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21km에 달하는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로 이루어진 ‘헝그리 밸리 스테이트 비히큘러 레크리에이션’ 지역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오프 로드 레이싱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어느 봄날 아침, 뭉툭하게 생긴 자동차들과 증폭된 모기 소리를 떠올리는 2행정 엔진 특유의 굉음을 쏟아내는 날씬한 모터크로스 바이크들이 갑자기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펑크 난 두 개의 타이어 때문에 덜거덕 소리가 나는 거대한 바퀴의 낡은 픽업트럭이 임시로 만든 대피소 정비 구역으로 다가 와 앞에 섰다. 달까지의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할 만한 전자 장비들이 가득한 랠리 자동차들 주위로 정비인력들이 몰려다닌다. 이 자동차들은 빨간색과 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한 픽업트럭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말한다. “펑크가 났는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순간 당황했다. 타이거 우즈에게 5번 아이언을 빌려 달라는 바보를 제외하고, 전설적인 파일럿 척 이거에게 원격 조종 모형 비행기를 조종해 달라고 부탁하는, 어린 아이나 할 만한 부탁이었다. 매우 원시적인 환경이었지만 이들은 자동차 회사의 지원을 받는 전문 레이스 팀의 일원이었다. 미쯔비시에서는 대당 24만 달러의 경비를 들여 이 차들을 제작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2주 전부터 버몬트와 영국에서 비행기로 팜데일 근처의 월드 랠리로 와 테스트 세션에 참가하고 있었다. 미쯔비시의 차가 ‘모스라’라면 ‘고질라’라고 할 수 있는 스바루가 오늘 테스트를 하지 않은 것은 영국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이 여전히 전혀 새로운 차 두 대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차들은 모두 미쯔비시의 모델에 비해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했다.
랠리 경주 즉, 개조한 양산 차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레이싱은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모터스포츠다. 또한 이 경기는 미국 내에서 가장 참여도가 높은 경주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팬들은 자동차들이 질주할 때 스쳐 지날 수 있는 거리까지라도 가까이 갈 수 있고 아마추어들이라도 프로 자격으로 동일한 이벤트에서 경쟁할 수 있다(마치 자동차를 가지고 인디애나폴리스 500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랠리 경주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첨단 기술이라는 측면과 ‘헝그리 밸리’와 같은 야성적인 장소 사이의 대조가 아닐까. 따라서 열성적인 팬들에게 이 경주는 바로 ‘진짜 도로에서 진짜 자동차가 진짜로 빨리 달리는’ 것 이상 또는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사실 미쯔비시 판매점에서 25만 달러짜리 세단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 카 클럽 오브 아메리카(SCCA)’ 랠리에서 달리는 차들은 미쯔비시의 경제형 자동차인 랜서를 개조한 신형 ‘에볼루션’(에보)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스바루에서 SCCA의 랠리 프로그램 중 최상위에 위치하는 ‘프로랠리’ 시리즈에 출전시킨 차량은 ‘에보’와 경쟁하기 위해 최근 출시된 임페르자 WRX STi로 가히 ‘도로 위의 로켓’이라 할 만하다. 이 차는 튜브 프레임 섀시로 제작한 특수용 차량 또는 탄소 섬유와 각종 첨단 재료로 만든 차체로 제작한 환상적인 포뮬러1 머신에 더 가까운, 나스카 레이싱에서 흔히 ‘스톡 카’라고 하는 차들과 비교될 만 하다.
미국 내의 모든 랠리 자동차들은 얼마나 정교한가에 상관없이 모두 도로 상에서 주행하기 위한 법규를 준수한다. 규칙에 따르면 이 차들은 모두 랠리 경기가 없는 기간 동안이나 랠리 경주 장소까지 가는 도중에 일반 공공 도로에서 운전할 수 있어야 하며, 다시 이러한 법규를 준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경주가 개최되는 곳은 거의 ‘위험! 진입 금지’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는 장소로 보통 사람들이 운전하는 곳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개최된다. 랠리 참가자들은 때로 시속 190km를 넘는 속도로 까마득한 산봉우리, 험난한 유턴 도로, 절벽, 숲, 개울, 비포장 도로, 자갈 도로, 눈길, 결빙 도로 등 험난한 여러 악조건들을 헤쳐 나가야 한다. “저는 이 경주가 차세대 익스트림(extreme) 스포츠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미쯔비시 팀의 운전자인 로클린 오설리번은 이렇게 말했다. “아마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겁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고 있는 오설리번은 미쯔비시의 두 개의 자동차 팀 중 두 번째 차를 운전한다. 그는 올해로 2년차인 프로 운전자이며 테스트 작업에 따른 단조로움도 이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 프로랠리 챔피언십을 석권했으며 여전히 시차 때문에 고생하고 있던 그의 영국인 동료 데이비드 히긴스는 이 과정 으로 인해 조금 더 지쳐 보였다. 사실 미쯔비시의 수석 운전자인 히긴스와 오설리번은 헝그리 밸리의 도로가 2주 후에 실제로 경기가 열릴 ‘림 오브 더 월드’의 도로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곳으로 호출된 것이었다.
