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한 후 퇴근할 때 까지 끊임없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야 하는 직업이라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끔찍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학습용 사체 표준 준비자’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업무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생물학 실험에 쓰일 각종 생물 사체 표본을 만드는 것.
이에 따라 하루 종일 수십 종의 동물과 벌레들을 상처 없이 안락사 시켜 예쁘게 포장해 놓는 것이 주요 일과다.
표본의 종류도 다양해 누구나 중학교 생물시간에 한번쯤 보았을 해부용 개구리부터 고양이, 비둘기, 상어, 바퀴벌레, 벼룩까지 맞닥뜨려야 한다.
미국 최대의 생물학 표본 공급 업체인 워즈 내추럴 사이언스사에서 근무하는 짐 콜린스는 “일반인들은 영안실에서나 맡아볼 수 있는 포름알데히드 냄새 속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며 “하지만 가장 힘든 점은 살아있는 생물을 죽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바퀴벌레, 벼룩과 같은 곤충류는 그나마 처리가 쉬운 편이다. 그냥 알코올 병속에 넣어 버리면 끝이기 때문이다.
반면 비둘기나 개구리 같이 수집가나 사육사들이 산 채로 공급하는 동물들의 경우 표본 준비자들이 직접 안락사 시킬 수밖에 없다. (비둘기는 이산화탄소가 채워진 방에 넣고, 개구리는 치과용 진통제로 쓰이는 벤젠에 담아 질식시킨다.)
이렇게 준비된 사체를 포름알데히드로 방부처리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때로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표본의 정맥과 동맥에 각기 다른 색깔의 라텍스(latex) 액체를 주입해야 할 때도 있다.
콜린스는 “매일 동물과 곤충을 죽이고 그 사체를 만져야 하는 탓에 입사 후 하루 이틀 만에 사직서를 내놓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준비한 표본으로 많은 학생들이 생물학자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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