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판길 교수는 ‘분자 스위치’라는 새로운 생체신호 전달개념을 토대로 성장호르몬 신호조절 과정의 핵심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그동안 성장호르몬이 세포로 전달돼 성장과 분화에 미치는 영향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지만 구체적인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서 교수의 이번 연구 성과는 암과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치료 연구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8월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서판길 포항공대(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마치 전기를 제어하는 스위치처럼 사람 몸속에도 세포의 성장과 발육을 조절하는 이른바 ‘생체 스위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쥐 세포를 유전자 변형으로 조작, 수많은 실험 끝에 실제 인체 성장과 노화를 관장하고 생체 기능의 많은 부분과 연관된 생체 스위치의 존재를 발견했다.
인체 구조만큼이나 복잡한 이름을 가진 ‘포스파리파제C-감마1(PLCγ1)’이라는 효소가 바로 그것이다.
서 교수는 PLCγ1이 PTP-1B와 결합할 때 뇌에서 분비된 성장호르몬의 신호전달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생체신호 전달이라는 개념이 있어야만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는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는 단순한 일련 과정이 아닌, 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신호를 활성화시키거나 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체내에 존재하고 있다”며 “따라서 이를 제어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분자가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연구 당시 굳게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서 교수는 생체신호 전달의 핵심 효소로 알려진 포스파리파제C(PLC)의 동위 효소를 분리, 정제해 유전자를 복제하는 식으로 자신의 믿음을 검증해갔다.
이 과정에서 PLCγ1이 성장 인자 등에 의해 활성화되고 세포 내 인지질을 가수분해해 2차 신호전달 물질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서 교수는 “유전자 적출 쥐를 통해 실험한 결과 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PLCγ1이 PTP-1B와 결합할 때 신호전달이 잘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유전자 PLC-γ1을 매개로 하는 다중 결합체 형성은 성장호르몬 신호를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신호전달 조절 장치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또 PLCγ1이 단백질 결합을 통해 세포의 성장 신호를 증폭, 암 생성을 촉진시킨다는 점을 함께 규명해 암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국제 학계에 제시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는 지난해 발표되자마자 세계적 과학저널인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 11월 인터넷 판에 게재됐다.
뿐만 아니라 서 교수는 지난 1989년 포항공대에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세포의 신호전달 관련 단백질의 정체 규명, 신경세포에서의 신호전달 기전 연구, 성장인자에 의한 암 발생 기전 등의 연구를 중심으로 총 180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 약 6,000회의 피(被) 인용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서 교수는 “성장호르몬이 세포로 전달돼 성장과 분화에 미치는 영향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지만 구체적인 과정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며 “호르몬 과다 분비가 원인인 암과 당뇨 등 대사성 질환치료 연구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재철 서울경제 기자 hummi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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