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 영화중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들 영화에 소개되는 미지의 세계는 태양계나 머나먼 외계행성 등 우주공간인 경우도 있고, 아프리카나 아마존 등의 외딴 밀림지대, 혹은 극지방이나 지하세계인 경우도 있다.
깊은 바다 속, 즉 심해(深海)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중 하나다. 예로부터 깊은 바다 밑은 인간들에게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다 밑에 용왕이 살고 있어서 바다를 다스린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이나 세계 각국의 전설에는 바다 밑에 크고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SF 영화에서도 깊은 바다 밑을 탐험하다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괴(怪) 생명체의 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하거나 지상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기이한 체험을 한다는 내용이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심해 괴물로부터의 습격
심해의 괴물로부터 습격을 받는다는 내용의 영화는 지난 1980년에 나온 심해의 공포(Humanoids from the deep, Monster)를 비롯해 애니메이션과 SF 스릴러 영화 등 몇 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돼 비교적 관심을 끌었던 영화로는 1989년에 나란히 선보인 레비아탄(Leviathan)과 어비스(Abyss)가 있다.
이들 영화는 바다 밑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괴물의 습격을 받거나 미지의 외계 생명체와 조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지만 흥행에서는 상당히 엇갈린 결과를 보였다.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에 피터 웰러, 리처드 크레나, 아만다 페이스 등이 주연으로 나온 레비아탄은 미국 플로리다 근해에서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해저를 탐사하던 중 침몰한 구 (舊)소련 함정 레비아탄의 잔해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함정의 잔해에서 발견된 물건 중 하나인 보드카를 몰래 마셨던 대원 하나는 통증과 함께 몸이 이상하게 변하면서 죽음을 당한다. 또한 함께 보드카를 마셨던 여승무원 역시 몸에 이상을 느끼던 중 죽은 동료의 시신이 흉측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충격 받아 자살을 하고 만다.
레비아탄을 조사하던 대원들은 구소련에서 새로운 종류의 수중생물을 만들어 내려는 실험을 하다가 실패하자 함정을 침몰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죽은 두 동료의 시신은 결국 끔찍한 괴물로 변해 남은 대원들을 공격한다.
비늘과 아가미를 갖춘 이 해저 괴물은 엄청난 세포 증식력을 보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먹어버린 사람의 흔적과 함께 그들의 지능까지 지니게 돼 다른 대원들을 공포와 위험에 몰아넣는다.
해저 괴물의 공격을 받은 나머지 대원들마저 괴물로 변하게 되고, 결국 탐사선의 선장 등 극소수의 대원만이 괴물과의 처절한 사투 끝에 간신히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영화 ‘레비아탄’에 등장하는 해저 괴물은 잡아먹은 사람의 지능까지 지니게 돼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바다 밑 탐험하는 첨단장비
우리말로 심연(深淵)을 뜻하는 어비스 역시 깊은 바다 밑을 탐험하다가 벌어지는 일을 주 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핵잠수함 USS 몬태나호가 정체불명의 물체에 의해 침몰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미 해군은 민간석유 시추선과 함께 생존자 수색작업을 하게 된다. 이들 탐사대원들은 핵잠수함의 생존자는 발견하지 못하고 고압 병으로 쓰러지거나 태풍으로 인한 사고 등으로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생명체가 살지 않는 깊은 심해에서 빛을 내며 지나가는 미지의 생물을 발견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어비스는 거액의 제작비와 특수효과 등 들인 노력에 비해 흥행에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심해 생명체와의 조우가 비교적 평화롭고 아름답게 그려지는 등 레비아탄과 같은 공포나 스릴러가 부족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서 선보인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는 당시로서 매우 높은 수준이었고, 바다 밑을 탐험하는 첨단장비의 모습도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들이 많다. 특히 영화에서 흰 쥐가 액체 산소 속에서 숨을 쉬며 활동하는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이나 합성이 아닌 실제 장면으로 산소가 농축된 액체 불화탄소에서 흰 쥐가 호흡하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무시무시한 바다의 괴물은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나 전설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들이 많은데, 레비아탄도 원래는 페니키아의 신화에 나오는 사나운 바다 괴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레비아탄은 사탄과 같은 악마로 취급되거나 종말론과 관련이 있으며, 그 모습은 대체로 딱딱한 비늘에 덮인 거대한 뱀 또는 악어와 비슷하다. 등에는 방패와 같은 돌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코와 입에서는 불과 연기를 내뿜는 것으로 돼 있다.
오징어나 문어 모습의 괴물
성경이나 신화, 전설 속의 바다 괴물 중에서 매우 고전적인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커다란 오징어나 문어의 모습을 한 괴물이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크라켄(Kraken)이라고도 불렸던 이 바다 괴물은 선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실제 이 괴물이 큰 다리를 이용해 배를 통째로 쥐어 삼킨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유럽 등에서 전해져 내려왔다.
