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그랜드 챌린지는 미국의 유명한 무인자동차 경주 대회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무인자동차들은 센서, 레이저, 카메라, 레이더 등을 통해 주어진 시간 내에 목표 거리를 주파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랜드 챌린지가 있다. 정식 명칭은 로봇 그랜드 챌린지 대회다. 미국의 경우 는 군사적 용도를 염두에 두고 자동차의 자동주행 기능에 주력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즉 사회적인 로봇의 기능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도로를 따라 주행하며 경비서는 로봇
“달려라 달려, 로버트야. 날아라 날아….”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로버트 태권 V’의 주제가다.
하지만 아직도 현실화하지 않은 로봇기술의 미래. 만화 속 로봇처럼 사람과 교감하며 사람처럼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자기 혼자 알아서 움직이는 로봇은 여전히 어려운 기술이다.
물론 자동차나 비행기 등 기계적 주행 기술만 보면 현대의 기계공학은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혼자 주변을 살피고 장애물을 감지하면서 목적지까지 최적 경로를 찾아가는 로봇이란 연구자들에게 ‘꿈’과 같은 희망이자 야심찬 도전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지로봇연구단의 강성철 박사팀은 최근 도로를 혼자 주행하면서 카메라로 실시간 주변 광경을 관제센터로 전송하는 경비 로봇 ‘시큐로(Securo·security robot)’를 개발했다.
시큐로는 사람이 다소 빠르게 걷는 속도인 시속 5.4㎞로 순환도로 1km 구간을 성공적으로 주행했다. 시큐로는 목적지와 주요 경유지만 입력한 상태에서 혼자 길을 찾아 도로의 오른쪽 가장자리를 따라 다녔다.
이면도로 정도의 작은 길이라면 교차로를 건널 수도 있다. 정면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어 비친 영상을 전송한다. 영상을 받아본 관제센터에서는 시큐로의 카메라가 바라보는 건물 주변 상황을 모니터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시큐로는 순찰 도는 경비원의 역할을 한 것이다.
고작 1㎞를 더듬더듬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대수일까?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차량용 내비게이션 장치는 목적지만 입력해 주면 길을 잘만 찾는데 말이다.
“보통 야외에서 로봇이 자신의 위치를 알고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잡으려면 지구위치측정(GPS)센서를 이용해야 합니다. 지구 위의 현재 위치에서 통신으로 연결되는 위성이 많을수록 위치를 측정하는 오차가 적어져서 오차는 20㎝ 안팎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탁 트인 곳이라면 모를까 도심에서는 고층 빌딩이나 나무숲에 가려 위성신호가 자주 단절돼요. 그래서 GPS만으로 위치를 추적하려면 통상 ±10m의 오차가 납니다. 내비게이션 장치는 지도상의 차도만 다닌다는 전제가 있어 오차를 무시하고 차선 위에 자기 위치를 잡지만 이런 전제가 없이 자동차 혼자 굴러간다면 차선을 제멋대로 바꾸거나 경계석에 부딪히는 사고가 잦을 겁니다.” 강 박사의 설명이다.
GPS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면 카메라에 비치는 영상정보를 활용해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즉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고, 차선이 그어진 방향을 감지하며, 앞이나 옆에 다른 장애물은 없는지를 사람이 눈으로 보듯 카메라로 보고 식별하는 것이다.
이 같은 패턴 인식 기술이 발전하긴 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 어스름한 저녁,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는 보이는 모습이 제각각이어서 사람만큼 쉽게 차선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시큐로는 정밀 GPS 위치센서와 나침반처럼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는 방향센서 외에 레이저를 이용한 물체 탐지 스캐너를 장착, 도로에 놓인 연석을 감지하고 이를 따라 간다. 강 박사는 “로봇에 장착된 스캐너가 경계석과 도로 지면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을 초당 10회 정도 지속적으로 스캐닝해서 도로의 경계를 확인한다”면서 “이에 따라 움직이는 장애물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은 교차로를 건널 때는 방향센서와 GPS 정보를 이용한다. 물론 시큐로가 다닐 수 있는 길은 경계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다.
