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유한 차 중에서 ‘현대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것은 85년형 사브 900이었다. 여기에는 아마도 연료를 절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란색 기어 변환 기호가 있었던 걸로 봐서 ‘현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엔진 회전수가 2천500을 넘어가면 어김없이 이 기호가 밝게 빛나는 걸 볼 수 있었으니까. 이 기호가 나타날 때마다 나는 순순히 그 기호에 순종해서 마치 부두에 들어가는 화물선처럼 천천히 운전을 하고는 했다.
이 기호가 표시되지 않도록 하면 동시에 끔찍한 좌석 벨트 부저도 잠재울 수 있었다. 어쨌든 그것도 좋았다. 왜냐면 나는 이미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오래된 바지용 벨트 제작 회사 중 하나였던 히콕 메뉴팩처링 사에서 제작한 벨트를 1936년형 포드 페이튼에 설치한 이후로 좌석 벨트를 빠지지 않고 착용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알림 기능도 필요없다. 이 벨트는 커넬 에어로노틱 연구소에서 개발되었으며 사실 우리 아버지께서도 이 프로젝트에 간접적으로 참가 했었다.
아래쪽에 커다란 L 자형 알루미늄 막대를 통해 좌석 뒤로 돌려서 내가 바닥에 뚫은 구멍을 통해 프레임과 연결시킨, 비행기에서나 쓰일 것 같은 네 갈래의 그 벨트를 아버지께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 내가 소유한 차들에서는 기어 변환 등이 켜지고 좌석 벨트 버저가 울리면 그 후에는 기어 변속 장치를 주행 위치로 변환시키는 즉시 마치 미리 프로그램된 대형 은행 금고처럼 차에 갇혀 버리고는 했다.
이런 현상은 그 후에 K카(K-Cars)와 시매런스(Cimarrons)가 등장했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시험 주행을 위해 집 앞에 코르벳이 주차되어 있는데 지난 번에 내가 차에서 나오려고 할 때도 바로 나오지를 못했었다. 또 문이 잠긴 것이었다. 물론 매뉴얼을 읽고 한참 헤메다가 “운전자 1/운전자 2에 적용되는 프로그램 옵션’으로 들어가서 내가 시동을 끌 때마다 차가 날 순순히 내려 주도록 할 수도 있었겠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기본 설정으로 운전자를 차 안에 갇히도록 한 건 도대체 누구 생각이란 말인가?
내가 그렇다고 기계 혐오자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자동 잠금 장치는 안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 되었겠지만 충돌 사고 시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누가 차 안에 갇힌 처지가 되고 싶을까.
인내를 강요하는 전기식 차 창문
내가 자원 응급 구조 대원으로 활동할 때 자동차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 중 일부는 호스를 들고 있고 다른 소방관들은 가솔린이 새어 나오고 있는 충돌한 차에 겁에 질린 채 갇혀 있는 운전자를 구출하기 위해서 유압 도구들에 매달려 있는 모습들을 너무나도 자주 목격해 왔다. 나 역시 종종 폭탄이라도 가지고 있다가 이런 차문들을 날려 버리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았다.
나는 최근에 뷰익을 렌트해서 사용하고 있다. 좌석 벨트를 매기 전에 기어를 넣거나 헤드라이트를 끄기도 전에 시동을 꺼버리면 히스테릭한 경고음이 어김없이 들린다. 그리고 내가 차에서 내리기라도 하면 패밀리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강간범이라도 잡으려는 듯이 안팎에 있는 모든 등들이 켜져 버린다. 그리고 언제 꺼지려나 하고 기다렸던 나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으면서 절대로 스스로 꺼지는 법이 없다.
이렇게 되면 나는 이것들이 다 꺼지기를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배터리가 방전되든 말든 내 볼일을 봐야 할까. 결국 어쩌다가 내 손등으로 헤드라이트 작동 손잡이를 건드렸는데 다행히도 이 개념없는 라이트 쇼가 끝나버렸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더 생각났다. 무려 4초~5초 동안 스위치를 눌러 줘야 하는 인내의 시간을 운전자들에게 강요하는 원 터치 전기식 유리 창문이 나날이 그 세력을 넓혀 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이 장치를 이용해서 중간 정도만 적절하게 창문을 열려고 해도 위 아래로 몇 번 씩 창문이 춤을 추게 한 후에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가 최근에 운전해 본 신형 아우디 RS 6에는 ‘당연하게도’ 이 럭셔리한 옵션이 네 개의 창문에 모두 적용되었는데 열려 있는 선루프를 조작하고 뒤쪽 창문을 여닫는 것이 동시에 3대의 휴대 전화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작업으로 느껴졌다.
