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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무기 개발, 어디까지 왔나?

영화 지.아이. 조-전쟁의 서막을 보면 에펠탑을 무너뜨리는 나노무기가 등장한다. 바로 나노마이트(nanomite)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나노마이트는 원래 암 치료용으로 개발된 나노입자 크기의 로봇이지만 무기로 개조된다. 미사일 탄두에 장착된, 초록색 액체처럼 보이는 이 무기가 활성화되면 쇳조각을 비롯해 무엇이든 무서운 속도로 먹어치운다.

나노기술의 잠재력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 미국의 나노기술연구소 ISN은 지형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것은 물론 기후에 따라 병사의 체온을 조절해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난로가 필요 없는 전투복을 개발하고 있다.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나노기술이 군사용으로 본격 사용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타고난 재능과 강인한 결단력을 지닌 특수부대 대위 듀크는 가공할 파괴력의 최첨단 무기를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들로부터 공 격을 받아 팀원들을 모두 잃는다. 최첨단 무기를 노리고 공격해 온 이들은 인류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군단 코브라.

전 세계를 파괴하려는 코브라의 계획에 앞장서는 치명적인 매력의 배로니스, 그리고 선과 악의 구분 없이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는 비밀병기 스톰 새도우에 맞서기 위해 세계 최정예 멤버들만 모인 특수군단 지.아 이. 조(G.I. Joe)가 투입되고, 듀크 대위 역시 이에 합류한다. 이집트의 사막에서부터 극지의 빙하에 이르기까지 지.아이. 조와 코브라 군단의 격돌이 시작되는데….

최근 개봉된 영화 지.아이. 조- 전쟁의 서막에서는 나노기술의 힘이 막강하게 묘사 되고 있다. 코브라 군단의 군수기업 MARS 는 나노기술로 사람의 얼굴을 바꾸고, 독사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하며, 심지어는 나노 마이트(nanomite)라는 나노무기를 사용해 도시를 파괴한다.

나노마이트는 원래 암 치료용으로 개발된 나노입자 크기의 로봇이지만 무기로 개조된다. 미사일 탄두에 장착된, 초록색 액체처럼 보이는 이 무기가 활성화되면 쇳조 각을 비롯해 무엇이든 무서운 속도로 먹어 치운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는 나노로봇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직전까지 몰고 가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 나노로봇은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를 분해, 자기복제에 필요한 물질을 충당한다.

물론 이 같은 나노무기와 나노로봇의 기반은 나노기술이다. 나노기술은 얼마만 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나노무기 개발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 것일까.

나노기술의 잠재력

나노는 난장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나노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0의 -9승, 즉 10억분의 1을 의미한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다.

1나노미터는 대략 원자 3~4개가 배열된 극히 미세한 크기, 즉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1~100나노미터 범위인 재료나 대상에 대한 기술을 나노기술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DNA, RNA, 단백질 등도 나노기술의 범주에 든다.

참고로 DNA의 이중나선은 폭이 2나노미터에 불과하다. 이 같은 나노 단위의 물체는 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급 이상의 물체인 벌크 소재에 없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다.

탄소의 경우를 보자. 우리가 흔히 접하는 탄소 제품인 다이아몬드나 흑연의 입자는 아보가드로 상수 (6.02×1023) 개수의 탄소 원자가 모여 결합된 것이다. 하지만 나노입자는 크기가 몇 나노미터에서 수백 나노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작기 때문에 입자를 이루는 원자의 개수가 적다. 많아야 수십 개에 불과하다.

이렇게 원자의 수와 결합방식이 달라지면 물체의 성질도 벌크 소재와 다르게 된다. 게다가 벌크 소재는 입자 크기를 달리해도 성질이 변하지 않지만 나노 소재는 입자 크기와 결합방식을 달리함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성질을 낼 수 있다.

나노 소재는 같은 부피의 벌크 소재에 비해 입자의 크기가 훨씬 작기 때문에 표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된다. 이렇게 표면적이 늘어나면 화학적 반응성도 늘게 되며, 이는 소재가 가진 촉매효과를 크게 증가시킨다.

구체적인 사례가 은(銀)나노다. 은나노는 살균효과가 있는 은의 입자를 나노 스케일로 만들어 투입량 대비 살균력을 크게 증대시킨 것이다.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장치의 촉매구성 성분을 나노 스케일로 만들어 정화 능력을 향상시킨 것도 나노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영화 지.아이. 조-전쟁의 서막에 나오는 것처럼 나노 약품을 사용해 독사의 독을 해독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그런 약품을 만들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같은 나노 스케일은 소재공학뿐만 아니라 기계공학, 전자공학에도 파급되고 있다. 아직 실용화는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기에 따라서는 원자 단위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나노로봇 또는 나노기술을 응용해 효율과 성능을 극대화한 대규모 집적회로 등도 등장할 것이다.

나노기술은 바로 이 같은 나노 스케일 소재 또는 기계를 제작하는 기술이다. "머리핀 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모두 적을 수도 있다"라는 말이 상징하듯 너무나도 작은 크기가 주는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나노기술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나노기술의 악몽

나노무기인 나노마이트가 에펠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영화 지.아이. 조-전쟁의 서막에서 무엇보다 나노기술의 위력을 깊이 각인시킨 장면일 것이다.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도 나노로봇 고트가 인류 문명을 무너뜨린다.



