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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불황, 그리고 행복의 과학

어떤 가수가 부른 ‘10월의 마지막 밤’은 슬프지만 로맨틱한 반면 서민들의 그것은 불안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 때문이죠. 주식 투자에 나선 사람들은 아예 공포와 절규라는 표현까지 쓰더군요.

1억원 투자해 200만원 남았다는 호소는 그나마 괜찮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증권사 신용융자로 아예 거덜 난 사람도 있으니까요. 물론 은행 대출로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한 후 조기상환을 위해 재차 빛을 얻어 주식 투자에 나선 사람은 아마 악몽(惡夢)에 시달릴 것입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따른 손실은 그나마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황의 삭풍에 내던져진 서민의 고통은 책임질 사람도 없습니다.

참혹한 취업난을 겪고 이제야 겨우 삶의 기반을 잡는 듯 했던 IMF 세대는 또다시 구조조정의 한파를 맞게 됐습니다. 조기 퇴직자나 실직자에 이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까지 자영업에 몰리면서 시장은 포화상태가 됐고, 서민들의 지갑마저 닫히면서 상인들은 개시도 못하는 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생계 전선에 내몰린 주부들은 대부분 식당 종업원, 가사 도우미 같은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고용불안이 클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가사부담과 자녀교육 문제까지 겹쳐 삼중고를 앓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정이 유지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들은 밥 먹듯 굶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조만간 도래할 봄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황의 그늘이 만들어 낸 극심한 추위는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행복(幸福)이란 말이 자꾸만 화두로 떠오릅니다. 역설적인 것 같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할 때 오히려 행복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행복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조건이 어울려 만들어집니다. 심리학·신경과학·사회학·경제학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성격이나 종교적 신념 같은 선천적인 조건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정도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후천적인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

하지만 성격이나 종교적 신념은 보편성이 적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은 돈·건강·사랑·일에 따라 행복수준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데, 1:1:2:2의 비율이 대한민국 행복비례식이라고 어떤 교수는 말하더군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불황에서는 2:1:1:2가 맞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주식 투자로 돈을 날려 은행계좌는 물론 전세금과 보험에도 압류신청이 들어오고, 실직으로 가정이 붕괴되는 것은 더없이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주어진 상황이 다르고, 이에 따라 추구해야 할 우선순위도 다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건강과 사랑은 시급성이 떨어집니다. 일은 자아실현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불황에서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 십상입니다. 결국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행복지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아니 불행의 강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조건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이라는 문제에 해답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경제가 살아나야 합니다. 주가지수 하락이 멈추고, 수출이 살아나며, 내수 역시 부양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분의 결과로 전체를 설명하는 ‘구성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 최고의 선(善)으로 생각됩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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