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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너지만으로 세계 일주하는 솔라 임펄스


솔라 임펄스는 세계 최초의 태양에너지 항공기다.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순전히 태양에너지만으로 비행하는 솔라 임펄스는 2009년 시험비행, 2010년 대양횡단을 거쳐 2011년에는 세계 일주에 나서게 된다.

솔라 임펄스는 450㎏이나 되는 배터리를 장착해야 한다. 해가 뜨지 않는 밤 동안에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도 역시 시속 70km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를 밝히는데 필요한 전력만으로 비행할 수
있을 만큼 에너지 효율성은 뛰어나다.

솔라 임펄스의 세계 일주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고 해서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기술만 잘 활용하면 얼마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심어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공행진 하던 유가가 한풀 꺾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자원 빈국에서 에너지 위기는 한 때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화석연료 시대에서 수소 또는 핵융합에너지 시대로 변천하는 과도기를 제대로 넘기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소비 패러다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검토가 필요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바로 ‘솔라 임펄스(Solar Impulse) 프로젝트’다.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순전히 태양에너지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는 것이다.

■ 과학적 도전을 낳은 모험가의 꿈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는 스위스의 한 모험가가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에너지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한 과학기술자들과 스위스 기업들이 참여해 지난 2003년 발족했다.

이 프로젝트는 3단계로 구성돼 있다. 먼저 시험판(HB-SIA)과 최종판(HB-SIB)의 두 가지 버전으로 태양에너지 항공기를 만들어 2009년 1박2일의 시험비행을 한다. 그리고 1년 뒤인 2010년 대양 횡단에 성공하면 2011년에 세계 일주를 감행한다는 것.
세계 일주는 2명의 조종사가 3~4일씩 비행한 뒤 잠시 착륙해 바통을 터치하는 방식으로 북반구의 모든 대륙을 거치게 된다.

태양에너지 항공기는 태양 빛을 전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태양 전지판을 날개 위에 부착하게 된다. 전력 생산량은 높이고 소모량은 줄이기 위해 날개 길이는 비정상적으로 길다. 하지만 동체를 비롯한 모든 부품은 극도로 작고 가볍다. 이것이 태양에너지 항공기 제작의 기본 개념이다.

비행 속도는 시속 70㎞ 정도로 자동차보다도 빠르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성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엔지니어이자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안드레 보시베르크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를 밝히는데 드는 전력만으로 항공기를 띄워 세계를 일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는 꿈같은 생각은 정신과 의사이자 지난 1992년 대서양 횡단 기구 경주에서 우승한 버트란드 피카드에게서 처음 나왔다.
모험을 즐기는 집안에서 태어난 피카드는 1999년 기구로 세계를 일주한 뒤 자신이 기구를 띄우기 위해 4톤이나 되는 프로판 가스를 대기에 쏟아 부었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 했다. 그리고는 환경오염 없이 적은 에너지로 비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태양에너지로만 비행을 하겠다는 그의 발상은 점차 호응을 얻어갔다. 2003년 스위스의 MIT로 불리는 로잔 공대(EPFL)가 타당성 조사에서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그의 발상은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먼저 타당성 조사를 의뢰받은 안드레 보시베르크가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의 최고경영자(CEO)로 참여했다. 모험을 즐기는 피카드와 스위스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보시베르크는 세계 일주 비행을 직접 실행할 조종사 역할도 맡고 있다.

현재 40여명의 기술진과 100여명의 과학기술 자문위원이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로잔 공대와 유럽우주기구(ESA) 등이 과학적 자문을 맡고 있다. 프로젝트의 총 예산은 7,000만유로(910억 원). 화학기업 솔베이, 시계 제조업체 오메가 등 후원사의 도움으로 현재 77% 정도가 확보된 상태다.

■ 아무도 조종해 보지 않은 항공기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는 최근 두 조종사가 각각 25시간 동안 항공기를 조종하는 시뮬레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물론 실제 비행 환경과 똑같이 만들어진 가상 조종석에서 이뤄진 것이다.

조종사들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장착된 조종석에 않아 210˚에 걸쳐 5개의 모니터에 비치는 실제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지새우는 조종을 시험해 본 것이다.

조종 경험이 풍부한 피카드와 보시베르크지만 이 모의비행은 여느 항공기를 모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보시베르크는 “날개가 이렇게 긴 항공기는 균형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며 “그 누구도 이런 항공기를 조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비행제어 기술이 필요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번 모의비행은 아무도 해 보지 못한 항공기 조종의 감을 잡는 것이 목적이다. 조종사가 자신의 조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다. 또한 2011년 이루어질 세계 일주 때 조종사 혼자 3~4일씩 비행을 감당해야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도 부수적인 테스트 대상이었다.

밤샘 모의비행에서 피카드는 네 번에 걸쳐 20분씩 잠을 쪼개 잤다. 또한 산소 호흡기를 잠깐 잠깐 떼면서 어렵게 샌드위치를 베어 무는 등의 생존 요령도 ‘맛보기’로 체험했다. 조종사와 함께 24시간 눈을 떼지 않고 비행 상태를 모니터한 관제 팀은 혀를 내둘렀다. 피카드가 20분씩의 토막 잠에도 불구하고 통신으로 깨우는 즉시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의 또 다른 주요 목적은 임무수행 소프트웨어를 검증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검증은 무엇보다도 항공기의 에너지 소모와 저장을 모의 실행해 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낮에는 에너지 생산을 최대화하고, 밤에는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종사는 낮에는 고도 1만2,000m로 항공기를 높이 몰았다가 해가 지면 글라이더처럼 점차 고도를 낮춰 3,000m까지 떨어지는 항법을 구사해야 한다.