나노로봇이 자기증식을 계속하면서 맞닥뜨리는 물체의 원자구조를 모조리 파괴하는 것. 하지만 나노무기나 나노로봇이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발상은 영화 제작자들이 먼저 해낸 것은 아니다. 그 같은 발상은 수학자 존 폰 뉴먼이 제시한 자기복제가 가능한 기계 개념, 이른바 뉴먼 머신에까지 소급해 갈 수 있다.

나노기술의 선구자인 에릭 드렉슬러는 지난 1986년에 펴낸 책 '창조의 원동력'에서 이 같은 뉴먼 머신으로 인한 재앙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회색 점액질(Grey Goo)이라는 말을 썼다.

회색 점액질이란 분자 단위의 나노로봇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자기복제, 즉 자신과 똑같은 개체를 생산해내면서 나타나는 지구 종말 시나리오를 말한다. 나노로봇이 자기복제에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체를 분해, 결국 며칠 만에 지구상에는 회색 점액질과 같은 무수한 나노로봇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센세이셔널 한 내용 때문에 여러 가지 대중문화 작품의 소재로 사용됐다. 지난 2002년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펴낸 작품 '먹이'의 주요 소재 역시 회색 점액질이다. 드렉슬러의 암울한 전망은 지난 2000년 4월 발표돼 세간의 화제가 됐던 빌 조이의 글 '미래에 왜 우리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에서 보다 강력한 형태로 반복된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설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였던 조이는 일명 'GNR 기술 (유전공학·나노기술·로봇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적 결과에 대해 경고 하면서 드렉슬러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또한 나노기술이 군사적으로 혹은 테러 행위를 위해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 아직 실용화된 나노로봇조차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나노마이트 같은 무기가 등장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스몰리는 드렉슬러의 자기복제 로봇은 과학과 환상의 세계에 양다리를 걸친 허무맹랑한 농담이라고 일소에 붙였다. 제 아무리 나노로봇이라도 생명체만이 가능한 자기복제를 할 턱이 없다는 것이다.

현실로 다가온 나노무기

나노마이트 같은 첨단 나노무기는 아직 나올 가능성이 없지만 나노기술의 군사적 이용을 위한 연구는 이미 시작된 상태다. 지난 2002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에 설립된 나노기술연구소(ISN)가 대표적. 이 연구소는 2025년까지 실용화를 목표로 나노기술의 군사적 이용 방향을 연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보병이 갖추어야 하는 장비의 무게는 심한 경우 60kg이 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장비에도 불구하고 파편이나 총탄, 생화학무기에 대한 방어력은 불완전하다. 또한 병사가 휴대한 여러 장비들이 통합적으로 운용되지 못해 전투 효율도 낮다.

하지만 나노기술을 이용해 장비의 크기와 중량은 줄이면서도 물리적 특성과 성능을 개선한다면 이 같은 문제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 나노기술연구소는 5개의 전략적 연구영역을 정해놓고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병사의 기본 전투복에 쓰일 경량 다기능 섬유 및 소재 개발이며, 두 번째는 신속 정확한 응급처치가 가능한 의약품과 의료기기 개발 및 이를 전투복에 통합해 의무병이나 군의관 없이도 전선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노기술을 이용해 총탄과 파편을 막아줄 방탄복과 헬멧을 개발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화생방 병기를 탐지하고 방호하는 나노기술 개발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이 모든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시스템 통합작업.

이 같은 나노기술로 무장한 미래 병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병사가 입은 전투복은 지형에 따라 색상이 변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막용 전투복, 정글용 전투복을 따로 지급할 필요가 없다. 또한 기후에 따라 병사의 체온을 완벽히 관리해 주기 때문에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난로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도 전투복에 통합돼 있는 응급 키트가 자동적으로 필요한 처방을 해주며, 상처에 따라서는 전투복 일부가 굳어져 부목 노릇도 해준다. 특히 현재 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고 성능이 뛰어난 무전기와 야간투시경 등 각종 통신 및 탐지장비가 전투복에 통합될 것이다.

또 있다. 충격 방지 나노섬유로 만든 방탄복과 헬멧, 그리고 화생방 공격 때 공기 출입을 막고 전투원의 신체를 방호하는 나노혼합물 등을 통해 적의 무기에 대한 방호 능력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게 우수해질 것이다.

전투복은 찢어져도 자동 수선된다. 또한 기존의 대형 무기나 장비들을 개인이 휴대할 수 있을 만큼 축소, 병사의 공격력이 기존에 비해 한층 높아질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 모든 병사의 소총에서 납탄 대신 전자기 펄스가 발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나노전지, 나노정수기 등을 통해 군수지원 분야에도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결코 만화나 영화에 나옴직한 소리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기술 강국, 심지어는 우리나라 군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다.

현재 연구 중인 장비에 비하면 지금 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나일론 배낭과 탄띠, 전투복, 그리고 고어텍스 방한복 같은 것은 선사시대의 유물로 여겨질 정도다.

어쩌면 영화 지.아이. 조-전쟁의 서막에서 군사용 나노기술의 미래를 제대로 보여준 것은 무시무시한 나노마이트가 아닐 것이다. 지.아이. 조 대원들이 입고 나온 투명 위장복, 완전 방탄이 되는 것은 물론 착용한 사람을 자동차에 맞먹는 속도로 달리게 해주는 배틀 슈트가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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