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제목은 “우리는 미치지 않았다”이다.
잠시동안 과학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리둥절해 했다. 몇 사람은 웃었고, 다른 사람들은 심기가 불편해 했다. 그렇다고 누가 이들을 탓하겠는가? 원자폭탄의 탄생지로 유명한 로스 알라모스는 라스뮤센에게 500만 달러의 연구 자금을 제공하며 1940년대에 소나무가 듬성듬성한 뉴멕시코의 이 외진 장소로 과학자들을 끌어 모았던 프로젝트만큼이나 대담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가 하려는 연구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신나간 계획처럼 들리겠지만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화학 공식들이 빼곡한 슬라이드들을 넘기면서 첸은 처음으로 이곳에 함께 모인 라스뮤센의 팀의 화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벌레를 만들어 낼지 설명한다. 이들은 현존하는 생물체의 DNA만 변형하는 데 그치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생명이 없는 분자들로 가득한 비이커에 생명의 숨길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첸이 설명한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나노 규모에서 펼쳐질 프랑켄슈타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팀의 “원형 세포”는 일반 박테리아보다 수천 배 작고 훨씬 더 원시적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생명체의 정의적 특성을 띠게 되면서 번식하며 자체적인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진화도 한다. 만약 7년 전에 원시세포를 구상하기 시작한 라스뮤센과 그의 동료들이 성공한다면 이들은 생명의 한계를 넘어 인류에게 현재는 자연 혹은 신에게 속한 능력을 인간에게 선사하게 될 것이다.
생명체를 만들려는 소망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과학자들은 날고기를 통에 넣고 치워 둔 후 몇 주 지나 돌아와서는 구더기류처럼 “자발적으로 탄생한 생명체”를 관찰했다.
* 우연한 화학적 상호작용
1790년대에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루이기 갈바니는 절단된 개구리의 다리에 전기를 가하자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실험은 거의 30년이 지난 후 매리 쉘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1953년 시카고 대학의 스탠리 밀러와 해롤드 유레이는 기념비적인 연구를 했다. 이들은 지구의 원시 대기에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메탄과 암모니아, 수소와 수증기 같은 분자들을 섞어 모은 뒤 번개와 같은 전기 방전을 일으켰다. 1주일 후 아미노산과 단백질 구성 블록들, 그리고 생명체가 나타났다. 이것은 우연한 화학적 상호작용이 생명체에 오를 수도 있다는 증거였다.
첸이 프리젠테이션을 마치자 라스뮤센이 몸을 앞으로 굽혔다. “만약 우리가 몇 차례 복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수만 있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라고 그가 장중하게 말한다. 연구비 승인이 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이같은 대담한 주장을 할 만한 과학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방에 모인 베테랑 과학자들 몇몇이 키득거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또 시작이군.
하지만 새로운 유기체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은 라스뮤센의 팀만이 아니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100군데가 넘는 연구실들에서 이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혁신적인 DNA 배열 기술을 발명해 인간의 유전자 해독을 계획보다 4년 앞당긴 유명한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팀도 있다. 지난 4월 유럽 연맹은 1,000억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형 인공 세포 진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필자가 10월에 라스뮤센을 만났을 때 그는 일본에서의 한 연구가 이제 막 진행되려 한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은 반드시 성공할 프로젝트입니다. 더 이상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누가 성공하느냐의 문제입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이 과학자들 중 대다수가 과학의 오랜 난제인 인간의 탄생 과정을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40억 년 전 무생물 상태의 분자들이 어떻게 결합해 최초의 유기체가 탄생했고, 그로부터 지구상에 다양한 생명체가 어떻게 확산되었을까?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생명체 탄생이 우연인가, 필연이가 하는 점입니다”라고 코펜하겐 대학 화학자로 현재 라스뮤센과 공조중인 피터 닐슨이 말한다.