아우디의 다른 기능들을 이용해 보니까 이 차들은 새벽 3시에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서 횡단 보도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절대로 길을 건너지 않는 문화를 가진 선량한 사람들을 위해 설계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연비, 평균 속도, 주행 거리, 기타 등등, 트립 컴퓨터(주행거리 미터기)의 표시 내용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건 간에 이 디스플레이는 2시간 동안 운전을 했다면 2:00 ... 2:00 ... 2:00 ... 만을 표시한다. 마치 훌륭한 ‘독일인’이라면 2시간 운전 후에 반드시 낮잠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꼭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 아우디에서는 휴식 없이 운전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을 2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내가 직접 와이퍼를 작동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금이 비가 내리고 있는지 판단하고 어떤 와이퍼 속도가 최적의 속도인지 스스로 결정하기가 벅찬 운전자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고급 차종에 비를 스스로 인식해서 작동하는 와이퍼가 채택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인 것 같다.
벤츠의 너무잦은 와이퍼 작동
얼마 전에 8만달러짜리 메르세데스 S 클래스를 3시간 동안 운전해 본 일이 있는데 벤츠는 너무나도 자주 와이퍼를 작동시켜서 내가 생각하는 ‘비가 오고 있음’과 벤츠가 생각하는 ‘비가 오고 있음’ 사이에 너무나도 큰, 극복할 수 없는 시각 차이가 있음을 사무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서 결국 벤츠에게는 미안했지만 수동으로 전환해서 한 번에 한 번 씩만 와이퍼가 작동하도록 해서 미친 듯이 움직이는 와이퍼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메르세데스 SL500이 되고 싶어하는 새로운 캐딜락 XLR 로드스터를 운전했을 때의 사건을 들 수 있겠다. 이 캐딜락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에서부터 전기식 출입문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전기를 이용하는 장난감들로 가득했다. 외부 또는 내부에 있는 고무같은 표면에 손만 갖다 대면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운전을 할 때에는 커다란 보트를 뒤에 매달고 약간 경사진 길로 운전했는데 문을 열어서 뒤쪽 바퀴의 위치를 확인해 보려고 하는 순간,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이 차는 자동으로 잠금 장치가 적용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닥에 있는 긴급 수동 전환 장치를 찾을 때까지는 문을 열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안전을 위해서 문을 열고 뒤쪽을 확인하려고 하는데에도 왜 긴급 장치를 써야 하는 걸까?
XLR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능으로는 메르세데스에서처럼 자동차 열쇠를 없애버린 특징을 들 수 있다. 이 기능은 전자 장치를 이용해서 운전자가 자동차에 접근하거나 자동차를 떠날 때 문 잠금 장치와 다른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만일 이 전자 장치가 자동차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대시 보드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켜려고 하면 계기 패널 메시지가 나타나기는 한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엔진 시동은 걸리지가 않는다.
유모차에 대한 향수
아, 알았다. 적어도 멍청하게 액셀레이터를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밟고 그리고 그 후에 버튼을 눌러야 되는 것이었다. 20년 전에도 잘나가던 아우디 모델에서 시동을 걸거나 컨버터블 지붕을 움직이거나 심지어 주유 뚜껑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클러치를 밟고 주차 브레이크를 적용하고 그 후에 차라리 두 발을 다 창밖으로 내놓아야 할 정도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통량이 증가하고 자동차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유모차에 대한 향수는 더욱 더 그리워질 것 같다. 자동차 회사들이 차를 달리는 사무실이나 레스토랑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에 따라 자동차가 통신 및 DVD 엔터테인먼트 센터로 변신을 거듭해 감에 따라 운전자의 권한은 수직 하강하고 있다 (누가 운전 면허 취득 기준 강화를 - 그것도 특히 최근에 돌아다니는 고성능 차에 대해 - 주장하는 것을 최근에 들어 본적이 있는가?).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완전 자동화된 차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현재 캐딜락 XLR의 패널에는 ‘권장 헤드라이트’라는 메시지가 나타나서 ‘내가 낮과 밤도 구분 못하는 바보인가’라고 스스로 물어 보게 만든다. 조금 더 지나면 아마 ‘권장 방향’이 나타나고 ‘웬만하면 와이퍼 좀 작동시켜 보지?’, ‘좀 빨리 달리는 거 아닌가?’ 등등으로 여러 사람들을 괴롭힐 거 같다. 심지어는 ‘여기에 주차할 생각도 하지마’ 라고 말하는 메시지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수준을 넘어서면 이제 ‘권장’이 아니라 운전자를 무시해 버리고 모든 일들을 차들이 하겠지.
옛날 그 사브 모델이 그리워진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