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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뇌 발달 차이가 사회경제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

사회경제적 격차라는 갈등 요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계층 간 유동성이라는 완충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출신 배경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계층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라는 믿음이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뇌 과학 분야의 연구결과 초기, 즉 영유아기 뇌 발달의 차이가 이후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부모는 자녀에게 초기 뇌 발달을 위한 양육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뇌-인지 발달을 인위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신경공학기술 역시 많은 비용 문제로 새로운 계층 고착의 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에 한해 일정 범위 내에서 양육의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부담하고, 신경공학기술 역시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하되 남용이나 계층 고착화의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료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뇌 과학의 발전으로 한 때 철학이나 인문학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정서, 언어, 판단 같은 인간의 고등 인지 기능이 뇌 과학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 에는 의사결정, 사회적 상호작용, 자아, 도덕성 등도 포함된다.

뇌 과학의 발전은 정신현상을 세포와 세 포 간의 물리-화학적 정보전달 과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뛰어넘어 뇌 활동 패턴을 읽어내 생각의 내용을 알아내는 것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한 약물이나 외과적 수술, 그리고 기계를 이용한 외부자극을 통해 정신 과정에 직접 개입하거나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공학기술도 시행되도록 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생명복제와 유전자 연구의 발전이 새로운 생명윤리의 문제들을 야기했듯이 뇌 과학의 발전은 전례 없는 윤리 적, 법적, 사회적 문제들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뇌는 인간의 정신과정을 관장하는 기관이다. 이 같은 점에서 보면 뇌 기능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뇌 기능에 직접 개입하는 기술은 인간의 정체성이나 존엄성, 존재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신경약물을 이용한 정서상태의 개선이나 인지기능의 향상이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킨 다면 이를 성형수술과 같은 범주에서 허용해야 할까. 범죄행위의 대부분이 뇌의 구조적 손상이나 뇌 기능 이상에 의한 것임이 밝혀진다면 법적, 도덕적 책임에 대한 우리 생각이 변해야 할까. 그리고 뇌 영상 정보는 어느 수준까지 공개 되고 보호돼야 하는가.

이처럼 뇌 과학의 발전으로 파생되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 들을 다루는 학문 분야를 신경윤리학이라 고 한다.

계층 간 대물림이 시작되는 영유아기

사회경제적 격차라는 갈등요인이 존재함에 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계 층 간 유동성이라는 완충장치가 존재하기 때 문이다. 출신 배경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계층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라는 믿음이 사회 구성원의 불만을 상당부분 줄여주는 것.

하지만 뇌 과학과 이에 기반하고 있는 신경공학기술은 이 같은 개인의 능력이라는 탈 (脫) 계층적 가치마저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 라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따라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한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기회의 평등을 전제 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계층이 대물림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고민해 왔으며, 그 원인과 해법을 대부분 교육에서 찾아왔다. 계층 고착화와 관련된 뇌 과학의 설명은 초기 뇌 발달의 차이가 이후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는 부모 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영유아기의 뇌 발달 차이를 초래함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제도교육의 영향이 닿지 못하는 초기 뇌 발달에서 부터 이미 계층의 대물림이 시작된다는 것.

최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인지능력 및 교육수준의 상관관계를 확인한 미국의 연구사례를 보자. 이 연구사례에 따르면 부모가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고 있는 가정의 아동들이 중산층 가정의 아동들보다 현저하게 낮은 지능지수(평균 81)를 보였다.

또한 중산층에서는 가계 수입의 증가 가 자녀의 진학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빈곤층에서는 1만 달러 당 600%의 고등학교 진학률 증가를 가져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 만큼 사회경제적 지위가 지능 지수 및 진학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

이 같은 결과는 물리적, 심리적 환경을 전제로 한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사회경제 적 지위가 뇌-인지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물리적 환경에서 살펴본 연구에 의하면 빈곤층 아이들의 경우 뇌 발달에 필요한 철분과 단백질 공급이 충분하지 않았다.

반면 알코올, 담배 등에 대해서는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 환경에서 보면 인지적 자극의 양 과 스트레스 정도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뇌-인지 발달을 위해서는 풍부한 자극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한데, 빈곤 층 어린이들의 경우 부모가 장난감·책·교구 등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다는 것.

여기에 다양한 학습을 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는 상태다. 이와 함께 부모가 지나친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아동의 내측두엽의 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기억능력이 떨어지고, 전전두엽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 팀의 연구에 의하면 상습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 쥐에서 태어난 새끼는 성장한 후에 도 해마 기능의 장애와 함께 학습과 기억능력 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양육 환경에 미치는 영향

과학자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양육 환경에 영향을 미쳐 아동의 뇌-인지 발달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빈곤층 아이들의 인지능력 점수가 중산층 아이들의 점수보다 전반적으로 낮고, 특히 언어능력과 실행기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연구결과는 가정환경 관찰 및 측정법을 이용해 양육 환경을 인지적 자극과 사 회ㆍ정서적 배려의 두 항목으로 측정한 결과 나온 것이다. 인지적 자극 요인은 장난감·책·교구의 양, 부모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충분한 언어 적 자극을 주는지 여부, 그리고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반면 사회ㆍ정서적 배려는 부모의 정서적 표현 양식 과 정서적 지지의 정도를 반영한다. 연구결과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뇌-인지 발달의 차이 중에서도 언어능력은 인지적 자극 요인과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기억능력은 사회·정서적 배려 요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가정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풍부한 자극을 제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개는 부모가 스트레스 상황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적절한 보살핌을 줄 수 없다.

