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을 6개월 남짓 앞두고 있는 중국 정부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뭘까. 경기 종합성적 1위? 교통체증? 아니다. 답은 ‘날씨’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8월 8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가장 덥고 먼지가 많은 날이다. 더위와 먼지는 운동경기의 최대 적이다. 무더위와 공해속에서 운동할 경우 사망사고까지 부르는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인공강우 팀
이미 중국에서는 공기오염이 최대 이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황사를 동반한 스모그가 닥칠 경우 속수무책이다. 그 것도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말이다. 벌써 마라톤 같은 옥외 경기가 공해 때문에 장애를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무성하다.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의 공기오염은 세계 제일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동차나 공장의 매연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앞서 베이징 시당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공해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4월부터 먼지를 뿜어내는 건물 공사를 중단시키고, 6월 이후에는 매연 배출 공장까지 가동을 중단시킨다는 것. 올림픽 기간 중 차량 2부제 도입도 확정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사가 공기 중에 섞여 날아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무더위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성장에 목을 매고 있는 중국 정부가 기존에 계획한 매연 배출 공장의 소개를 완벽하게 이행할지도 의문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내놓은 ‘비법’이 바로 과학기술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방법은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게 함으로써 공해 물질을 공기 중에서 인위적으로 걷어내는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이미 로켓발사대 5,000대, 대포 7,000문과 5만3,000명으로 구성된 사상 최대 규모의 ‘인공강우 팀’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인공강우 팀이 베이징 상공에 화학물질을 담은 대포를 발사, 매연을 씻어낼 비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올림픽 기간에 인공강우가 이뤄질 경우 이는 역사상 최대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인공강우가 시도됐지만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그리고 한 달이라는 장기간 의 시간에 걸쳐 시도된 적은 없다.
중국은 이미 인공강우에 대한 실습을 마쳤다. 인공강우가 운동하기 좋은 날씨를 만드는 데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에서다. 광활한 국토를 가진 국가적 특성상 가뭄에 시달리는 곳이 많은데, 이를 해결하는데 인공강우가 적절히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지난해 상반기 랴오닝성(遼寧省)은 6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에 시달렸다. 봄부터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으면서 논밭은 마르고 사람들은 마실 물조차 얻기 힘들었다.
드디어 6월 27일 가뭄을 해갈하는 비가 내렸는데, 이 비가 바로 인공강우였다. 이때 내린 비의 양은 모두 8억톤. 이는 우리나라 경기도 전체에 50㎜의 비가 내린 것과 맞먹는 양으로 인공강우 사상 최대 규모였다. 사람의 힘으로 자연현상을 바꿀 수 있음을 실증한 사례다.
중국은 이미 50년 전부터 이 분야의 연구를 해온 인공강우 강국이다. 현재 전국의 현(縣)급 행정구역 2,000개에 나름대로 인공강우를 유도하는 장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름입자의 중력을 키워라
인공강우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질까. 인공강우가 최초로 성공한 것은 지난 1946년 미국에서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빈센트 쉐퍼 박사는 안개로 가득 찬 냉장고에 드라이아이스 파편을 떨어뜨리면 작은 얼음 결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 착안한 그는 실제 구름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리면 눈(얼음 결정)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 바크처 산맥 근처의 4,000m 상공에 올라가 구름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렸다. 그리고 5분 뒤 구름은 눈송이로 변해 땅으로 떨어졌다. 쉐퍼 박사의 실험 이후 인공강우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지만 여전히 원리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 상태에서 비가 내리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구름은 말 그대로 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20㎛(마이크로미터, 1㎛=백만분의 1m) 지름의 아주 작은 물방울인 ‘구름입자’로 이뤄져 있다. 물방울이 하늘에 떠있는 것은 부력 때문이다.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보다 위로 띄우는 부력이 더 크기 때문에 구름입자는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항공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와도 비슷하다.
즉 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구름입자를 다시 물로 뭉쳐 땅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구름입자의 중력을 부력보다 키워야 한다.
보통 구름입자 100만개 이상이 합쳐져 2㎜의 빗방울이나 1~10cm의 눈송이가 되면 중력이 부력보다 커진다. 그리고 그 무게에 의해 땅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자연 상태에서 눈이나 비가 오는 과정이다. 계산에 따르면 순수한 구름입자만으로 빗방울이나 눈송이가 되려면 습도가 400%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구름입자들이 자연 상태에서 뭉치지 않을 때는 인공적으로 이런 형태를 만들어줘야 한다.
자연 상태처럼 습도 400%가 아니라 100%만 돼도 비가 내릴 수 있는데, 이 경우는 구름입자가 서로 뭉치는데 도움을 주는 물질이 구름 속에 들어있으면 된다. 먼지, 연기, 배기가스 등 약 0.1㎜ 크기의 작은 입자들이 구름입자가 뭉치는데 도움을 준다. 이들 입자를 응결핵, 혹은 빙정핵이라고 부른다.
인공강우의 핵심 원리는 바로 응결핵과 빙정핵 역할을 하는 ‘구름 씨’를 뿌려 구름입자들이 뭉치게 하고, 결과적으로 무거워진 구름입자들이 비의 형태로 땅에 떨어지게 돕는 것이다.
