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의 조상은 아닐지라도 인간과 돌고래는 동일한 조상에서 출발한 유전학적 형제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바로 수생 유인원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인류의 조상이 바닷가에 머물며 조개 등의 어패류, 거북이와 알, 조류의 알 등을 먹고 살면서 상당시간을 물속에서 생활했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토대로 하면 현재의 원숭이와 유사한 초기 영장류들이 진화를 거쳐 현생인류로 탄생했다는 게 학계의 인정을 받는 정설이다. 이 같은 진화가 이뤄진 장소는 당연히 수풀이 우거진 숲이건 척박한 황무지건 다름 아닌 육지다.
하지만 이 같은 진화론에 의문이 생기는 것은 바로 돌고래 같은 수생 포유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다에서 탄생한 생명체가 지상에 올라와 공룡으로 진화하며 번성했다가 일부는 육지에 남아 진화를 이어갔고, 또 다른 일부는 다시 바다로 돌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왜’라는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어떤 포유류가 언제, 왜 바다로 돌아갔으며 돌고래의 조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유전학적 분류를 통해 보면 소, 말, 돼지 등의 육상 포유류보다 수생 포유류인 돌고래가 인간과 더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돌고래가 현생인류의 조상은 아닐지라도 인간과 돌고래는 동일한 조상에서 출발한 유전학적 형제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새로운 인류 진화 가설 중의 하나가 바로 ‘수생 유인원 이론(Aquatic Ape Theory; AAT)’이다. 이 이론에 대해 학계는 체계화된 이론이 아닌 하나의 가설(Hypothesis)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수생 유인원 가설(Aquatic Ape Hypothesis; AAH)’이라고 부른다.
수생 유인원 이론은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육지에서만 생존한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을 물과 가까웠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에 기반 한다. 그리고 육지로 돌아오지 않고 바다에 남은 인류의 조상이 바로 돌고래 등의 수생 포유류라는 것.
기존 진화론을 토대로 하면 이 같은 이론은 황당한 미스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생 유인원 이론은 상당히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진 가설로 최근 들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수생 유인원 이론의 역사
수생 유인원 이론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수생 유인원 이론을 처음 발표한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의 동물학 교수인 앨리스터 하디. 하디는 해양생태학 중 플랑크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플랑크톤이 해양 먹이사슬 체계의 기초가 된다는 이론을 발표했으며, 이 연구를 통해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하디는 1960년 영국 서브-아쿠아 클럽에서 발간하는 뉴 사이언티스트라는 잡지에 ‘과거에 인류는 보다 많은 시간을 물속에서 지냈을까?’라는 짧은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인류의 조상이 바닷가에 머물며 조개 등의 어패류, 거북이와 알, 조류의 알 등을 먹고 살면서 상당시간을 물속에서 생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반(半) 수생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인류가 수생 생활을 한 시기는 약 300만~9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는 현대의 돌고래가 출현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물론 하디의 이 같은 주장은 당시 보수적인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인간이 인어처럼 생활할 수 있느냐는 강력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하디는 라디오 쇼에 출연하거나 1977년 짧은 논문을 발표해 자신의 수생 유인원 이론을 좀 더 확산시키려고 했다.
하디의 수생 유인원 이론이 새롭게 조명 받게 된 것은 1982년 일레인 모건이 출판한 ‘수생 원숭이(The Aquatic Ape)’라는 책을 통해서다. 보수적인 진화론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수생 유인원 이론은 가설에서 점차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까지 연구된 수생 유인원 이론의 핵심은 생태학적으로나 유전적, 생존 습성, 번식 형태 등으로 볼 때 원숭이보다 돌고래가 현생인류에 보다 가깝다는 것이다.
인류가 수생 생활을 한 시기는 약 300만~ 9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시기는 현대 돌고래가 출현한 시기와 정확히일치 하고 있다.
수생 유인원 이론의 과학적 근거
수생 유인원 이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로는 무엇보다 털의 존재 여부가 꼽힌다. 역설적이지만 현재의 인간과 원숭이 간에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털의 존재 여부이기 때문이다.
원숭이와 동일한 조상에서 진화했으면서도 인간의 털이 사라진 것에 대해 기존 진화론에서는 더운 사바나 기후를 견디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하지만 현재의 열대지방에 생존하는 원숭이에게는 털이 여전히 존재하며, 동굴이나 집안에서 생활하는 여성보다 사냥을 위해 들판을 달렸을 남성에게 털이 더 많이 남아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수생 유인원 이론에서는 포유류의 몸에서 털이 없어지는 경우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털이 없어지는 것은 생활의 대부분을 늪지대를 포함한 물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라는 것.