이에 따라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 뇌 발달에 있어서도 동등한 기회를 얻기 힘들고, 미래에 낮은 사회경제 적 지위를 획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같은 결과는 뇌 과학적 설명에 근거한 새로운 정책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지난 2008년 3월 6일 실시된 중학교 전국 단위 학력진단평가 결과 서울 강남지역과 강북지역, 그리고 도시와 농촌지역 간 학력 차이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 그리고 이로 인해 사회경제적 지위와 아동의 학업 성취도의 관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디어에서는 대체로 사교육 기회의 차이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영양과 임 신모의 스트레스 등 태아기의 환경과 취학 전 아동기에 이르는 초기의 양육 환경 차이에서부터 문제가 비롯되는 것일 가능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뇌-인지 발달의 차원 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 인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는 얘기다. 뇌 발달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은 자녀 양육 을 부모와 가족의 몫으로 바라보거나 국가와 사회의 몫으로 보는 두 가지 관점에 서 고려할 수 있다.

부모와 가족을 양육 의 주체로 볼 때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이들의 뇌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 다.

즉 개인적 노력을 독려하기 위 한 직간접적인 지원을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뇌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양육 방식을 교육받고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고 해 도 낮은 사회경제적 계층에서는 양육보다 우선순위가 앞서는 문제들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부모와 가족 차원에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를 양육의 주체로 생각하는 정책으로는 저소득층 가정에 한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양육의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부 담하는 방안이 있다.

초등학교 취학 이전의 영·유아기에서부터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풍부한 인지 자극과 사회 정서적 보살핌을 전문 보육사가 제 공토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 보육사 양성 및 지원을 정책적으로 보장한다면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로 인한 초기 뇌 발달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그리고 사회적 부담의 범위는 이 같은 지원책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게 될 비용을 추산, 역(逆)으로 결정할 수 있다.

신경공학기술, 새로운 계층 고착 원인될 수 있어

일반적인 생명공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신경 공학기술도 새로운 계층 고착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첫째는 기술 분배의 불균형이다. 이것 은 신경공학기술에만 국한된 문제라기보다 는 고비용의 최첨단 기술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성으로 높은 비용 때문에 혜택이 상류층에 집중되는 현상을 말한다.

신경공학기술은 계층 간 유동성을 보장해 주는 개인의 능력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혜택의 불균등한 분배가 가져올 계층 고착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둘째는 광범위한 응용 가능성이다. 신경 공학기술은 의료 목적 이외의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신경약물이나 마음읽기기술의 정보가 특정 계층에 독점돼 이용될 경우 계층의 고착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이다.

특히 뇌 과학의 이름으로 화려하게 포장 된 광고들은 사람들이 의료 전문가의 제대로 된 진료 없이 설익거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접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료비 지출에 부담을 느끼거나 정보가 부족한 저소득층에서 과장된 광고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신경공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은 발전과 분배라는 상반된 차원에서 정책 결정자들 의 고민을 가져올 수 있다. 치료 목적이 아닌 뇌-인지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은 그 혜택만큼이나 남용과 계층의 고착화 등 부작용 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유로운 연구를 촉진하되 기술 적용에 있어서는 규제 와 관리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본적 삶의 조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신경공학기술에 대해서는 의료보험을 적용해 계층 간 기회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신경공학 기술에 대한 정보가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공공 차원에서 신경공학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일반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은 뇌 과학 연구의 사회ㆍ문화적 영향을 체계적으로 연구, 그 결과를 연구계획과 수행과정에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역시 이 분야의 연 구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시작했다.

신경윤리학의 문제는 과학기술의 영역 을 넘어 사회, 윤리, 문화, 법률, 교육, 보건 의료, 언론, 정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각 적인 분석과 실천적 대응이 요구된다. 미국 에서는 뇌 과학 전문가뿐만 아니라 정책관련 전문가들의 관심도 높다.

실제 지난 2004년 인간복제, 노화, 줄기 세포 연구 등 생명공학기술의 발전과 관련해 등장하기 시작한 윤리적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생명윤리위원회에서 신경윤리학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생명윤리위원회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회의에서 다루고 책자로 보고서를 발간하는데, 그 동안 아동발달ㆍ의사결정ㆍ공격적 행동 등을 다루었다. 또한 형법 차원에서 뇌 과학의 영향 등을 다루기 도 했다.

충분한 논쟁 통해 뇌 과학의 해법 찾아야

신경윤리학은 뇌 연구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연구의 성과를 활용하는 단계에서 윤리적, 법적, 철학적, 사회적 문제들을 검토하고 충분한 논쟁을 통해 해법 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같은 문제들을 뇌 연구자들이 숙지하는 것은 성공적인 뇌 연구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뇌 연구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신경윤리학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중요하다.

뇌 연구의 질적·양적 발전, 신경공학기술의 적용, 그리고 뇌에 관한 새로운 지식에서 부터 파생되는 철학적 문제들은 사회 정책은 물론 법의 제정 및 집행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뇌 연구나 진단은 물론 조사 목적으로 이 용된 뇌 정보 역시 보호가 필요하다. 특히 신경공학기술의 적용, 치료 목적이 아닌 향상을 목적으로 한 약물사용, 그리고 신경공학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일반 대중들의 뇌 과학에 대한 기초 지식과 신경윤리학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뇌 연구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 간 교류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정책도 요구된다.

인간의 자유의지·도덕성·책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정상과 이상, 적법 과 위법의 경계가 달라진다. 또한 그 경계에 따라 법적 개입의 형태에도 차이가 있게 된다.

따라서 뇌 연구 전문가들은 물론 철학자, 법 제정 및 집행과 관련된 전문가들의 교류를 통해 뇌 과학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적절한 반영 방법을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_이춘길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ck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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