시큐로는 대규모 공공시설이나 플랜트 단지와 같은 산업시설에서 화재감시, 경비, 순찰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특히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화재지역에 투입될 화재진압 로봇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또 노약자나 장애자의 개인이동수단과 결합하면 길을 모르는 노약자도 편안히 목적지까지 안내해 줄 수 있다.
도심을 달리는 무인자동차
미국의 무인자동차 경주인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 대회는 KIST의 시큐로 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국(DARPA)이 그랜드 챌린지 대회를 처음 개최한 것은 지난 2004년. 캘리포니아 주 바스토에서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러 네바다 주 프림에 이르는 227.2km 구간을 무인자동차로 완주하는 임무였지만 결승점을 통과한 무인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다.
하지만 2005년 10월에 열린 제2회 대회에서는 폭스바겐 투아렉을 개조한 스탠포드 대학팀의 자동차 스탠리(Stanley)가 212.4㎞를 6시간 53분 58초 만에 달려 200만 달러를 거머쥐었다.
3회째를 맞은 올해 그랜드 챌린지 대회는 1, 2회 대회 때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진화했다. 허허벌판을 혼자 달려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신호등과 교차로, 자동차 등이 있는 도심 환경에서 신호 위반이나 충돌 없이 6시간 내에 96㎞를 주파해야 한다. 그래서 대회 명칭도 ‘어번 챌린지(Urban Chanllenge)’였다.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3일까지 캘리포니아 남부의 빅토빌 로지스틱스 공항 일대에 도심의 도로 세트가 만들어졌고, 여러 대의 자동차가 동시에 움직였다.
대회에는 총 35개 팀이 참가했으며, 예선을 거친 11개 팀이 본선이 진출했다. 그리고 윌리엄 레드 휘태커가 이끄는 카네기멜론 대학팀이 2005년도 우승자인 스탠포드 대학팀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다. 스탠포드 대학팀은 2위로 100만 달러의 상금을 획득했고, 3위는 버지니아공대(상금 50만 달러)에 돌아갔다.
사실 1, 2, 3위를 차지한 세 팀 모두 6시간 이내에 결승점에 도달했다. 결승점을 가장 먼저 통과한 것은 스탠포드 대학팀의 ‘주니어(Junior)’였다. 하지만 주최 측은 달리는 자동차들을 수시로 정지시켰고, 이 같은 정지 시간을 뺀 순 주행 시간을 따진 결과 카네기멜론 대학팀의 ‘보스(Boss)’가 스탠포드 대학팀의 주니어보다 20분 정도 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스는 평균 시속 22.5km로 달렸다.
보스는 12개가 넘는 레이저 센서, 카메라, 레이더 등을 장착해 도로와 차선, 신호등, 그리고 주위에 서 있거나 움직이는 차량 등 장애물을 인식했다. 도로와 신호등까지 보는 보스의 ‘눈’은 시큐로의 기술보다 월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기가 열린 환경이 실제 도심이 아니라 도심의 도로를 가정한 탁 트인 야외라는 점에서 GPS로 자기 위치를 측정하는데 유리했다.
보스가 탁월했던 것은 장애물을 인지하는 레이저 센서와 충돌을 방지하는 방어운전 프로그램이었다. 참가팀을 조마조마하게 했던 비디오 판독에서 수많은 참가팀이 다른 차량과 부딪히는 장면이 찍혀 우승권에서 멀어진 반면 보스는 한 번도 충돌하지 않았다.
또 다른 도전-사람과 함께 다니기
우리나라에도 ‘로봇 그랜드 챌린지 대회’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경기와는 크게 다르다. 야외에서의 자동차 주행이 주가 된 미국의 그랜드 챌린지와는 달리 건물 안에서 목적지로 가서 사람이 명령한 대로 심부름을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대회였다.
산업자원부 주최 ‘로봇 월드 2007’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상금 1억원이 걸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연이었다.
