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지진이 발생하기 단 5초 전에라도 지진 경보가 울릴 수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각지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지진 감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각 개인이 보유한 노트북 컴퓨터를 활용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를 지진 감지용으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2003년 이후 출시된 IBM과 애플의 노트북 컴퓨터에는 가속도 센서가 장착돼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노트북 컴퓨터와 지진계를 연결짓는 것도 가능하다.
민간단체인 ‘지진 감지 네트워크(QCN; Quake -Catcher Network)’의 목표는 노트북 컴퓨터를 지진 탐지기로 사용해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수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이용해 우주 관측용 전파 망원경의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서 외계 생명체의 징후를 찾으려는 세티앳홈(SETI@home)과 유사한 방식이다.
세티앳홈은 각 개인이 다운로드 받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초대형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야 하는 데이터 분석을 다수의 데스크톱 컴퓨터에 조금씩 나눠서 수행하는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다. QCN 역시 노트북 컴퓨터를 가진 지원자를 모집한 후 소프트웨어를 다운받게 한 다음 각 노트북 컴퓨터가 가진 처리능력을 이용한다.
하지만 QCN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노트북 컴퓨터에 내장된 가속도 센서까지 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 가속도 센서는 2003년부터 IBM 씽크패드 시리즈, 2004년에는 모든 애플 노트북, 그리고 최근에는 HP 및 에이서 제품에도 장착되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에 가속도 센서가 장착된 것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저장된 데이터 보호가 목적이다.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던 중 떨어뜨리거나 강한 충격을 줄 경우 작동중인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손상을 입히고, 데이터 손실이 발생한다. 가속도 센서는 노트북 컴퓨터에 가해지는 충격을 재빨리 감지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대기모드로 유지함으로서 데이터 손실을 방지하게 된다.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대학의 지진학자이며 QCN의 공동 설립자인 엘리자베스 코크런은 노트북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지면의 움직임을 메인 컴퓨터에 전송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또한 스탠포드 대학의 지진학자인 제시 로렌스와 함께 수천 대의 노트북 컴퓨터에서 보내온 데이터를 일시에 분석할 수 있는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다만 QCN에 접속된 각각의 노트북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3분 이상 사용하고 있지 않을 때만 지면의 움직임 데이터를 전송하게 된다.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릴 때 발생하는 진동을 지진에 의한 진동으로 인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3분 이상 사용하지 않아 노트북 컴퓨터의 지진 감지 기능이 작동되면 노트북 컴퓨터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는 가속도 센서에서 감지된 데이터를 1초에 50번씩 표본 추출한 뒤 1분 전과 비교해 흔들림이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만약 노트북 컴퓨터에서 진동이 감지됐다면 메인 컴퓨터로 지진이 발생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다.
이 메시지에는 진동의 시간과 강도에 대한 데이터가 포함돼 있다. 로렌스는 “만약 여러 곳에서 지진 감지 메시지가 동시에 전송된다면 이는 실제 지진이 일어난다는 징후”라고 말한다. 지진의 징후가 확인되면 메인 컴퓨터는 다시 지진 발생 사실을 각각의 노트북 컴퓨터로 전송하게 된다.
QCN 지원자들은 사전에 자신이 정보를 받을 수 있는 5개 장소를 선정할 수 있으며, 이 장소에서 진동이 감지되었을 때 자신이 지진 발생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만약 지원자가 그 위치에 없더라도 대부분 도시지역에 머물기 때문에 약 1.6km 범위 내에 있다면 노트북 컴퓨터의 IP 주소에 기반, 지진 발생에 대한 데이터를 전송받게 된다.
QCN은 이미 네바다 주 르노 서쪽에서 일어난 진도 5.1의 지진을 탐지한 바 있다. 이처럼 QCN은 지역이 지나치게 넓거나 예산이 부족해 정밀한 지진계를 대량으로 설치하기 어려운 곳에 적합하다. 일반적으로 이런 지역에는 대량의 지진계를 설치할 수 없어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어려우며, 적은 수의 지진계가 있는 지역에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할 경우 지진의 강도를 실제보다 낮춰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QCN은 정밀한 지진계와 달리 일단 지진이 시작된 이후부터 탐지가 가능하지만 더 강한 후속 지진에 대처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 시간이 불과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QCN 본부는 첫 번째 지진파를 감지하게 되면 두 번째 지진파가 오기 전까지 운행 중인 기차의 속도를 늦추라거나 가스밸브를 잠그라고 경고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 5초전에라도 지진 경보 방송을 했다면 올 5월 6만9,000명이 사망한 중국 지진의 사망자 수를 80% 가량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QCN 설립자들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경보를 발동할 수 있으면서도 패닉 상태를 유발하지 않을 경보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은 보다 많은 지원자를 모아야 한다. 현재까지 QCN에 지원한 사람은 수백 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보다 많은 지역의 노트북 컴퓨터 사용자가 참여하면 QCN은 더욱 신속하게 지진을 감지할 수 있다.
앞으로 QCN이 보다 성장하게 되면 휴대폰이나 게임기 리모컨 역시 지진 감지에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는 아이폰과 위(Wii) 리모트의 리모컨에도 가속도 센서가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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