크리스틴 에드스톰은 오설리번과 함께 에보에 탑승해서 비행기 조종석에서나 쓰일 것 같은 인터콤으로 서로 통화하면서 위치를 안내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은 400 마력짜리 자동차 내에서 벨트로 스스로를 묶고 현기증이 나는 어려운 코너들을 공략하게 된다. 심지어 짧은 직선 연결 도로에서도 에보의 차체 뒤쪽 부분이 도로 상의 먼지 때문에 미끄러졌다. 오설리번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반대편 락을 넣거나 아니면 운전 교본에서 ‘미끄러지는 쪽으로 방향 전환’이라는 기술을 적용해 앞쪽 바퀴들이 차가 진행 하고 있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도록 할 것이다.
에보는 인터쿨링이 적용되는 터보차저를 통해 엄청난 마찰음을 내는 동시에 터보를 계속 작동시키는 컴퓨터에 의해 점화 행정이 자동으로 지연되면서 다시 백파이어링(backfiring)이 적용되기 때문에 마치 정상에서 울부짖는 한 마리의 늑대를 연상시켰다.
“랠리 경주는 서키트 레이싱보다 더 힘들죠”. 오설리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크리스 멜러스가 이렇게 말했다(사실 약간은 얕잡아 보는 것이 분명하지만, 랠리 관계자들은 레이스 트랙에서의 모든 레이싱을 서키트 레이싱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랠리 챔피언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멜러스는 미쯔비시 팀에서 핵심 구성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에보 모델들은 영국 베이크웰에 있는 ‘멜러스 엘리어트 모터스포츠 샵’에서 제작되었으며 멜러스와 버몬트 스포츠카에서 후원하는 영국계 미국 팀이 미국 내의 자동차 경주에 참여하고 있다. 멜러스는 “서키트 레이싱에서는 랩 마다 똑같은 랩들이 반복되죠”라며 “랠리 경주에서는 날씨가 계속 변하고 다음에는 어떤 것들이 닥치게 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이 스포츠는 이미 크게 성장했으며 미국에도 결국 그러한 날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공식 자동차 경주는 1894년 파리와 루앙을 잇는 도시 간 경주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경주용 트랙에서 경주를 위해 제작된 특수 목적 자동차들이 경주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터스포츠가 그 근원- 즉, 지점 간 경주-을 떠나 성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몬테카를로 랠리, 동 아프리카 사파리 랠리, 아크로폴리스 랠리 등을 통해 그 지점 간 경주의 전통을 유지해 왔다. 1973년에는 이 경기들이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 통합되기에 이르렀으며 현재 전 세계에서 포물러 1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에 따라 몇 몇 자동차 회사 -주목할 만한 회사로 미쯔비시와 스바루가 역시 포함-에서 주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며 톱 드라이버들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랠리 경주가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저희는 비공개 레이싱으로 시작했습니다”. 11번이나 미국 내 랠리 챔피언을 석권한 업적을 달성했으며 유럽 내 메이저 이벤트에서 유일하게 미국인으로서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미쯔비시 팀 컨설턴트인 존 버펌은 말했다. “오지에서 한 밤중에 경주를 했었죠. 우리는 아침에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구경꾼의 입장에서 랠리에 대해 불만을 가진 레이서들도 있었습니다”. 조직 위원회에서는 책임 문제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보통 한 밤중에 행사를 열었다. 화려한 관람석과 핫도그, 시원한 맥주에 익숙한 관람객들이 흙먼지로 덮인 길을 질주하는 우습게 생긴 외국 차들을 보기 위해 벽지까지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팬 기반이 ‘컬트’로 승화될 정도로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오히려 가족적인 분위기가 짙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랠리 경주의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달라졌다. 1997년에 ‘스피드 채널’에서 랠리 방송을 가장 극적인 장면(랠리 경주에서는 사망의 위험이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하이라이트 형식으로 편집했다)으로 편집, 중계하기 시작했다. 또한 랠리 경주는 컴퓨터 게임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진 동시에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경기를 모터스포츠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죠”. SCCA의 성능 부문 랠리 프로그램 담당자인 커트 스피츠너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스노우보드나 산악자전거 경기가 확장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스피츠너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SCCA의 랠리 회원수는 10배로 증가했고 아마추어 랠리 경주 횟수는 4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자갈길이나 비포장도로에서 열리는 초급 단계의 ‘랠리크로스’는 현재 125회 정도가 열릴 예정이다. 과거에는 연간 5회 정도만 개최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미국 내 프로 수준의 경기에는 스바루와 미쯔비시가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참가하고 있다. “이런 발전에 대해 저는 비디오 게임이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버몬트 스포츠카의 회장이자 미쯔비시 팀을 담당하고 있는 랜스 스미스의 말이다.