비교적 최근에 국내에서도 개봉돼 인기를 끌었던 캐리비안의 해적 2편-망자의 함(Pirates of Carrabian: Dead man’s chest; 2006)에서도 거대한 문어를 닮은 크라켄이 블랙 펄호와 잭 스패로우 선장을 공격해서 집어 삼키는 장면이 나온다.
근대 프랑스의 SF 작가 쥘 베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해저 2만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에서도 거대 오징어 모습의 바다 괴물과 싸우는 대목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한번 씩은 읽어 보았을 해저 2만리는 해저탐험에 관한 고전적 SF 소설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데, 1954년 같은 이름의 영화가 나온 이후 여러 차례 애니메이션과 TV 시리즈로 선보인 바 있다.
해저 2만리에서 독특한 캐릭터의 네모 선장이 운항하는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특이한 모양과 함께 당시로서는 미지의 에너지를 이용해 움직이는 것으로 돼 있다. 영어로 앵무조개를 뜻하는 노틸러스는 그 이전에도 잠수함 이름으로 사용된 적이 있지만 1954년 미 해군이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을 진수시켰을 때에도 바로 해저 2만리에서 이름을 따 노틸러스 호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해저 2만리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소개된 전설 속의 거대한 오징어, 또는 문어와 비슷한 해양생물이 놀랍게도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로 알키투더스(Architeuthis)라고 불리는 거대한 연체동물이다.
배구공만한 크기의 눈에 몸길이는 10m가 넘는 지구에서 가장 큰 무척추동물로서 배를 통째로 쥐어 삼킬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전설 속의 괴물 오징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1998년 미국에서는 해저 2만리가 상영되던 뉴욕에 길이 7.6m의 진짜 거대 오징어가 뉴질랜드로부터 운반돼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됐다. 이 거대 오징어는 새끼 혹은 어느 정도 자란 수컷 알키투더스로서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거대하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큰 배에 의해 잡히거나 사체가 해안가에서 발견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깊이 1,000m 아래의 심해에 살기 때문에 아직 산 채로 발견되거나 촬영된 적은 없다.
또한 생태도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죽은 거대 오징어의 소화기관에서 발견된 어류나 작은 오징어 등을 통해 그들의 식성을 파악하거나 향유고래와 싸우기도 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여객선 침몰의 과학기술적 접근
바다에서의 모험에 관한 영화중에는 포세이돈 어드벤처(The Poseidon Adventure; 1972)나 타이타닉(Titanic; 1997)처럼 거대 여객선의 침몰 사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것도 꽤 있다.
1972년에 처음 나와서 재난 영화의 효시가 된 로날드 짐 감독, 진 해크만, 어네스트 보그나인 주연의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2006년에도 리메이크된 바 있다.
이 영화는 뜻밖의 엄청난 사고 속에서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처절함을 제대로 그려낸 것이 성공을 거두는 요인이 됐다. 특히 대형 선박의 침몰 과정과 위아래가 뒤집힌 배의 내부구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생존자들이 스스로 살 길을 찾는 과정이 눈길을 끈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릿 주연으로 1997년에 나온 타이타닉은 당시 최대의 흥행 수입을 거두면서 숱한 화제를 뿌린 바 있다. 타이타닉은 주인공들의 멜로나 가슴 아픈 애정 등을 주제로 하는 영화인만큼 모험이나 SF영화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12년 첫 항해에서 빙산에 충돌,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침몰한 비극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실제 잔해가 해저에서 발견되는 장면이 프롤로그에 나온다.
이는 지난 1985년 미 해군이 해저 탐사작업을 통해 타이타닉호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린 사실과 일치한다. 또한 이듬해에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심해 잠수정 앨빈호와 원격탐사 로봇이 타이타닉 선체 내부를 구석구석 누비며 촬영에 성공한 것도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빙산에 옆구리를 스친 타이타닉호의 수밀구획들에 앞쪽부터 차례로 물이 들어가면서 점점 가라앉는 과정, 결국 45˚ 정도로 가파르게 기울어진 배가 압력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두 동강 나고 마는 과정 역시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조선공학이나 기계공학 전공자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
타이타닉 침몰이 남긴 기술적 유산
영화에서는 상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타이타닉호의 침몰 및 승객 구조는 마르코니가 발명한 무선전신 기술과도 큰 관련이 있었음은 물론 향후 무선전신 기술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사고 현장 부근에 있다가 긴급 무선신호를 듣고 승객 구조에 큰 몫을 한 여객선 카페이티아호 및 타이타닉호의 무선전신 기사들은 수많은 생명들을 구해낸 영웅이었다. 특히 영화에서도 활약상이 잠깐 나온 잭 필립스라는 기사는 구명선을 타라는 선장의 명령도 거역하면서 배가 가라앉는 순간까지 긴급구조 신호인 CQD를 두드리면서 타이타닉호와 운명을 같이 했다.
반면 사고 현장 부근을 지나던 다른 여객선과 화물선 하나는 무선전신이 장착되지 않았거나 전신기사가 잠에 빠져있는 바람에 승객 구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안타까운 일도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모든 배에 의무적으로 무선전신기기를 장착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글_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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