* 맞춤 제작형 유기체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맞춤제작형 유기체들로 생명공학 붐이 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미 유전자 분리와 같은 유전공학 기술들 덕분에 균류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옥수수부터 우유에 의약품이 섞여 나오는 젖소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주변의 원재료에만 국한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이들은 좀 더 통통한 돼지 이상의 것을 원합니다. 이들은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영역 너머의 무언가를 원합니다”라고 플로리다 대학 생물물리학자인 스티븐 베너가 말한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연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른다. 이들은 현존하는 것과 유사한 세포, 즉 이중막으로 둘러싸이고 DNA와 RNA의 형태로 된 유전 물질로 채워져 있는 세포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라스뮤센은 이와 다르다. 49년 생애 대부분 기간동안 네덜란드 태생의 이론물리학자인 그는 생명체의 근원을 이해하는 데 몰입해 왔다. 자신만의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그는 생물학 교과서를 던져버리고 이렇게 자문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생물은 무엇일까? 그 결과 그의 원형 세포는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생명체가 되었다. “전 좀 극단에 속하는 편이죠”라고 그가 인정한다.
로스 알라모스에서 리스크가 높은 획기적 연구들을 관장하는 호워드 핸슨은 라스뮤센의 제안이 지금껏 자금을 댔던 연구들 중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말한다. 산타크루즈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의 생명체 기원 연구가인 화학자 데이빗 디머는 라스뮤센이 이 분야에서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인 과학자라고 말한다. “그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합니다”라고 디머가 말한다. “난관에 부딪쳐도 다시 일어나 꿋꿋히 다시 시작합니다.”
* 진흙탕속에서 춤추는 분자들
작년 6월 어느 따스한 토요일에 필자는 렌트한 산타페에 라스뮤센을 태우고 주말에 멕시코 시티의 장에 나가 자신이 직접 그린 추상풍경화를 판매하는 독일 태생의 화가인 그의 부인 제니에게 갔다. 비바람에 깍인 바위 부스러기들과 소나무와 노간주 나무가 듬성듬성 늘어선 메마른 계곡을 지나는 동안 뉴멕시코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사색하기에 꽤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황량하고 바위가 드러난 풍경을 바라보며 필자는 원시적인 생명체 이전 상태의 분자들이 도로가의 탁한 진흙탕 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다가 인디안 카지노의 네온 불빛이 수평선 위로 보이자 상상의 나래를 접었다.
라스뮤센도 분명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싶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다보며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우리가 존재하는 능력과 상반되지요. 산은 무너져 내리고, 풍경은 풍상에 사라지죠. 집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무너져 버리죠. 차는 늘 정비하러 가야 하고요.” 그가 몸을 돌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복잡성을 만들어 낸 건 자연의 무엇이었을까요? 그게 제 연구의 동기랍니다.”
라스뮤센은 코펜하겐에서 자동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작은 해변 마을인 멍커럽에서 성장했다. 그의 가장 오래된 추억은 벽돌공에서 기업가로 변신한 아빠를 이끌고 저녁 산책에 나가 아빠의 어깨에 올라탄 채 별에 좀 더 가까이 닿아 보려 하던 일이었다. 그곳에서 미래의 과학자와 전직 벽돌공은 우주에 관한 의문점들을 애기했다. 우주에는 끝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밖에는 또 뭐가 있을까? 라스뮤센은 네 살이었다.
시간이 흘러 1970년대 후반에 덴마크 공대 물리학도가 된 라스뮤센은 생명의 기원에 관심을 갖게 되어 벨기에의 물리화학자인 일리야 프리고진과 독일 생물물리학자인 맨프레드 에이겐의 논문을 보게 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 자기조직계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의 교차로에 놓인 자기조직화는 모래 언덕의 알갱이들로부터 물고기 떼의 한몸 같은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각 현상마다 질서와 패턴이 마치 무질서로부터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스뮤센은 이런 현상들이 원시 해양에서 생성된 생명없는 유기 분자들에게 어떻게 적용되어 스스로 조직화되면서 점차 복잡한 생명체로 발전하다가 인간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궁금했다.
