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무적인 상황에서 DNA에 의한 인종 분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범인들이 범죄 현장에 피나 정액, 머리카락, 희생자 손톱 밑에 낀 살점 같은 흔적을 남길 때 범인이 그 장소에 있었음을 확실하게 입증할 만한 독특한 유전자 지문들을 남긴다는 점을 이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DNA 추적을 통해 밝혀지는 조상이나 외모에 관한 단서가 유전학이 발전함에 따라 자칫하면 경찰의 몽타쥬 작성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더러 논란의 소지도 크다.
인종간 차이는 복잡한 인간 유전자 코드내의 아주 작은 몇 부분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인종학적 기원과 관련있는 유전지표들은 외관상의 특징을 결정짓기 때문에 범인을 추적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어떤 용의자가 흰 피부의 켈트족인지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계인인지는 그 사람의 DNA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는 거리 순찰 경관들에게 신뢰성이 떨어지는 목격자 진술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방법의 신뢰성이 입증되지 못하면 이 역시 위험하다.
DNA지표 사용은 경찰 조사시 유전자 정보가 지문보다도 더 신뢰할 만하다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인종 지표와 외모를 직접 관련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범인 추적에 사용되지 않았던 유전지표가 올해 초 한 유전자 연구소에서 미확인 연쇄살인범이 경찰에서 주목하던 백인이 아니라 검은색 피부의 흑인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이 연구소의 결론이 옳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비록 직접적인 범인 체포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DNA 이용 몽타쥬 작성법이 지지를 받게 되었다.
DNA 증거 대조용 유전 지표
1997년 국립 DNA 자문위원회에서 DNA 증거 대조용 유전지표를 공식적으로 선택했을 때 인종과 민족 지표인 조상의 지리적 기원(유럽, 동아시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과 연관있는 몇 가지 지표들도 포함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신시내티 대학 유전자 정보 연구소장인 라나짓 차크라보티가 말한다. 차크라보티는 위원회가 이런 인종 지표 문제를 피해간 것이 부분적으로는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정치적 문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 현재 표준화된 미국 DNA 지문은 기존의 13종에 최근 추가된 2종을 합친 15종의 유전지표와 함께 2개의 DNA 표본을 대조하는 데 적절한 바코드형 식별자 기능만 할 뿐 범죄 현장 DNA를 추출한 사람에 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DNA가 인종 식별 용도로 사용된 적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9·11 테러 이후 차크라보티는 최초 계획이 무산된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펜실베니아에 추락한 유나니티드 플라잇 93기에 탑승하고 있던 아들의 신원확인을 의뢰한 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 유골이 뒤섞인 표본을 확보했는데 그 중 하나가 그 사람들 아들거였죠”라고 그가 설명한다. “이 가족들은 아들 유골에 테러범의 유골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채로는 매장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차크라보티는 95%의 정확도를 가지고 미확인 피부조직이 중동계 사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었다.
연쇄살인범의 DNA일치
“독일인과 프랑스인을 구분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주요 대륙의 인종간 구분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차크라보티는 말한다. 각 그룹들 내에서는 특정 유형의 머릿결, 눈과 피부색 및 기타 얼굴 특징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정보들은 수사에 유용할 수 있다고 차크라보티는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어떤 사람이 갈색 눈일 확률이 100%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유전학자들은 대체로 민족별 유전 지표 원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DNA프린트 제노믹스사가 지난 3월 한 루지애나 연쇄살인범의 “생물지리학적 조상”이 사하라 남방 아프리카계 85%와 본토 미국계 15%가 섞였다고 결론지었을 때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 당시 경찰은 범행 현장들 중 한 곳에 숨어있는 게 목격된 한 백인 남자를 범인으로 잘못 지목하고 있었다.
DNA프린트사의 연구소장인 토니 프루다키스는 자신이 전화로 경찰 수사관들에게 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알려줬더니 “경찰에서는 말을 잊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경찰은 미심쩍어하면서 DNA프린트사에 범인과 다른 20명의 DNA 샘플을 보내 이 회사 연구소가 믿을만한지 분석 결과를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모두 제대로 맞췄죠”라고 프루다키스가 말한다.
충분한 확신을 갖게 된 수사관들은 수사를 확대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는데 전혀 무관한 사건을 통해 실마리가 잡혔다. 2건의 별도 살인사건과 관련해 질의차 불려온 데릭 토드 리는 자발적으로 DNA 샘플을 제공했는데 이것이 연쇄살인범의 DNA와 일치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5월 27일 체포되어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유전자 기반 몽타쥬 작성 시도
기본적인 계보상의 특징은 DNA기반 경찰 몽타쥬 작성의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솔직히 우리들 대부분은 혼혈입니다”라고 프루다키스는 말한다. “우리는 신체적으로 전혀 다른 그룹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연결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DNA프린트사는 보다 특정한 신체적 특성을 찾아내는 염색체 실험을 개발중인데 눈 색깔과 관련한 레티놈이라는 실험 기법을 올해 말까지 상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는 머리색 실험이 선보일 겁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아직까지는 빨간 머리에 관한 것 외에 머리색 관련 유전지표가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레티놈은 대담한 실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DNA프린트사가 최초로 유전자 기반 경찰 몽타쥬 작성 시도를 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영국의 포렌식 사이언스 서비스사는 DNA포토핏이라는 걸 개발했다.
