수의 영사기로 여러 개의 스크린에 영사하는 아이맥스 영상기술이 처음 선보였다.
이때만 해도 1대의 영사기로는 넓은 화면을 모두 영사할 수 없어 여러 대의 영사기와 스크린이 동원됐다. 하지만 1970년 오사카 엑스포에 이르러 1대의 영사기로 1개의 스크린에 영사하는 방식이 나타났다. 그리고 1971년 토론토 엑스포에서 처음으로 현재의 아이맥스 방식이 출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아이맥스 극장은 흔히 반원형의 천정구조를 갖고 있는데, 돔형 아이맥스 장치는 1973년 미국 샌디에이고의 발보아 공원에 처음 설치됐다. 그리고 최초의 돔형 아이맥스 극장은 1986년 밴쿠버 엑스포 때 캐나다관에 세워진 후 지금도 밴쿠버의 상징물 역할을 하며 관객을 맞고 있다.
이들 극장은 입체영화를 상영하면서 아이맥스 3D 돔, 아이맥스 솔리도라고도 불렸다. 특히 1992년 스페인 세빌리아 엑스포에서는 HD급 고화질 아이맥스 시스템이 나타났고, 1993년 대전 엑스포 때도 돔형 아이맥스 영화관이 지어졌다. 이후 아이맥스 극장은 점차 상업적 용도로 건설돼 런던, 파리 등 대도시에서 매력적인 영상물 상영관이자 특별한 문화체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320개 아이맥스 극장 존재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는 이렇게 건설된 320개의 아이맥스 극장이 존재하며, 50% 정도가 미국에 있다. 이중 가장 큰 스크린을 보유한 곳은 호주 시드니의 달링 항구에 있는 LG 아이맥스 극장으로 크기가 8층 건물 규모인 35.73×29.42m나 된다.
국내의 경우 CJ 엔터테인먼트의 CGV 영화관이 서울 용산과 왕십리, 부산 센텀시티, 일산, 인천, 대구점 등에 아이맥스 시설을 갖춰 놓고 있다.
그동안 개관한 국내 아이맥스 극장 중에는 부산 센텀시티의 스크린이 가장 컸는데,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 CGV 극장의 스타리움관이 나타나면서 이를 능가하게 됐다. 이곳의 스크린은 31.38×13m로 일반 극장의 스크린 폭 12m와 비교해 2.6배 정도 넓다. 현재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상영 중이다.
이 같은 아이맥스 영화들은 심해, 알프스, 우주 등 대자연의 모습이나 판타지, 공포물,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들은 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 작했다. T-렉스(1998), 귀신의 성(2001), 판타지아 2000과 라이온 킹(2004) 등이 그것. 근래 영화로는 슈퍼맨 리턴즈(2006), 배트맨 비긴즈(2005), 다크 나이트(2008)가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아이맥스 극장도 2007년부터 필름 방식을 탈피, 디지털 영사기를 이용하는 디지털광학처리(DLP)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아이맥스 HD, 아이맥스 48 프레임 방식도 있다.
그렇다면 증폭된 이미지와 사운드로 관객을 압도하는 아이맥스 극장이 미래의 영화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이것이 실현되려면 콘텐츠의 확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이맥스용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 때문에 아이맥스 극장에서 쉬지 않고 상영할 수 있을 만큼 영상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관람료가 고가라는 점도 부담이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아이맥스 극장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에 세워졌던 영화관은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용도 변경됐으며, 비엔나의 아이맥스 영화관은 호텔로의 개조가 진행 중이다.
3D 입체영화와 양방향 영화
3D 입체영화는 2D 영상에 비해 깊이감과 원근감까지 제공돼 관객들이 느끼는 현장감과 몰입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실 입체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과거 무성영화 시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화가 이루어진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미래의 영화에 가장 근접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관련기술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몇몇 영화 학자들과 할리우드 관계자들도 미래의 영화가 3D에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실례로 애니메이션 영화감독이자 드림 웍스 애니메이션의 최고경영자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난 3D에서 영화의 미래를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디지털 3D, 리얼 3D와 결합한 아이맥스 3D 영화들이 속속 제작되고 있다. 국내에 개봉한 아바타, 몬스터 vs 에이리언 등을 포함해 지난해에만 할리우드에서 10여 편의 3D 영화가 만들어졌다.
올해에는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어 할리우드의 3D 영화 편 수가 전년대비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평해전을 주제로 한 곽재용 감독의 '아름다운 우리'가 3D 로 제작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3D 영화는 또 다른 영생매체에도 영향을 미쳐 입체안경을 쓰지 않고도 볼 수 있는 3D TV가 개발됐으며, 내비게이션용 지도와 게임 등에도 3D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양방향 영화도 미래의 영화로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양방향 영화는 온라인 게임에서 자주 시도되고 있는 것처럼 영화의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하면 동일한 영화라도 관객별로 독특한 이야기 서사방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영화 내용과 관객의 선택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아이맥스 영화나 3D 영화, 혹은 상호작용 영화가 미래의 영화일까. 분명 이들로 인해 새로운 영상체험의 폭이 확대되겠지만 오직 이들만이 영화의 미래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일례로 아이맥스 영화는 확대된 이미지와 증폭된 사운드의 생생한 체험을 주는데, 이는 달리 생각하면 이미지와 사운드의 무차별 폭격이기도 하다. 아이맥스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지의 바다에 빠지고, 굉음의 도가니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2002년 런던 아이맥스 극장에서 '판타지아 2000'을 볼 때 20분 정도 지난 후부터 나가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스크린에 대해 다소간의 거리를 갖고 각자 나름대로 '상상하고, 느끼며, 감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미지의 공습 한가운데 갇혀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자는 관객들이 상상을 할 여유조차 없이 오감과 감성, 이성을 온통 짓누르는 영상체험은 몰아적(沒我的), 비이성적 상황을 조성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게임중독이 가져오는 폐해와도 유사하다. 이 때문에 필자처럼 거부감을 갖는 관객층이 나타날 개연성이 충분하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빠르게 발전되는 디지털 기술에 근거해 영상과 음향의 질이 대폭 향상된다고 해도 그것은 영화의 기술과 상영 부분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 영상 기술만 배려되고 영화 콘텐츠의 스토리와 그 전개방식에 대해서는 고려가 없다는데 한계가 있다.
기술적 발전이 곧바로 문화상품 시장의 확대를 가져온다는 것은 속단이고 단순한 결론이다. 기술적 변화가 문화적 변화를 유발하기는 하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니며, 기술의 혁신과 문화의 변화는 같이 숙고돼야 할 문제다. 게다가 21세기에 달라지는 관객의 취향과 감각, 문화의 변화 같은 요소들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영화와 게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은 항상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 존재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의 변화는 '매체와 관객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는 명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글_이상면 한양대 미디어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zenitt@naver.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