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근처에 서있는 것만으로는 생명이 위험하지 않다. 가속기 내부의 원형 링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는 320조 개의 양자가 기계를 뚫고 나와 사람을 쓰러뜨릴 확률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각 양자들이 지닌 방사능도 양자 빔의 방향과 초점을 제어하는 7,000개의 초전도 자석이 차단해준다. 이렇게 LHC는 양자 빔이 다양한 보호 장치들과 거의 완벽히 진공 처리된 길이 27km의 대형 원형터널 속을 벗어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보호 조치에도 불구하고 LHC가 가동되면 터널 전체가 전신 CT 촬영을 할 때 노출되는 정도의 방사능으로 뒤덮이게 된다는 것이 CERN의 LHC 장비제어 책임자인 마이크 라몬트의 설명이다.
그는 “LHC의 양자 빔은 철저한 통제 아래 움직이지만 빔을 구성하는 양자 중 일부(?)인 수조개의 양자가 초전도 자석이나 하드웨어, 가스 분자, 그리고 다른 양자들에 부딪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며 “이 충돌로 다량의 2차 방사능 입자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몇 분 동안은 괜찮지만 그 이상 방사능에 노출되면 인체 세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CERN이 LHC 작동 중에는 누구도 터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통같은 보안설비를 마련해 놓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LHC 엔지니어들이 양자 빔의 제어능력을 잃어버림으로서 링 속을 회전하던 양자들이 외부로 방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몬트에 따르면 양자 빔의 폭은 1mm에 불과하지만 빔의 속도가 광속에 필적하는 탓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 구체적으로 양자 빔이 지닌 운동에너지는 152km로 달리는 400톤짜리 고속열차의 에너지와 유사하다. 또한 이 빔은 초전도 자석을 통과하면서 치명적인 고에너지 입자와 방사능을 방출하게 된다.
사람이 이 빔의 진행경로에 있을 때는 물론 그 근처에 가기만 해도 신체에 구멍이 뚫릴 수 있는 것. 이 빔을 맞고 찰나라도 견뎌낼 수 있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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