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동력원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에서 보듯 산업기술의 국가적 위상이 빛을 바래면서 우수한 인적자원 공급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산업기술 강국들이 잇따라 건립하고 있는 산업기술체험관이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산업기술 및 그 성과물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산업기술체험관을 활용하면 우수 인력 양성, 산업기술 발전,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선순환 사이클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는 한국산업기술재단과 공동으로 상, 하 2부에 걸쳐 선진 산업기 술체험관의 현황과 운영실태, 사회적 역할과 가치, 그리고 국가적 기여도를 조명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최근 선진국들은 산업기술 육성에 사활 을 걸고 있다. 경제성장의 추진동력 인 산업기술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10~20년 후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10년, 또는 5년 주기로 바뀌던 산업기술은 이제 분 기별로 진화하고 있다.
한순간의 방심은 영 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로 이어질 수 있 다는 얘기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산업기술 강국들은 물론 우리나라와 코앞에서 경쟁하는 중국과 대만 역시 산업기술 육성에 '올인'하고 있다. 실제 중국은 자국의 시장을 내주는 대신 산 업기술을 얻는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 전 략에서 스스로 산업기술을 개발하는 자주창 신(自主創新) 전략으로 전환했다.
대만은 반 도체, 디스플레이, 콘텐츠, 바이오 등 4개 분 야를 집중 육성하는 이조쌍성(二兆雙星) 전 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 이, 콘텐츠와 바이오에 각각 1조 대만달러 (약 40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것. 우리나라는 5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을 이뤄냈다.
전 세 계 교과서에 '한강의 기적'이 등장하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우리나라를 산업발전의 역 할모델로 삼고 있다.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외적 시각과 달리 우리나라 국민 들은 이를 '한 때의 추억'으로 묻어놓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 등 성장세대는 이 같은 사 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제발전의 첨병이었 던 산업기술 인력은 이제 별 볼일 없는 직업 의 소유자로 전락했으며, 이공계 기피현상 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산업기술 마인드의 생활화
우리나라는 물론 모든 국가의 경쟁력은 우수 한 산업기술 인력이 창출해 낸 유ㆍ무형의 지적재산에 의존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다. 산업기술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는 얘 기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 상황은 산업기술, 또 는 산업기술 문화의 공백기라고 할 만큼 정 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코 한순간의 사회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산업기술 강국으로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는커녕 후발주자들의 추월 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 산업 기술 강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이들은 기본에서부터 해답을 찾고 있다.
산업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친화적 마 인드 제고가 바로 그것. 언뜻 모호한 개념처럼 들리지만 이를 구 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들 이 탄생시킨 혁신적 산업기술을 널리 알리 고, 국민들이 그 결과물인 제품을 직접 만지 며 체험할 수 있는 장(場)으로서 산업기술체 험관을 설립ㆍ운용하는 것이다.
산업기술박 물관, 과학산업박물관, 과학박물관 등 명칭 은 다양하지만 산업기술을 직접 보고 체험하 도록 한다는 게 주요 콘셉트다. 지난 1933년 개관한 시카고 과학산업박 물관은 이 분야의 선구자다.
미국 최대의 기 차 모형인 샌타페이 기차와 감아올리는 기계 를 타고 탄광을 탐험하는 코일 마인 등이 있는데, 하나같은 특징은 직접 보고 체험해 본 다는 것이다. 독일의 2차 대전 당시 실물 잠 수함인 U보트와 실물 항공기들도 컬렉션 형 태로 전시돼 있다. 미국 최초의 산업기술 계 몽센터로 문을 연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의 연간 관람객은 200만 명 수준이다.