대회에서 챌린지 걸로 명명된 여성은 미션에 도전하는 로봇에게 “309호에 가서 나를 찾아 물 컵을 가져오세요”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면 로봇은 이 명령을 듣고 엘리베이터를 타서 309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이어 심부름을 시킨 사람을 찾아가서 물건을 전달받은 후 되돌아와야 한다.
참가팀에게는 미션이 엘리베이터를 타야하고 테니스공, 우유병, 물 컵, 전화기, 딱 풀 중 지정된 한 가지를 갖고 오는 것이라는 사실만 고지됐다. 대회가 열릴 장소가 어디인지, 물건을 줄 사람은 누구인지, 물건이 있는 방 호수가 몇 호인지 등은 모두 대회가 열리는 그 순간까지 기밀이었다.
“일단 주변의 지형지물을 감지하면서 주행하는 능력은 기본이죠. 여기에 명령을 이해하는 음성 인식, 명령을 내린 사람의 얼굴을 분간하는 얼굴 인식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면 팔을 잘 제어해야죠. 물건을 가져오려면 손가락도 제어해야 할 겁니다. 딱 풀 같은 건 집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기술 중 하나는 로봇이 주변을 인식해서 지도를 그리고, 그 안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위치를 찾는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기술입니다. 건물 지도는 대회 직전 1층만 제공했고, 3층 지도는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봇 스스로 지도를 그려가면서 309호를 찾아야 하죠.”
대회 심사위원인 정완균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야외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그랜드 챌린지 대회보다 훨씬 복잡한 기능을 요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서비스 로봇을 개발하는 데에는 모두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말한다.
지능으로 따지면 5세 정도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회 주최 측은 로봇에게 부여한 것과 똑 같은 임무를 5세의 이하윤 어린이에게 시켜보았다. 하윤 양은 15분 33초 만에 우유병을 갖고 되돌아왔다. 하지만 하윤 양도 낯설고 큰 건물과 혼잡한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당황해 중간 중간 보호자의 주의가 없었다면 자칫 길을 잃을 뻔했다.
대회 참가팀은 총 4팀. 이 대회가 요구하는 임무와 비슷한 서비스 로봇 개발을 사업 목표로 삼고 있는 과학기술부 지능로봇사업단의 ‘씨로스’, 부산대 지능기계공학과의 ‘MC로봇’, 성균관대의 ‘아이코니안-원’, 그리고 전남 지역 5개 대학 학부생들이 연합한 전남연합팀의 ‘사이언스 V’ 등이다.
하지만 어느 팀도 심부름 임무를 완수하기는커녕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가지도 못했다.
성균관대 팀은 로봇이 움직이지 않아 출발도 못했고, 전남연합팀은 지도의 방위를 거꾸로 입력하는 바람에 출발지점에서 헤매다 끝났다. 가장 멀리 전진한 것은 부산대 팀. 50m쯤 되는 엘리베이터까지 17분이 걸려 도착했지만 안타깝게도 엘리베이터를 인식하지 못해 문 여는 버튼을 누르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참가팀은 “조명이 너무 밝아서 로봇이 평소 인식했던 엘리베이터와는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상금 1억원은 다음 해로 이월돼 내년 대회 우승자는 2억원, 만약 내년에도 우승자가 나오지 못하면 2년 뒤 우승자는 3억원의 상금을 챙기게 된다.
사실 미국의 그랜드 챌린지 대회가 군사적 용도를 염두에 두고 자동주행 기능에 주력한 반면 우리나라의 그랜드 챌린지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사회적인 로봇의 기능에 무게를 두고 있다.
즉 사람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사람 얼굴을 알아보며,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심부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임무수행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시큐로가 차선을 카메라로 직접 인식하는 기술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처럼 로봇 그랜드 챌린지 참가 로봇들도 달라지는 조명에 따라 벽, 엘리베이터, 사람 얼굴 등의 패턴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몰려 서있는 구경꾼을 벽과 식별해야 한다. 소란스러운 음성 속에서 챌린지 걸의 명령만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기능이건만 로봇에게 이를 부여하는 기술은 세계의 연구자들이 모두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이다. 오죽하면 ‘대단한 도전(Grand Challenge)’일까.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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