* 생명 기원연구에 관한 충고
그는 컴퓨터 실험실에서 오랜 시간동안 생명체와 같은 과정들을 모델링하면서 보냈는데, 이에 대해 선임자들은 매우 실망스러워했다. “제 물리학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거 게임이잖아.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라고 그가 회상한다. 교수들은 그에게 최후 충고를 했다. 계속해서 생명의 기원 연구를 한답시고 노닥거리다가는 물리학자로서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거라는 충고였다. 하지만 그때 라스뮤센은 이미 되돌이킬 수 없었다. 논문 주제를 결정할 때가 되자 그는 유전자가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지 규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도교수들은 그를 포기했지만 라스뮤센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계속해 생각했다. 산타페 안에서 만난 그의 아내는 즐거운 눈빛으로 “절대로 말릴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1987년 라스뮤센은 이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치면서 계속 과학계에 남을 것인지 갈등을 느꼈다. 그런데 한 친구이자 동료가 그에게 인공생명체라는 새로운 분야에 관한 미국에서의 컨퍼런스 안내문을 보내왔다. “전 그걸 서너 번 읽었습니다”라고 라스뮤센이 말한다. “그리고는 전화를 집어 들었죠.”
그가 전화를 하자 로스 알라모스에서 개최되는 컨퍼런스에 참석하도록 초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유전자와 다른 초기 생물 분자들이 언제 태어났는지 예측하기 위해 그가 만든 다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대해 토론할 기회도 주어졌다. 1년 후 그는 로스 알라모스에서 자기조직 복합계를 연구하는 정식 일자리를 구했는데 이를 계기로 이후 수년간 그는 도시 확산이나 교통 체증 역학처럼 생명의 기원과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연구들도 하게 되었다.
현재 라스뮤센의 사무실은 최초의 인공 생명체 모임이 개최되었던 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다. 그 사건은 결정적인 전화점이었다. 18년 전 인공생명은 주변 과학이었다. 먼 거리를 와 이 최초의 회의에 참석해 생명의 기원을 비롯한 생명이 있는 로봇이나 컴퓨터 바이러스, 또는 생물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벌였던 사람들 중 일부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이 모임에 참석한 사실을 비밀로 했다. 이제는 이런 모든 것이 변해 라스뮤센과 다른 창립자들은 과학 분야의 최첨단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하루는 라스뮤센이 필자를데리고 캠퍼스를 가로질러 로버트 오펜하이머 연구소라는 작고 밋밋한 건물로 데려갔다. 안에 들어선 후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갔다. “다 왔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카페트가 깔려 있고 앞쪽에 강연대가 있는 평범한 무도장이었다. 하지만 라스뮤센과 몇몇 다른 신자들에게는 이 방이 마치 바티칸 같았을 것이다.
* 신형 생물학 무기용 엔진
인공생명 초창기 때부터 사람들은 보다 다양한 함축적 의미를 생각해 왔다. 1999년에 스탠포드 대학 윤리학자인 밀드레드 조는 인공 생명체를 만들려는 시도의 위험성을 가늠하기위한 패널을 관장했다. 이 패널에서는 인공생명 연구를 지지했지만 이런 생명체가 “생태학적 파멸을 야기시키거나” 끔찍한 신형 생물학 무기용 엔진이 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라스뮤센도 이에 동의한다. “분명히 합시다”라고 그가 말한다. “좋지 않은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나 환경을 오염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기술은 현재 제조되고 있는 유전자 변형 작물들보다 안전하게 될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의 원시세포들은 원래 의도와 다른 환경에 노출되면 죽게 될 것이다. 처음에 이들은 다행스럽게도 조심스럽게 HD제된 실험실 조건하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냥 비이커를 흔들어 버리세요. 그럼 모두 흩어져 버립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이런 노력들이 도가 지나치며 신을 조롱하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비난하는 데 대해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그에게 묻자 물리학을 공부하기 전 3년간 철학을 공부했던 라스뮤센은 재빨리 이런 생각을 무시해 버린다. “신앙심과 우리가 하는 일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그가 말한다. “우리는 양파를 한 겹씩 까내면서 세게가 어떻게 조립되었는지 알아내려 하고 있는 걸요. 우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인공세포를 만드는 데는 “하향식”과 “상향식”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게놈 연구의 대가인 크레이그 벤터는 가장 유명한 하향식 연구가이다. 메릴랜드 록빌 소재 생물에너지 대체물 연구소의 벤터 팀은 인간의 생식관에 서식하는 517개의 무해한 유전자로 구성된 지구상의 가장 단순한 박테리아로부터 시작해 이 유기체의 자연 유전자 코드를 변형된 인조 유전자로 대체하려 시도하고 있다.
