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투명인간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메타물질을 이용해 어느 정도 투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기술은 이미 나와 있지만 완전하지는 않으며, 공상과학(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광학미채의 경우 투명인간과는 원리가 다르다. 그럼에도 이 같은 기술이 실용화되면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료제공: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과 미래
자신은 상대방을 볼 수 있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해도 투명인간 특유의 은닉성을 범죄에 이용하지는 않을까. 이는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투명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던져주는 중요한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다.
투명인간은 영국의 유명한 공상과학(SF) 작가 H. G. 웰스가 1897년 소설로 처음 발표한 이래 숱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어져 왔다. 또한 투명인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투명망토 역시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영화 속의 각종 투명인간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은 신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약을 발명한 남자가 이를 이용해 재물과 권력을 취하려 온갖 악행을 감행하지만 결국 사람 들에게 쫓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 측면에서도 뛰어나지만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의 고독과 심적 갈등을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지난 1933년 제임스 웨일 감독, 클로드 레인스 주연으로 미국에서 영화화된 투명인간은 원작소설과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투명인간의 트레이드마크인 칭칭 감 은 붕대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주인공이 등장해 투명인간을 만드는 약의 발명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만 차츰 끔찍한 범행에 빠져든다.
투명인간을 다룬 이후의 영화나 드라마 역시 상당 부분 원작소설과 비슷하다. 내용은 물론 문제의식도 동일하다는 것. 하지만 밝고 코믹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 기는 영화도 있다.
실제 지난 1995년 개봉된 ‘엄마는 투명인간 (Invisible Mom)’은 프레드 올렌 레이 감독, 디 윌런스 스톤 주연의 코믹 가족 영화. 아빠가 발명한 투명인간 약을 아들이 훔치려고 하지만 엉뚱하게도 엄마가 그 약을 먹는 바람에 일어나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이보다 몇 년 앞서 나온 존 카펜터 감독의 ‘투명인간의 사랑(Memoirs Of An Invisible Man, 1992)’은 뜻하지 않게 투명인간이 된 남자의 고뇌를 보여준다. 매력적인 외모와 우수한 두뇌를 지닌 증권투자 전문가인 주인공이 뭇 여성들의 인기를 끌며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지만 한 연구소에 들렀다가 불의의 사고로 투명인간이 되고 만다.
다른 사람에게 장난을 치거나 예쁜 여성의 방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무서운 비밀집단의 추격을 받으며 생사의 기로에 놓이 게 된다. 또한 텅 빈 자신의 모습과 함께 정체성마저 희미해지게 되자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투명인간에 관한 가장 최근의 영화로는 흥행에도 성공하며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던 ‘할로우 맨(The Hollow Man, 2000)’이 있다.
유명 감독인 폴 버호벤이 감독을 맡고 엘리자베스 슈, 케빈 베이컨, 조시 브롤린 등이 주연한 이 영화는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걸맞는 그럴듯한 줄거리를 갖추기 는 했지만 주제 의식은 원작소설과 큰 차이가 없다.
미국 정부는 유능한 과학자들을 비밀리에 동원해 할로우 맨, 즉 투명인간 실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시킨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한 명은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에게 투명인간 실험을 강행,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의 애인은 투명인간이 된 그를 다시 되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힘에 도취돼 욕망과 과대망상을 나타내며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는 평소 흠모하던 여성을 강간하는 등 악행을 일삼고, 결국 투명인간과 그의 동료들은 서로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게 된다. 2006년에 나온 속편 ‘할로우 맨Ⅱ(Hollow Man II, 2006)’는 전편과는 줄거리가 다르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그리고 있다.
전편의 감독이었던 폴 버호벤이 기획과 제작을 맡고 클라우디오파가 감독한 이 영화는 투명인간과 관련한 거대 음모를 알게 된 주인공이 결국 자기 스스로 투명 인간이 돼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투명인간은 빛을 쏘이면 세포가 파괴되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데, 이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투명인간이 완충제를 찾아 나서면서 여러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광학미채와 투명 화장실
투명인간처럼 사람의 몸 전체를 투명하게 만들지는 않 다 해도 망토 등을 뒤집어 쓰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이지 않게 하는 장면은 여러 영화에서 등장한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는 J. K. 롤링의 소설을 바탕으로 전 세계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면서 지금도 후속작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시리즈 3편, 즉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2004)’에서 주인공 해리포터는 투명망토로 몸을 숨긴 채 마법학교 곳곳을 누비며 비밀의 단서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일본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1995)’에서는 투명망토 비슷하게 자신을 투명해 보이도록 위장할 수 있는 ‘광학미채(光學 迷彩; Optical Camouflage)’라는 기술이 등장한다.
자신의 의복 색깔이나 모양을 주위의 배경에 따라 실시간으로 맞춰 변화시켜 마치 카멜레온 같이 시각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지우게 하는 게 기본 개념이다.
이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밖에서는 안쪽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반면 안쪽에서는 바깥쪽을 볼 수 없는 유리창 등이 죄수나 피의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관광지가 됐지만 옛날에는 악명 높은 감옥이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알 카트라스를 배경으로 생화학무기를 탈취한 특수부대 군인들의 반란을 다룬 영화 ‘더 록(The Rock)’에서도 이 같은 장면이 나온다.
