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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에너지·환경 산업 태동의 주역

[파퓰러사이언스 릴레이 인터뷰] 1. 박원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

21세기는 지식, 정보, 창의성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기반사회다. 이 같은 시대에 지식과 정보 창출의 첨병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은 국가의 미래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생존무기가 되고 있다. 특히 우수한 과학기술자의 존재는 국가경쟁력의 알파요, 베타다.

선배 과학기술자들은 척박한 연구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고, 어려움에 부딪혀도 좌절하지 않았다.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계 7대 과학기술 강국을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예술보다 아름답고, 다시 태어나도 과학기술자의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후배 과학기술자들 역시 하루를 25시간으로 살 만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과학기술계는 학문간 통섭 및 커뮤니케이션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도 학문간 경계가 존재하고, 과학기술자 사이의 소통도 원활치 못하다는 것. 이에 따라 파퓰러사이언스는 일종의 칭찬 릴레이 인터뷰인 ‘파퓰러사이언스 릴레이 인터뷰’를 마련, 학문간 통섭과 과학기술자간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꾀하고자 한다.


때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어느 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을 찾아 박원훈 총괄부원장을 만났다.

과학기술한림원의 제반업무를 총괄하는 실무 책임자로서 바쁜 일정을 잠시 접고 인터뷰에 응한 박 부원장은 “국내 과학기술자 중에는 학문적·인격적으로 귀감이 될 만한 분들이 많이 있다”며 “이들과 같은 모범적 역할모델의 발굴은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파퓰 러사이언스 릴레이 인터뷰의 기획 의도에 공감을 표시한 것.

그는 “지금껏 국내에선 과학기술자를 업적만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과학기술자는 자기 분야에서 전문 업적을 쌓는 것에 더해 과학기술계 구성원으로서,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철학은 그의 삶 전반에 걸쳐 극명하게 나타난다.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후 미국 미 네소타 대학과 휴스턴 대학에서 각각 박사와 박사 후 연구원을 거친 박 부원장은 지난 1972년 KIST 연구원으로 국내 과학기술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항상 사회와 국가를 위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왔다. 그가 전공 분야에서 다소 벗어난 에너지와 환경 분야의 거두가 된 것이나 연구 업적에 ‘최초’, ‘효시’라는 단어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학 공학자였던 박 부원장과 에너지의 조우는 지난 1973년 이루어졌다. 제1차 석유파동으로 KIST가 에너지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박 부원장에게 그 임무가 주어진 것. 박 부원장은 “1970년대에 에너지는 연구계의 불모지였다”면서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아 중책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에너지 산업화라는 사명을 부여 받은 그에게 비(非)전문 분야에서 오는 난관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초기에 석탄과 연탄의 연구를 주도했는데, 무연탄의 활용기술과 연탄의 성형 연구 등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도출했다. 한마디로 에너지 연구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것.

50대 이상이라면 과거 TV 일기예보에서 연탄가스 발생 위험도를 수치화해 방송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연탄가스 경보지수를 개발한 사람도 바로 박 부원장이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박 부원장은 태양에너지, 에너지 저장, 연료전지 등 KIST가 추진한 에너지 분야 연구의 시작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다. 실제 1980년대 그의 용융탄산염 연료전지 연구는 국내 연료전지 연구의 효시로 불린다.

1990년대 들어 환경문제가 사회적 이슈화가 되자 대기오염방지, 지구온난화 등의 연구에 매진해 청청기술연구회 및 청정기술학회 창립, 환경복원프로그램 창시에 일조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산업의 태동에 직접적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연구자는 사회에도 공헌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 아래 새로운 연구 분야 개척이라는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온 것이다.

이렇듯 성공한 연구자였던 박 부원장의 삶은 1996년 변화를 맞게 된다. 연구책임자로서 관리력과 정책기획력을 인정받아 KIST의 16대 원장에 오른 것. 하지만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아 원장 취임 후 처음 강 조한 것 역시 국가에 대한 연구원의 공헌이었다. 그가 KIST를 연구실이 아닌 과제 중심의 연구센터 체제로 개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부원장은 “정부출연연구소는 예산에 한계가 있어 대학처럼 항구적인 연구실 형태는 맞지 않는다”며 “프로젝트가 끝나면 해체되고 새 과제에 맞춰 또 다른 조직이 구성되는 연구센터 방식이 연구소에 활력과 생동감을 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부원장은 또 “연구센터 도입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되는 성과”라며 “많은 연구소들이 이 같은 시스템을 채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KIST 원장으로서의 이 같은 경험은 연구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된다. 정부출연연구소는 관리자나 책임자가 아닌 일선 연구원들에 의해 움직여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사랑 없이는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연구소의 설립 목적을 달성 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 이는 산업 기술연구회 이사장 시절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사고를 지배하는 가장 큰 가치가 됐다.

이 점에서 박 부원장에게는 일생일대의 한으로 남아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지난 1998년 추진된 연구원 정년 축소를 끝까지 막지 못한 것이 그것이다.

당시 KIST 원장이었던 그는 다른 연구 소들의 정년 축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재임 기간 내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퇴임 후 결국 KIST도 정년이 65세에서 61세로 낮아졌다. 박 부원장은 “대학 교수직이 연구원보다 정년이 높고 연금도 제공되는데 누가 연구소로 오고 싶겠느냐”며 “고급 인재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박 부원장은 지난 2001년 새천년 민주당의 발기인 30인에 이름을 올리고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잠시 정치권(?)에 관여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새천년민주당측이 연구원 정년 회복 추진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지난 37년간 정부출연연구소의 생성과 발전을 함께 했고 국내 화학·에너지·환경산업의 태동을 진두지휘한 주역으로 살아온 그가 지금 과학기술한림원의 부원장으로서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박 부원장은 희망과 아쉬움을 함께 토로했다.

먼저 정부가 정부출연연구소를 공공기관이지만 별도의 조직처럼 인정해준 부분은 매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정부출연연 구소들이 정권 교체 시기마다 마치 혁신의 대상처럼 치부돼왔던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 출범 이후 과학 기술계의 소외감, 저탄소 녹색성장에 대한 과도한 열풍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부원장은 “과학기술자 신년인사회를 가보면 홍보영상물 하나에도 온통 교육 얘 기뿐”이라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녹색성장의 경우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지금은 모든 연구가 녹색으로 치장되고 있어 정권교체 후 반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조금 범위를 축소하더라도 진짜 녹색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부원장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과학기술계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을 남은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후배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주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박 부원장이 추천한 다음번 릴레이 인터뷰 주자는 ‘제1호 국가과학자’로 유명한 KIST의 신희섭 박사다. 박 부원장은 “신 박사는 뇌 연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국내 과학기술자의 한 명”이라며 “연구를 위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포항공대 교수직을 박차고 일선 연구현장에 뛰어들었을 만큼 집념과 열정이 대단한 연구자”라고 설명했다.

박 부원장은 또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신 박사의 연구 열정을 본받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연구자로 커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 이라고 밝혔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박원훈 총괄부원장 프로필


1964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

1971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박사

1972~1981 KIST 고온공정연구실장

1986~1989 KAIST 반응공학연구실장

1990~1991 한국태양에너지학회 회장

1996~1999 KIST 원장

2002~2005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2009~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

1980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2001 과학기술훈장 혁신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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