* 박테리아생존 필수 유전자
물론 그러려면 이 박테리아를 계속 살아있게 하는데 필수적인 유전자가 어떤 것들인지 알아야 한다.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한 번에 하나씩 제거함으로써 이 팀은 이미 215개나 되는 유전자들이 생명 유지와 별 상관이 없음을 밝혀냈다. 이 팀이 몰두해 있는 다음 단계는 인공적인 클리프 노트 버전의 원 유전자 코드를 생성해 DNA를 제거한 유기체에 심은 다음 이 새 생명체가 계속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대형 과제에 익숙해져 있는 벤터조차도 이런 인공 생명체가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시인했다. 현재까지 무에서 창조된 유전자 기록은 7,500개의 화학 염기로 2002년에 뉴욕 대학교의 과학자들이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만들기 위해 결합한 것이었다.
벤터의 박테리아는 이 보다 40배나 긴 DNA 사슬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그의 팀이 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해도 살아있는 생물의 DNA를 생물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인공 DNA로 모두 교체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벤터와 동료들은 계속 전진하고 있다. 2003년 이들은 파이 엑스라는 무해한 바이러스를 생성해 냈다고 발표했는데, 일부 과학자들은 이 업적을 홍보용 깜짝쇼에 불과하다고 조롱했다.
그후 몇 달 동안 벤터는 자기 팀의 진척 상황에 대해 입단속을 했지만 에너지부의 자금 지원 프로젝트 수주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한 가지 가능성은 그의 유기체에 유전적 지시를 주입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연료용 메탄으로 전환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벤터의 계획들도 야심만만하기는 하지만 라스뮤센과 다른 상향식 연구가들이 달성하려는 무에서 생명체를 만들어내려는 일에는 거의 비할 바가 못 된다.
그의 세련된 집 거실에 앉은 채 라스뮤센과 필자는 그의 원시세포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말, 닭, 모스키토 피쉬, 개, 고양이, 아이 두 명 등 다양한 생물들이 바닥 위로 돌아다닌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라스뮤센의 열세살 난 아들 레이프가 나타나 근처 새장에서 앵무새를 꺼내 아빠의 어깨 위에 놓지만 라스뮤센은 생명체 생성 생각에 깊이 빠져 자기 귀에 지저귀는 생명체에게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인공 생명체에 필요한 최소한의 부분들 목록을 작성한 다음 이르 세 가지로 압축했다. 에너지 발생을 위한 신진대사, 작동 지시를 담아 둘 DNA 같은 분자, 소시지 외피처럼 모든 부위를 감싸 둘 막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더 단순화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원시적인 단세포 유기체들도 정교한 공학적 결과물로 이들의 막은 영양분을 내부로 나르고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런 자연적인 구조는 복제가 굉장히 어렵다.