현재 사람의 매끈한 피부와 돌고래의 피부 유사성은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유사성보다 가깝다. 또한 돌고래의 입 주변에 억센 털이 퇴화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 역시 인간과의 유사성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몸에서 털이 사라진 반면 머리 쪽에는 여전히 많은 양의 털이 남아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역시 반(半) 수생 생활을 했던 인류의 조상이 호흡을 위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을 때 뜨거운 태양이나 추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수생 유인원 이론의 주장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의 직립 보행 역시 숲속의 나무 위에서 사바나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중력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물속에서 생활하면서 물 밖을 내다보기 위해 직립을 했고, 조금씩 이동하는 과정에서 직립보행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골격구조면에서도 인간과 돌고래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돌고래에게 퇴화한 발가락이나 엄지손가락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이는 이들이 영장류를 제외한 다른 육상 포유류보다 인간과의 유사성이 크다는 의미다. 피부 바로 밑의 피하 지방층 역시 돌고래와의 유사성으로 볼 수 있다. 상당수의 육상 포유류들이 체내에 지방층을 쌓아두고 있지만 피부 바로 밑에 저장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이는 원숭이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특징이다.
인간의 경우 다른 육상 영장류와 비교해 약 10배 이상의 지방 세포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피부 바로 아래에 집중돼 있다. 돌고래는 수온이나 수압 변화 등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두터운 피하 지방층을 가지고 있다.
현재 포유류 중 두터운 피하 지방층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동면을 위해 일시적으로 지방을 축적하는 경우와 물속에서 생활하면서 외부 온도 변화를 견디기 위한 경우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은 동면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물속 생활을 하는 돌고래와의 유사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걷기보다 수영 먼저 하는 신생아
선천적으로 수영을 하지 못하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신생아의 경우 본능적으로 걷는 것보다는 수영을 먼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얼굴을 물에 담굴 때 순간적으로 심장박동이 늦춰지는 잠수반사 역시 원숭이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이다. 번식 형태를 봐도 인간과 돌고래의 유사성이 나타난다. 원숭이의 경우 교미를 할 때 수컷이 암컷의 뒤쪽에서 행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육상동물에게 나타나는 교미 특성이다.
반면 인간은 남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 형태로 성교자세를 취하며, 돌고래 역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엄밀하게는 서로의 배 쪽을 마주하는) 형태의 교미를 한다.
출산구조에서의 유사성을 보자. 인간은 산모의 골반보다 태아의 두개골이 커 출산의 고통이 따르게 된다. 태아의 어깨도 넓기 때문에 출산을 할 때 태아의 몸이 한 바퀴 비틀어지며 출산이 이뤄진다.
원숭이에게서는 이 같은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 원숭이 태아의 경우 두개골이 골반보다 작고, 어깨 역시 좁기 때문에 머리와 몸을 비틀며 출산할 필요가 없다. 반면 돌고래의 경우 태아가 몸을 한 바퀴 비틀며 태어난다.
두뇌의 크기와 형태면에서도 돌고래가 인간과 유사하다. 인간과 돌고래는 두뇌의 크기가 크고, 신피질이 매우 발달돼 있다. 주름 또한 많다. 반면 원숭이의 경우 크기와 발달 정도에서 유사성이 떨어진다.
원숭이 역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조상보다 점진적으로 두뇌 크기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선사시대 인류 조상의 급격한 두되 발달에는 미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두뇌의 급격한 발달을 위해서는 DHA 등으로 불리는 필수 지방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인간의 두뇌를 구성하는 필수 지방산 중 식물의 씨앗 등 견과류에서 발견되는 오메가-6와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얻을 수 있는 오메가-3가 정확히 1 대 1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비율은 발달된 큰 두뇌를 갖는 필수 요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육상 포유류 중 두뇌 세포의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비율이 인간과 같은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직 돌고래만이 정확히 인간과 일치하는 비율을 가지고 있다.
인간과 돌고래의 유전자
미국 텍사스 A&M 대학의 데이비드 버스비 연구팀은 지난 1998년 세포 유전학지에 돌고래와 인간의 유전자를 비교한 논문을 발표했다. 요지는 소나 말 등의 육상 포유류보다 돌고래가 인간에 더 가깝다는 것.
이 연구팀은 3종류의 돌고래 태아로부터 확보한 세포를 이용해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돌고래 유전자 22개 중 13개가 인간과 완벽히 일치했으며, 나머지 9개 역시 대부분이 인간 유전자의 재배열 형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수생 유인원 이론은 기존의 사바나 가설이 가진 취약점을 상당부분 설명해주고 있다.
과연 수생 유인원 이론의 주장처럼 인간과 원숭이와 돌고래가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있고, 진화 과정에서 원숭이가 먼저 갈라져 나간 뒤 생활의 대부분을 물속에서 생활한 인류의 조상이 돌고래와 인간으로 분리돼 진화가 이뤄졌을까?
이 같은 가설 또는 이론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과 같은 영장류로 분류되는 원숭이보다 돌고래가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보다 유사하다는 주장은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하고 있다.
또한 인어는 인간과 돌고래가 서로 분리돼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간적인 수생 인류(Aquatic Ape)며, 이것의 존재가 신화나 전설로 남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수생 유인원 이론이 인류 진화론의 취약점을 설명하는 열쇠 역할을 할지, 아니면 단순한 가설에 머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에 대한 호기심과 진화과정에 대한 의문은 수생 유인원 이론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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