흰 피부와 붉은 머리가 특징인 “켈트족 모습” 관련 유전지표 식별에 고무된 이 회사는 런던 대학의 한 야심찬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과학자들은 수백 명의 자원자 얼굴을 스캔해 디지털화된 안면구조와 유전지표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려 했다. 이 실험은 직관적인 방식으로 경찰 몽타쥬 작성가들이 사용하는 인체측정학 방식에 견줄만한 것이었다. 몽타쥬 작성가들은 코의 높이와 폭, 눈 모양과 얼굴에서 가장 넓은 부위의 폭처럼 목격자가 가장 잘 기억해내는 특정한 구조적 특성을 반영해 그림을 그려낸다.
신경망·패턴탐지기법으로 결정
포렌식 사이언스 서비스사는 런던대학팀이 2년 내에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이 대학 의료 이미지 전문가이자 팀원인 알프 리니는 말한다. 하지만 런던대학 과학자들이 유전자와 얼굴 모양간의 관계가 너무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2000년에 중단되었다.
“유전자만으로는 용의자의 얼굴 모습을 충분히 알아낼 수 없습니다”라고 독일 최고의 법과학 생물학자인 마크 베넥은 말한다. “유전자들은 보편적인 모습을 결정하지만 어린 시절 발달과 질병, 영양결핍 등으로 인해 얼굴 모습이 각자 변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누구나 배운 것처럼 유전형질과 환경이 결합해 겉으로 발현되는 표현형질이 된다.
프루다키스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고속” 유전 정보 분석 기법이 등장해 DNA를 토대로 한 개인의 외모를 가장 잘 추측해 낼 수 있는 유전적 단서들의 폭을 넓히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신경망과 정교한 패턴 탐지 기법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수천 명의 염색체들에 대한 유전자 배열을 결정합니다”라고 프루다키스가 말한다. “그래서 머리색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을 때 반드시 그리드 조사법을 사용합니다. 그리드를 설정해 놓고 한 그리드 내에 찾는 게 없으면 다음 그리드를 조사하는 식의 보물찾기죠.” 이 방식은 불과 몇 년 전 무작정 찾아보는 식의 유전자 조사법과 대조적이라고 그가 말한다.
비판론자들은 DNA 묘사 방식이 범죄 행위를 비롯, 입증되지 않은 유전지표를 근거로 한 편파적인 비과학적 인종 기록 작성으로 확산될까 우려한다. “컴퓨터로 DNA 데이터를 조사해 성범죄 관련 유전지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겁니다”라고 우생학의 비밀 저자이자 국립 인간 게놈 연구소 컨설턴트인 트로이 더스터가 경고한다.
편파적 인종기록작성 우려
미국 교도소에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대다수임을 감안할 때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들의 DNA 분석 수치가 어떻게 나올지 생각해 보자. “아마 북미 프로미식축구 리그(NFL)에 가서 아프리카계 조상과 연관있는 겸상적혈구 빈혈증 DNA지표가 있으면 훌륭한 풋볼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결론짓는 식일 겁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넥같은 법과학 생물학자들은 DNA를 토대로 한 묘사의 정확도가 15년 내로 목격자 진술을 능가하게 돼 법적 제약을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독일에서는 부모의 동의가 있는 의학적 용도 외에는 DNA를 통해 얻은 정보 공개가 불법이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Y 염색체가 있는지 여부도 밝히지 못하게 되어 있죠”라고 베넥이 말한다. “하지만 겉에서 그냥 보이는 걸 본다고 해서 그게 어떻게 사생활 침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생활 보호법에 전혀 개의치 않고 미국내 법과학 연구소들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유전적 증인”들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것들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시간과 자금만 주어지면 이들은 염색체 분류를 계속할 것이다. 프루다키스는 다음과 같은 대담한 예측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에는 상당수 유전지표의 분석이 완료되어 범인은 범죄 현장에 차라리 자기 신분증을 놔두고 가는 게 낳을 겁니다.”
2002년 12월 연쇄살인범 수사관들은 처음에 백인을 지목했다. 그러나 2003년 5월 구속된 범인은 흑인으로 DNA 증거 분석 결과가 확인됐다.
DNA는 대개 범죄현장에 남겨진 생물학적 증거물과 용의자들을 대조해보는 데 사용되지만 용의자가 없을 경우 DNA는 별 소용이 없다. 하지만 DNA내 유전지표를 통해 경찰은 알 수 없는 범인의 외모에 관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다.
최근 루지애나 연쇄살인 사건의 경우 범죄 현장들 중 한 곳에서 목격된 백인 남자가 초기 수사의 초점이 되었다. 하지만 DNA 분석 결과 용의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일 가능성이 제시됐다. 다른 증거를 통해 데릭 토드 리가 체포되었고, 이를 계기로 DNA 증거물이 용의자의 외모를 알아내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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