* 인간이 만든 가장 원시적인 막
아르곤 국립 연구소에 근무하는 화학자 첸과 함께 라스뮤센은 구조를 점차 간소화 해 연구를 진행하며 아이디어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안팎을 뒤집은 셈이다. 우선 라스뮤센과 첸은 일부 분자 기계장치를 인공 세포 외곽에 놓아 특이한 통로로 가득찬 막을 만들 필요를 없앴다. 대신 원시세포는 씹던 껌 뭉치 같은 지방산 분자들 덩어리로 결합했다. 화학계에서 미셀이라고 알려진 이 분자 방울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막이다.
이 계획의 매력은 미셀이 스스로 결합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원리를 묻자 라스뮤센이 벌떡 일어선다. “제가 뭘 좀 보여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그가 맨발로 부엌에 들어가더니 요란스럽게 여기저기 뒤지다가 찰랑거리는 물 한 잔과 스테인레스 접시닦기용 비누용기를 든 채 파란 눈을 반짝이며 되돌아온다.
그가 뭔가 즉석 실험을 하려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필자는 몸을 피해야 할지 잠시 궁금해졌다. 라스뮤센은 화학실험실 보다는 컴퓨터로 작업하는 게 더 익숙하다고 털어놓는다. 몇 년 전 원시세포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네덜란드 화학자 피터 닐슨이 라스뮤센을 자기 실험실로 불러 손수 실험을 해보도록 한 적이 있었다.
라스뮤센은 직접 실험을 했다. 두 사람 다 정확한 내용을 밝히려고 하지 않지만 실수로 어떤 방사능 물질을 쏟아 실험이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라스뮤센이 처음에 닐슨에게 원시세포 실험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닐슨은 동의하면서 라스뮤센에게 아무것도 만지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농담을 했다.
다시 라스뮤센의 거실로 돌아와, 필자는 그가 비누 몇 방울을 물잔에 펌프질 해 넣고는 잔 테두리를 손으로 감싼 채 칵테일을 섞듯 흔드는 모습을 바라다 보았다. 액체가 손가락 사이로 뿜어져 나와 그의 셔츠에 튀었다. 라스뮤센은 투덜거리며 필자에게 잔을 내밀고는 살펴보라고 했다. 뿌연 물 속에 미세한 거품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러자 그가 자기 실험이 흡족하지 않았는지 다소 김빠진 표정으로 화학자들은 비누를 계면활성제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종이에 정자처럼 생긴 뭔가를 그린다. 비누 분자의 꼭대기는 물에 들러붙고, 꼬리 부분은 물로부터 밀쳐진다고 그가 설명한다. 이처럼 친수성과 소수성이 병존하는 구조의 물질이 물에 녹으면 분자들이 자동으로 공처럼 뭉쳐져 미셀이 된다.
라스뮤센과 그의 팀은 물론 비누 대신 다른 계면활성제를 사용하겠지만 원시세포의 다른 많은 세부사항들처럼 집중적인 실험을 해 본 후에야 어떤 것을 사용할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원시세포의 기본 배합은 지방산 게면활성제를 물이 든 비이커에 붓는 것으로 시작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라스뮤센의 말대로 무수히 많은 방울 모양의 미셀들이 안에서 소용돌이 치게 된다.
그 다음엔 유전물질을 넣는다. 대부분의유기체들은 DNA나 RNA로 작동한다. 하지만 라스뮤센과 그의 팀은 PNA 혹은 펩타이드 뉴클레익 에씨드라는 인조 핵산으로 실험해 볼 계획이다.
* 자기복제된 RNA 이용한 유기체
1990년대 초 닐슨과 동료들이 합성한 PNA는 DNA와 유사해 이중 염기 구조를 갖추고, 똑같은 네 개의 화학 염기가 있어 비슷한 작용을 하지만 당-인산염 분자들로 된 구조가 아니라 단백질 구성 성분인 펩타이드들로 되어 있다.
라스뮤센의 PNA 염기 원시세포는 오랜 수수께끼인 최초의 유전자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주요 이론에 의하면 최초의 유기체가 자기복제된 RNA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2000년에 생명 기원 연구의 대부인 토마스 밀러가 PNA 성분들이 최기 지구상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최초의 생명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특이한 PNA 염기 생물이었을까? 라스뮤센의 원시세포가 이를 실험해 볼 것이다.
