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과학자라면 으레 첨단 실험도구들이 가득 찬 실험실에서 인류의 삶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과학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어린이들도 TV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같은 모습의 과학자들을 보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학자라고 해서 누구나 멋진 가운을 입고 멋진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라고는 해도 웬만한 3D 직종을 능가하는 끔찍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파퓰러사이언스는 과학계 최악의 연구 분야를 선정해 발표했는데, 이중 현직 과학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기피대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의학 곤충학자’다.
일반인들은 단 1마리만 봐도 질겁할 구더기들이 수백, 수천마리씩 들끓고 있는 부패한 시신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것이 이들의 숙명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사체가 부패한 상태에서 발견되면 사망시간 추정이 어려워지는데, 바로 이 난제를 해결해 내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이를 위해 법의학 곤충학자들은 가장 먼저 부패 중인 시신에서 살고 있는 검정파리 또는 치즈 스키퍼(cheese skipper) 파리의 알과 구더기, 성충의 숫자를 철저하게 파악한다.
죽은 사체에 알을 낳는 이 곤충들은 세계 최고의 검시관으로 불릴 만큼 성장단계가 명확해 구더기나 유충의 상태를 통해 비교적 정확한 사망시간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700여건의 사망사건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 미국 최고의 법의학 곤충학자로 손꼽히는 닐 해스컬은 “우리에게는 아침 식사가 소화되기도 전에 눈과 입에 구더기들이 가득 찬 시신을 대면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이것이 둔감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분야의 최고가 되려면 미세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민감함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그는 수년전 클리블랜드에서 발생한 범죄사건 해결을 위해 무려 17마리의 돼지 사체를 인위적으로 부패시키면서 온도와 습도에 따른 구더기의 성장시간을 파악,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기도 했다.
해스컬은 “공인된 전문 법의학 곤충학자가 미국 전역에 20여명에 불과할 만큼 이 분야는 과학계의 대표적 혐오 직종의 하나”라며 “하지만 우리가 없다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 백,수 천 건의 살인사건이 미결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이 보다 깨끗한 직업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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