즉 그곳 탈옥수 출신인 주인공이 심문을 받다가 그런 유리창을 깨뜨리는 것. 안과 밖의 투명도가 다른 이런 유리창은 빛의 반사율과 안팎의 밝기 차이 등을 이용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불투명한 유리는 연마재 등을 써서 아주 작은 요철을 만들고, 이를 통해 난반사를 일으키게 하는 방식으로도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영국에 실제로 있는 투명 화장실이 해외토픽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이 투명 화장실은 항상 투명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유리창이 불투명하 게 변해 용무를 보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한 독특한 화장실인 것.
이는 유리판 사이에 액정과 같은 성질을 지닌 고분자 물질을 넣어서 만든 것으로 전압을 넣으면 고분자가 일정하게 배열돼 투명하게 보이고, 전압을 끊으면 무질서하게 배열돼 불투명하게 보이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의 고독과 심적 갈등을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투명인간은 사실상 불가능
그렇다면 투명인간은 실제로 가능한 것일까.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투명인간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 자신은 바깥 사물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과학기술적으로 볼 때 모순이다. 영화 할로우 맨의 한 대목을 보면 투명인간이 된 주인공이 “눈이 너무 부신데 눈을 감아도 아무 소용이 없군. 눈꺼풀까지 투명해져서…”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눈꺼풀마저 투명해져서 빛이 투과할 정도라면 눈동자와 망막도 투명하게 됐을 것이다. 투명한 망막이라면 외부의 이미지가 상을 맺지 못하고 통과해 버 릴 것이기 때문에 뇌가 인식할 수 있는 시각신호 자체가 형성될 수 없다.
만약 영화관이나 프로젝터의 스크린이 유리처럼 투명하다면 영상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스크린이나 필름의 역할을 하는 사람의 망막이 투명하다면 바깥 사물의 상을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투명인간 역시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광학미채 비슷한 기술은 일본의 대학 등에서 어느 정도 구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투명인간과는 원리가 좀 다르다.
빛이 뒤집어 쓴 망토를 완전히 통과해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등을 이용해 뒤의 배경이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이는 실제 현실과 가상 물체가 합쳐진 일종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과 비슷한 원리다.
증강현실이란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합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가상현실의 하나. 즉 사용자가 보고 있는 실사 영상에 3차원 가상 영상을 겹침으로써 현실 환경과 가상화면과의 구분이 모호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광학미채 기술을 구현하려면 망토를 입은 사람의 뒤를 촬영할 비디오카메라, 카메라의 이미지를 증강시킬 컴퓨터, 이미지를 투사하는 프로젝터와 반사장치 등 다소 복잡한 장비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투명인간은 과학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투명인간은 눈동자와 망막까지 투명해져 외부의 빛이 상을 맺지 못하기 때문에 장님이 될 수 밖에 없다.
메타물질 이용한 투명망토
최근 미국에서 투명망토를 실현시킬 단서를 제공할 특수물질을 개발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일명 메타물질로 불리는 이 특수물질은 반사되는 가시광선의 방향을 제 어해 물체를 어느 정도 투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은 나노 컵이라고 불리는 메타물질을 이용해 빛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나노 컵의 입자들이 동일한 방향으로 정렬돼 있어 안으로 들 어온 빛이 모두 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반사광이 사람 눈에 들어오지 않게 돼 물체가 보이지 않게 되는 원리다.
또 지난해에는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 빛의 굴절 원리를 활용하는 새로운 메타물질을 개발했다고 한다. 아주 얇은 두께의 그물망과 나노미터 굵기의 은(銀)선으로 메타물질을 만들어서 빛을 굴절시키는 방식이다. 물체에 도달한 빛이 굴절돼 주위를 돌아서 뒤쪽으로 통과한다면 사람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들 메타물질의 투명 정도가 아직 만족스러울 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안 보이게 하고 싶은 물체가 불투명하게 눈에 띄는 상태라고 한다.
몇 년 전에는 마이크로파 단위의 전자기파가 물체에 닿으면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메타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역시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마이크 로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투명물질의 개발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투명화 기술 악용 경계해야
증강현실과 비슷한 광학미채 기술이든 메타물질을 이용해 투명망토를 만드는 기술이든 이런 기술이 실용화될 정도로 발전한다면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넓다.
예를 들어 항공기의 바닥 아래 광경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면 이착륙을 할 때 활주로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더욱 안전한 운행이 가능하다. 또한 자동차 차체 바깥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면 후진할 때의 사고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내시경을 통하지 않고도 환자의 신체 내부를 볼 수 있다면 의사의 진료와 수술에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군의 모습을 철저히 감춰서 적군의 눈에 띄지 않게 한다면 전투가 벌어질 때 크게 유리할 것인 만큼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이 같은 기술이 연구될 것이다. 다만 악행을 일삼는 투명인간 영화에서처럼 투명화 기술이 악용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글_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증강현실과 비슷한 광학미채 기술이든 메타물질을 이용해 투명망토를 만드는 기술이든 실용화될 정도로 발전한다면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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