■ 1g이라도 가볍게, 무게와의 싸움

2009년 시험비행에 나설 항공기 HB-SIA는 현재 뒤렌도르프에서 제작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태양에너지 항공기를 만드는 만큼 최첨단의 초경량 소재기술과 에너지 절약형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태양 전지판이 부착될 항공기 날개의 경우 HB-SIA는 61m, HB-SIB는 80m나 된다. HB-SIB를 기준으로 하면 날개 길이는 에어버스의 대형 여객기인 A340과 비슷하다. 하지만 무게는 고작 자동차 1대와 비슷한 2톤(HB-SIA는 1.5톤)에 불과하다.

프로젝트 팀은 모든 부품의 무게를 1g까지 정확히 재보고, 같은 기능을 가지면서 보다 가벼운 소재로 대체하는 ‘무게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게가 더 나갈 때마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2톤의 무게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리튬 배터리로 전체의 25%인 450㎏이나 된다. 해가 뜨지 않는 밤 동안에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배터리만큼은 더 줄일 수가 없다.



더구나 태양에 의존한 비행은 실제 낮보다 훨씬 짧은 낮을 지낸다고 봐야 한다. 해가 뜬 직후와 해 지기 직전의 태양은 고도가 낮아 태양 전지판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더구나 날씨라는 변수는 사람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가장 큰 난관이다. 실제 지난해 수행했던 또 다른 모의비행에서는 당초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북서쪽으로 기수를 돌려야 했다.

미국의 날씨를 실시간으로 입력해 컴퓨터 시뮬레이션 비행을 벌인 결과 멕시코 해안에 폭풍우가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 비행에서 구름이 많아 배터리를 완전히 채우지 못했거나 바람이 거세 항로 유지에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 상태에서 해가 저물어 버린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밤 동안 배터리를 모두 써버리고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최악의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솔라 임펄스는 단지 현재의 첨단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봐야 한다.

태양 전지판은 가장 효율이 높고 두께 130마이크론의 박막 제조가 가능한 단결정 실리콘 소재를 이용한다. 또한 급격한 온도 변화에 태양 전지판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초박막 플라스틱 막으로 싸여진다. 이는 항공기 외부의 온도가 고도에 따라 영하 60℃에서 영상 80℃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 세계 일주, 그리고 그 후

2011년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이 성공적으로 달성된다면 이후 남겨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교통수단? 아니면 에너지 초절전형 개인 항공기?

이 같은 상상을 현실화하기에는 다소 이르다. 태양에너지 항공기는 교통수단으로 삼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린데다 값이 턱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보시베르크는 발전된 기술과 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솔라 임펄스는 항공기 날개에 충전되는 아주 작은 태양에너지, 다시 말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하나와 맞먹는 전력만 써서 전 세계를 일주할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기술만 잘 활용하면 얼마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라면서 “ 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품고 있는 진정한 야망”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기업들도 이 같은 의미에 공감, 당장 되돌아오는 이익이 없는데도 선뜻 거액의 후원금을 내놓았다. 보시베르크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오염을 유발하고, 재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상황에서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솔라 임펄스와 같은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hee@hk.co.kr






한국도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에 참여

상상력과 도전 의식으로 충만한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한다. 경기도 시흥에 소재한 배터리 전문기업 코캄이 항공기의 핵심 부품인 고효율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 측은 미래형 초절전 초경량 항공기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2004년부터 세계 곳곳의 기업과 연구소를 물색해 왔다.

배터리와 관련해서는 코캄의 리튬 폴리머 전지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의 CEO를 맡고 있는 안드레 보시베르크는 지난해 방한, 코캄과 기본 설계에 대한 개념을 상의하고 공동작업에 돌입했다.

100% 태양에너지에 의존하는 솔라 임펄스는 배터리 효율이 극도로 중요하다. 태양 빛이 없는 밤 동안 순전히 낮에 생산해 배터리에 축적한 전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즉 부피와 무게 대비 충전 능력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의 배터리 기업인 코캄이 이 같은 핵심 부품을 맡게 됐을까. 코캄은 연 매출 150억 원 규모의 배터리 전문기업으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전기 자동차, 잠수함 등 대형 배터리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기업이다.

태양에너지만으로 달리는 자동차 경주인 일본의 솔라카 대회나 미국의 초소형 비행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들이면 으레 코캄의 배터리를 쓰고 있을 정도다.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가 코캄을 처음 접촉한 것도 이 같은 국제대회에서의 성과를 눈여겨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보시베르크는 2년여 동안 여러 배터리 회사들을 접촉했는데, 한국 기업인 코캄이 가장 좋은 솔루션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이 지고 난 뒤 배터리에 충전된 전력만 써서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용량이 큰 대형 배터리가 필요하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용 배터리는 소용없다. 동시에 에너지 밀도가 아주 높아야 한다.”

이 같은 대형 고효율 배터리는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경량 소형 배터리에 비하면 아직 큰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잠수함과 같은 군수용 운송수단이나 전기 자동차와 같은 미래형 운송수단에는 대형 배터리가 필수다. 이런 점에서 솔라 임펄스 프로젝트에 코캄이 배터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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