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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으로 만연된 연구결과 조작

허위연구 조기 발견하고 예방하기 위한 과학자와 연구자들의 노력 가시화

앨라배마 버밍햄 대학의 전 외과의사인 주디스 토마스와 후안 콘트레라스는 조직거부방지약품, 즉 면역억제제의 성능을 평가하는 여러 가지 연구를 실시했다. 붉은 털 원숭이의 신장 하나를 다른 원숭이의 것으로 대체한 이후 한 달 후에는 나머지 신장마저 제거하는 연구도 그 중 하나.

일반적으로 동물에게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면 해당 동물의 면역체계는 새로 이식된 장기를 이물질로 간주해 공격하게 된다. 이를 거부반응이라고 하는데, 거부반응이 심해지면 이식한 장기의 기능 저하는 물론 이식한 장기의 손실까지 초래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써 장기를 이식한 보람이 없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조직거부방지약품을 투여하는 것이다. 토마스와 콘트레라스가 실시한 연구는 이 같은 조직거부방지약품의 성능을 실험해보기 위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된다.

우선 붉은 털 원숭이의 신장 하나를 다른 원숭이의 것으로 대체한 후 조직거부방지약품을 투여한다. 그 결과 신장의 기능 저하가 나타나지 않으면 일단 조직거부방지약품의 기능이 잘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장은 하나만 있어도 생명유지에 지장이 없다. 또한 이식 후 1개월은 급성 거부반응이 가장 잘 나타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원래 있던 나머지 신장도 제거하게 된다. 즉 이식된 신장만 가진 상태에서 급성 거부반응 또는 거부반응으로 인한 신장 기능 저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직거부방지약품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토마스와 콘트레라스는 이식한 장기가 붉은 털 원숭이의 몸에 잘 적응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직거부방지약품의 효과가 입증됐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썼다. 하지만 올 7월 미 연방연구윤리국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70마리의 실험동물을 사용하면서 그 중 32마리에게서 원래 있던 신장을 다 제거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의도적으로 이 같은 오류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실험에 사용한 조직거부방지약품의 효능은 믿을 수 없게 됐다.
더군다나 이 연구는 미 국민의 혈세로 진행된 것이었다. 미 국립보건원이 무려 8년간 2,300만 달러를 투입한 것.

최근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고의적인 연구결과 조작은 드문 일이 아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의 다니엘 파넬리가 1만1,351명의 과학자와 연구자, 그리고 그들이 쓴 연구 논문에 대해 18회의 개별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중 2%가 연구 데이터를 1번 이상 위조·변조·날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3분의 1 정도의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기존 결론과 모순되는 연구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는 등 정도가 조금 약한 편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파넬리의 연구 보고서를 접한 과학계는 동요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저의 연구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연구결과의 고의적 조작은 기존의 학설에 어긋나는 결과를 무시하거나 완전한 거짓말 또는 과학적 기록을 곡해함으로서 부실한 이론이나 약품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하게 된다. 물론 연구예산도 낭비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파넬리의 연구 보고서에서는 연구결과 조작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윤리의식 실종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연구기관이 연구의 질(質)보다 양(量)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문제 삼기도 한다.

실제 미네소타 헬스파트너스 연구재단의 허위연구 전문가인 브라이언 마틴슨에 따르면 대학과 연구소에서는 연구실적을 잣대 삼아 과학자와 연구자의 교수직 수여 및 진급을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파넬리의 연구 보고서가 나온 이후 학계에서는 해결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미시간 대학의 연구윤리프로그램 부장인 니콜라스 스테넥은 같은 연구영역에서 일하는 과학자와 연구자들이 훌륭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심이 가는 사진을 잘 관찰만 해도 허위연구를 가려낼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지난 2005년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자인 황우석 박사는 똑같은 세포 주 사진을 서로 다른 세포 주를 찍은 사진인 양 속여 학술지 두 곳에 게재했다가 연구 데이터 날조가 들통 났다. 현재 연방연구윤리국은 과학자와 연구자들이 직접 동료들의 논문에 들어간 사진의 포토샵 위조 여부를 검사하는데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제공하고 있다.

스테넥의 말에 따르면 과학자와 연구자들을 사립탐정으로 활용하자는 발상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연구는 자체 규제가 있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스테넥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동료 과학자와 연구자들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상당수 허위연구 사건은 사전에 적발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허위 연구사건이 적발된 이후 토마스와 콘트레라스는 사임했다. 하지만 강도가 덜한 허위 연구사건은 처벌받지 않은 채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논문의 출간 과정에서 연구결과 조작이 발견되면 편집자들이 논문 게재를 거부하게 되지만 이 경우에도 이 같은 허위 연구사건을 보고하지는 않는다. 연구결과를 조작한 과학자나 연구자들로부터 역(逆)고소를 당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스테넥은 “이는 자체 규제 위반”이라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욱 철저한 연구윤리 교육과 적합한 연구수행 역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시카고 대학의 전산생물학자 안드레이 르제트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많은 과학자와 연구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위 연구를 저지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위연구 전문가 마틴슨이 3,000명의 과학자와 연구자를 상대로 지난 2007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들 역시 선배들이 출세하는데 사용한 안이한 방식을 답습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허위연구 방지를 위한 다음 단계는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그 실태가 파넬리의 추측보다도 더욱 나쁜지 살피는 것이다. 과학자와 연구자의 사회적 지위는 분명히 높다. 하지만 그 지위를 유지하려면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악습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

파넬리의 연구 보고서에서처럼 허위연구가 만연하고 있다면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그저 익명의 설문용지에 답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같은 실태를 정기적으로 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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