PNA의 주요 장점은 전기전도성이 있기 때문에 유전물질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원시세포의 신진대사를 촉발시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초기 단계에서 감광성 분자(알콜 피나콜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와 짧은 PNA 염기가 섞여진다[위 그림]. 빛이 피나콜에 부딪치면 복합물에서 전자가 떨어져 나가 PNA 염기를 따라 내려간다. 전자가 염기 반대편 끝에 도달하면 마지막으로 이 혼합물에 넣으려고 하는 먹이와 화학 반응을 일으키리라고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 먹이는 원시세포의 PNA-피나콜 신진대사를 통해 새로운 지방산과 PNA 분자로 전환되는 전구체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전구체들을 첨가하지 않으면 원시세포들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멈춰 있는다고 라스뮤센이 설명한다. 새로 생성된 지방산은 기존의 미셀에 합쳐지면서 점차 커지다가 불안정해지면서 둘로 갈라져 원시세포가 증식한다.
다 자란 원시세포는 지름이 5~10나노미터이다. 이에 비해 벤터와 그의 팀이 연구중인 M 제니탈리움은 지름이 200~250나노미터이다. “더 간단한 생명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라스뮤센이 말한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원시세포 그 자체는 단순할지 몰라도 이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 화학작용은 매우 복잡하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미셀들이 전구체 분자들을 빨아들여 빛에 의한 신진대사가 작용할 먹이를 충분히 제공해 주어야 한다. 반면 단일 사슬 PNA 분자들은 미셀의 외부에 들러 붙어 이 유기체 자체의 신진대사에 의해 발생한 여분의 PNA 사슬과 쌍을 이룬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라스뮤센은 이런 모든 분자들이 용액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미리 이렇게 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이미 생명을 창조했을 겁니다”라고 라스뮤센의 팀에 소속된 로스 알라모스화학자 윌리엄 우디 우드러프가 말한다. 라스뮤센의 청사진을 본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 획기적인 유기체가 제대로 작동할지 회의적이다. 라스뮤센이 천체생물학 컨퍼런스나 유사한 다른 모임에서 자신의 원시세포에 관해 발표하더라도 항상 환대를 받지만은 않는다. “추상적”이라거나 “황당하다”는 말이 가장 많이 터져 나온다.
“너무 억지스럽습니다”라고 로마 대학의 화학자인 피에르 뤼기 루이지는 말한다. 그는 라스뮤센의 접근법을 인정하기 전에 실험 자료를 보고 싶어한다. “칠판의 계산만으로는 누구도 설득하기 힘듭니다.”
* 인공 생명체 제조여부 시기상조
다른 과학자들은 상향식과 하향식, 또는 그 사이의 어떤 방식이 결국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라스뮤센의 연구를 무시하기엔 시기상조라고 강조한다. 캘리포니아 소재 NASA 아메스 연구소의 생물물리학자인 앤드류 포호릴은 라스뮤센이 다른 사람들만큼 생명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며 오히려 그 분야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단연 앞서 있습니다.”
라스뮤센은 그에 대한 비판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 얘기는 다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꽤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그가 3년간의 로스 알라모스 연구 자금을 타내는 데는 원시세포의 작동법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일조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와 첸이 실험실에서 둘이 만든 감광성 신진대사로 껌같은 막 분자가 생성됨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향후 10년 이후를 내다보며 라스뮤센은 원시세포의 상용화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한다. 한 가지 안은 이들을 약물 운반 전달체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들이 신체에서 특별한 형태의 조직과 마주치면 약물을 쏟아붓도록 설계가 가능하다고 그가 말한다. 그는 높은 유독성을 견뎌내는 원시세포 제작도 구상중이다. “터미네이터” 세포를 이용해 과염소산이나 플루토늄처럼 기존의 장치들로는 효과가 별로 없었던 악성 오염원들을 빨아들일 수 있다. 라스뮤센을 그대로 놔두면 항공기용 자가 치유 코팅제 같은 전혀 엉뚱한 제품까지 얘기할 것이다. 왜 안 되겠는가? 모든 유기체는 자가치유 메카니즘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그는 원시세포도 결국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어 온갖 종류의 특이한 응용들이 가능해질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보다 실용적으로 접근하려면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하고 있듯 기존 유기체들의 DNA를 조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대안을 통해 과학자들은 신선한 연구 도구를 얻게 될 거라고 그가 말한다.