구름 종류 따라 구름 씨 달라
사용하는 구름 씨는 구름의 종류와 대기상태에 따라 다르다. 1,000m 이상의 높은 구름은 꼭대기 부분의 구름입자가 얼음 상태로 존재한다. 이런 구름에는 요오드화은(AgI)과 드라이아이스를 많이 사용한다.
요오드화은을 태우면 작은 입자가 생기는데, 이 입자가 영하 4~6℃의 구름에서 주변의 얼음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한다. 요오드화은이 친수성(親水性)이라 얼음을 쉽게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드라이아이스 조각은 영하 10℃도의 구름에서 주변의 구름입자를 얼려서 자신에게 붙이는 방식으로 덩치를 키운다.
낮은 하늘에 있는 구름은 다르다. 낮은 구름은 꼭대기의 구름입자도 얼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염화나트륨(NaCl), 염화칼륨(NaK) 같은 흡습성 물질을 사용한다. 이들을 뿌리면 이들은 주변의 구름입자를 빨아들여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번 커지기 시작한 물방울은 비탈길에 굴리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나 비가 된다.
구름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항공기나 로켓이 동원된다. 항공기를 타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 구름 씨를 직접 살포할 수 있고, 지상에서 로켓을 구름 속으로 발사해 물방울의 응결과정을 도울 수 있다. 효과 면에서 항공기가 낫지만 비용 면으로는 로켓이 주로 이용된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비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수증기를 포함한 어느 정도의 구름은 있어야 한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는 사막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실제 가뭄이 들었을 때도 가뭄이 정말 심할 경우 하늘이 건조해 인공강우가 성공하기 어렵다. 또한 지금까지의 통계자료를 보면 인공강우의 효과는 강우량을 10~20% 정도 증가시키는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것에 비해 인공강우의 효과는 높은 편이 아니다. 인공강우를 이벤트 행사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인공강우는 강우전선에서 실시해 이미 내리는 비를 더 많이 내리도록 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일본의 경우 연중 댐 근처에 적절한 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인공강우를 시행해 물을 확보한다.
물론 인공강우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에 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공강우가 없는 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릴 만큼 여물지 않은 구름을 쥐어짜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임의로 비를 내리게 하면 다른 한쪽은 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는 지역 및 국가 사이의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사람이 자연현상을 조절하는 것은 항상 한계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인공강우 기술의 또 다른 활용
인공강우 기술은 비를 내리게 하는것뿐 아니라 반대로 구름을 없어지게 하는데도 사용된다.
유명한 사례는 지난해 5월 9일 러시아의 모스크바 붉은 광장. 당시 이 장소에서는 전승기념일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모스크바 상공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은 자칫하면 행사를 망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러시아 공군은 항공기 12대를 동원해 모스크바 상공에 구름 씨를 뿌렸다. 미리 비를 내리게 해서 먹구름을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퍼레이드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중국 기상당국도 올림픽 개막을 정확히 1년 앞둔 지난 8일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성립 60주년 기념식을 치르는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인공 기상조절 훈련을 실시했다.
당일 위성관측 결과 자치구 수도인 후허하오터로 이동 중인 구름층이 비를 뿌릴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되자 중국 기상당국은 3대의 항공기를 발진시켜 후허하오터에서 100㎞ 떨어진 상공에서 비구름 요격작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 5시간동안 비구름 층에 요오드화 은, 규조토 등 촉매제를 뿌려 빗방울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파괴, 성공적으로 비구름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이날 인공 기상조절로 중국 정부의 유력인사가 참석한 기념식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속에서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인공강우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은 한 방울의 구름이라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공강우 기술 개발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 지구온난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물이 최고의 자원으로 떠오르면 인공강우에 대한 필요성도 한층 커질 것이다.
대표적인 미래 기술로는 전기장을 이용해 하늘에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게 하는 기술이 있다. 여기에는 요드화은 등의 구름 씨가 필요 없다. 혹시 지상에 떨어져 지표면을 오염시킬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대기에 떠 있는 수많은 입자들을 전기장으로 교란해 수증기를 끌어 모으는 방법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레인메이커의 과거와 현재
적절한 비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지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다.
서양 속담에 ‘행운을 부르는 사람’, ‘특정 분야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레인메이커(Rainmaker)’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원래 레인메이커는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아메리카 인디언 주술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레인메이커가 행운과 영향력의 상징이 된 것은 인디언 주술사들이 지내는 기우제가 100% 의 확률로 비를 내리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번 기우제를 시작하면 황당하게도 ‘비가 올 때까지’ 행사를 계속했다. 이들의 기우제가 100% 성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에 와서 레인메이커는 또 다른 뜻으로 쓰인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서 비를 만들어내는 인공강우 전문가를 레인메이커라고 하는 것이다.
12세기 중국의 송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수호지’에서 양산박 108 호걸들을 지휘하는 인물인 송강(宋江)도 비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그의 별명은 급시우(及時雨)였는데, 이는 ‘때에 맞춰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당시는 천수답의 농경사회였다는 점에서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였는지는 이런 이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최수문 서울경제 기자 chs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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