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시어도어 그레이
안개상자만 있으면 주변에 떠다니는 아원자 상태의 방사성 물질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끔씩 술에 취한 듯 몽롱한 안개 속에서 세세한 아원자 입자가 눈앞에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려면 꽤 강한 물질이 필요한데, 200도의 순수한 알코올, 철물점에서 구할 수 있는 변성 알코올 또는 100% 이소프로필이 필요하다. 럼주나 보드카는 이에 비하면 너무 물을 많이 탄 것이다.
누군가 말꼬리를 잡기 전에 한 마디 하자면, 내가 알코올을 마시는 게 아니라 안개상자라는 상자에 알코올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상자가 있으면 알코올의 진한 안개 속에서 방사성 물질이 자연 붕괴하면서 생기는 물질, 즉, 아원자 입자의 급속한 확대 과정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안개상자는 과포화 상태의 증기층을 만드는 작용을 한다. 이 증기층에서는 기체 상태의 알코올이 액화 온도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냉각되어 있지만 응축을 발생시킬 요인이 없어 액화되지는 못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이 상태에서 고속의 알파 입자(헬륨 핵), 베타 입자(전자) 또는 감마선이 응축을 촉발시킬만한 정도로 증기를 휘젓는다. 결과적으로 미세한 교란 상태가 엄청나게 증폭되는 과정을 육안으로도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이 페이지의 사진들은 하나의 알파 입자가 거품의 약 1038배 만큼 큰 흔적을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엄청난 상자의 제작 과정은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꽤 까다롭다. 잘 밀폐된 상자를 만들어 위쪽은 상온으로, 아래쪽은 매우 차가운 공기로 채운다. 알코올에 적신 천을 넣어 두어 증기를 공급한다. 드라이아이스 덩어리 위에 장치를 두면 상자 아래쪽 공기가 냉각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대부분의 유리와 일부 플라스틱은 드라이아이스와 접촉할 경우 깨진다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는 실리콘으로 접착한 플렉시글래스를 사용한다. 잠시 후(수분이 걸리기도 하고 운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다), 상자 내부에서 따뜻한 알코올 증기가 천천히 냉각되고 차가운 바닥 쪽으로 가라고 바닥 바로 위에 과포화 조건이 만들어진다... 아닐 수도 있고. 필자의 경우에는 수일이 걸렸고, 일리노이 주립대의 조나단 스위들러와 버나드 딕이 도움을 주었다.
방사성 물질이 없더라도 아무 방향으로나 때때로 발생하는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는 우주 광선, 라돈 가스 그리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타 다양한 방사성 물질로 인한 결과이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빨리 발생하도록 하기 위해, 토륨 호일 조각을 상자에 넣어 가시성 알파 입자의 수를 크게 늘렸다. 화재경보기에 들어가는 아메리슘 또는 정전기 방지용 브러시에 들어가는 폴로늄 등 일반적인 방사성 재료를 사용하면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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