하루는 라스뮤센이 바빠서 로스 알라모스 홍보실의 누군가에게 최초의 인공 생명체가 탄생할만한 연구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비밀 도로로 운전을 하던 안내원 낸시와 필자는 플루토늄이 포도 송이만한 덩어리의 열핵폭탄으로 제조되는 장소인 TA-55를 지나쳤다. 낸시는 그곳이 로스 알라모스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백미러를 보던 낸시는 정부 번호판을 단 흰색 SUV가 우리를 바짝 뒤따라 오는 걸 보았다. 원시세포 연구가 진행중인 연구실 옆 주차로에 우리가 차를 세운 후에야 위험 인물들이 아니라고 확신한 듯 SUV 운전수는 차를 몰고 사라졌다.
* 살상무기 제조에서 생명체 탄생
따라다니는 사람이 없을 때 로스 알라모스를 서성거리고 다니다 보니 거리에 비키니 어톨 로드나 트리니티 드라이브 같은 이름의 간판들이 걸려 있었는데, 한때 끔찍한 살상 무기를 만들어내던 곳에서 언젠가 새로운 종류의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니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 라스뮤센은 자기 팀의 반짝이는 유리 비이커 안에서 뭔가가 일어나게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잠깐만이라도 살아주면 정말 좋을 텐데요”라며 그가 나중에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며 말한다.
** 마이클 스트로는 발티모어 선지의 과학 분야 기자이다. 그는 최근 생명체 생성 실험을 직접 해 보았다. 그의 첫 아이 요쉬가 자년 6월 태어났다.
인공생명, B급 영화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는 늘 SF의 단골 소재였다. 어떤 면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일까?
1818년에 프랑켄슈타인이 출판된 이후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은 인간이 만든(혹은 망쳐놓은) 생명체의 함축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 결과는 블레이드 러너 스타일의 대혼란으로부터 조화롭게 모여 사는 회색 세포형 생물체들이 거주하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공통된 주제가 있다.
즉,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면 늘 무언가가 잘못된다는 점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에서 한 기업가는 놀이공원을 꿈꾸지만 그 대신 피에 굶주린 새로운 종의 육식동물이 탄생하게 된다. 스탠리 큐브릭의 반이상향 2001 :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는 우주에서 인간이 살 수 있게 하도록 설계된 컴퓨터가 오히려 인간을 제거한다.
모든 불안정한 생명체 이면에는 실험복을 입고 야수성에 집착하는 인간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미쳐 날뛰는 생명체 시나리오의 근간이 된다. 그레그 베어의 2001년 단편 “피의 음악”에서 대형 생명공학 회사에 근무하는 주인공이 상관이 모르게 “지적 세포” 설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사람들이 이를 알아채고 실험실을 폐쇄하자 그는 자신의 피조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무릎쓰고 TPH를 자기 팔에 주입한다. 그리고는 난장판이 펼쳐진다. 생명에의 간섭이 이처럼 오싹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왜 모두들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근원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켄트주 영어 교수이자 공상과학 발행물 엑스트라폴래이션의 편집자인 돈 해슬러는 말한다.
아이들이 일부러 잘 보이려고 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을 소중히 보살피는 이유는 부모들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모들에게는 기형아일지라도 미래의 물결이기도 한 것이 바로 이런 위대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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