영국 맨체스터 과학박물관에는 산업혁명 당시 사용됐던 증기기관이 전시돼 있으며, 독일 뮌헨의 도이체스과학관에서는 자동차 생산, 경주용 자동차 및 엔진, 상용차 등 생 활과 밀접한 전시가 주기적으로 열린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 있는 라 빌레트 과학산업 관은 산업기술에 음악, 미술, 공연 등 문화예 술을 융합한 21세기형 산업기술체험관으로 유명하다. 라 빌레트에는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산업기술체험관의 효용성
선진 산업기술 강국들은 이처럼 산업기술체 험관을 통해 국민들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산업기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 고 이 과정에서 산업기술의 중요성을 자연스 럽게 각인시키고 있다. 산업기술 마인드의 생활화인 셈이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산업기술 마인드의 생활화는 어린이와 청소년 등 성장세대의 지 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좀 더 심층적인 학업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시 도의 종착지는 우수 산업기술 인력의 확보 다. 한마디로 산업기술체험관은 또 다른 세 계 최초, 세계 최강의 산업기술이 만들어지 는 토대인 셈이다. 산업기술체험관의 효용성은 여기에 그치 지 않는다. 산업기술 전시물 체험에 더해 지 식산업과 음악, 미술, 공연 등 문화산업을 포 괄하는 지식문화산업의 허브가 될 수도 있다 는 얘기다.
이는 산업기술과 지식 및 문화가 공존하 는 21세기 융합시대에 부응하는 콘셉트며, 현재 전 세계 전시ㆍ전람시설들이 추구하는 공통적 지향점이기도 하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또한 간과할 수 없 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과학박물관 익스플로러토리움, 그리고 프랑스의 라 빌레트 사례에서 확인되듯 세계적 수준의 산업기 술체험관은 존재 자체로도 무수한 국내외 관 람객을 끌어 모으는 힘을 갖고 있다.
산업기술체험관은 나비축제, 고구마축제 등 단발성 이벤트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전 시·전람산업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한마디로 산업기술체험관은 우수 한 산업기술 인력 양성, 국가경쟁력 제고, 문 화산업 동반발전, 지역경제 활성화 등 1석4 조(1石4鳥)의 효과를 꾀할 수 있는 고부가가 치 아이템인 것이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산업기술체험관 건립 위한 분위기 조성 나설 것"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직후부터 산업기술체험관 건립의 필요성을 강력 제기해 왔다. 산업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직접적 체험과 이해만이 산업기술 강국으로 가는 첩경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Q. 산업기술체험관과 과학관의 콘셉트는 다소 비슷해 보이는데?
A. 일부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목적과 개념은 전혀 다르다. 과학관은 과학 원리의 이해가 기본 출발점인 반면 산업기술체험관은 산업기술, 그 중에서도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과학관은 규모에 비해 너무 방대한 분야를 취급, 전문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산업기술체험관은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제품 및 응용분야별로 전시물을 집중시킬 수 있어 한층 전문적이고 체험적인 운용이 가능하다.
Q. 국민적 관심이나 호응은 어느 정도일 것으로 예상하나?
A. 산업기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막연히 어렵고 난해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움이 수반될 경우 산업기술에 대한 관심, 즉 지식 욕구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본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 등 성장세대에 산업기술에 대한 이해와 미래형 산업기술의 부가가치를 인식시키는 일은 상당한 호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Q. 산업기술체험관 건립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A. 국제화된 마인드다. 선진 산업기술 강국처럼 산업기술체험관을 세계적 시설로 육성하려면 우리 방식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다. 건물 설계, 전시물 구성, 운용시스템 구축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에 어필할 콘셉트를 창조해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는 있지만 베끼는 것은 곤란하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 콘셉트를 찾아야 한다.
Q. 산업기술재단에서는 이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A. 일단 올해부터 산업기술체험관 건립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이미 국내외 실태조사, 전문가 세미나 개최 등에 필요한 기초용역조사 예산을 확보한 상태다. 내년 말이면 좀 더 체계적인 내용을 담은 마스터플랜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Q. 산업기술재단이 직접 건립에 나서게 되나?
A. 산업기술재단은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실질적인 추진 주체는 경제ㆍ산업계 전문가들이 돼야 한다고 본다. 공공기관의 직원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펼칠 수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산업기술체험관 건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ㆍ산업계의 협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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