헝그리 밸리 테스트 세션이 열린 후 2주가 지나 LA 북부에서 96km 정도 떨어진 팜데일의 ‘림 오브 더 월드’ 랠리 경주에서 개방형 대기장소로 사용되는 주차장에는 계절에 걸맞지 않게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기는 5월 초였지만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그러나 프로랠리 레이스와 두 개의 아마추어 레이스가 포함된 이 행사에는 80여대의 자동차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차들이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속도별로 운전자들에게 등급을 부여했다. 띠라서 1분 간격으로 각 스테이지가 시작되어 별 다른 혼잡은 없었다. 그 결과 참가 자동차는 BMW 2002형 모델에서부터 거대한 셰비 블레이저나 전시장에서 막 나온 것 같은 아우디 TT까지 다양했다.
차량의 가격은 소유자의 목표와 능력에 따라서 다양하다고 한다. 스프링과 충격 흡수 장치는 특수한 사양으로 교체하는 것이 필수다. 또한 바퀴와 타이어, 브레이크도 반드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최저 1만 달러 정도는 투자해야 하며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약 5만 달러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롤 케이지’로 대표되는 안전장치만 갖추면 된다. 오리곤 주의 알로하 출신의 찰스 버렌은 17년 동안 누적 주행 거리가 26만 9천 km나 되는 도요타 MR2를 1천 달러에 구입해 참가하기도 했다. “저희는 차에 투자한 돈보다도 여기 참가하기 위해 쓴 돈이 더 많습니다”. 그는 자동차의 너트를 조이면서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동차들은 엔진배기량, 동력 장치(2륜 구동 대 4륜 구동), 개조 정도에 따라 분류된다. 보통 자동차 제조업체나 돈 많은 민간인이 스폰서를 맡아 참가하는 차들은 ‘오픈 클래스’로 분류되어 경기를 진행한다. 이러한 차들 중에 스바루와 미쯔비시 제작 팀들이 가장 멋진 차들과 많은 인원들, 그리고 가장 뛰어난 드라이버를 보유하고 있다. 스바루의 최고 드라이버인 마크 러벨은 2001년 프로랠리 챔피언십을 석권했다. 그리고 미쯔비시에서 그의 경쟁자로 참가하고 있는 히긴스는 작년에 이 타이틀을 차지했다. 양쪽 팀 모두 영국 최고의 드라이버를 필두로 해서 한창 성장 중인 미국인 드라이버 즉, 각각 두 번째 에보에 탑승하는 오설리번과 두 번째 WRX에 탑승하는 라마나 래그먼이 각각의 팀을 이루고 있다.
언뜻 보기에 이 차들은 화려한 날개와 높은 탄소 섬유 비율 등으로 영화 <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차들을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형과는 다른 그 무엇이 분명히 있다. 즉, 랠리 자동차들은 스타일이나 직선 속도에 최적화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민첩하게 무장한 차들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보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운전석에 걸쳐 강철 튜브로 된 구조물이 진짜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롤 케이지는 운전자와 보조 운전자를 마치 번데기 고치처럼 감싸 랠리에서 피할 수 없는 충돌 사고에 대비하게 된다. 롤 케이지는 비틀림 강성을 엄청나게 증가시킨다. 따라서 양산 일체형 보다는 유연성이 좀 떨어지는 서스펜션 부품들을 바로 튜브 구조에 연결함으로써 동시에 매우 높은 정밀도로 핸들링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에보와 WRX 차량들은 모두 터보 차지가 적용된 2.0 리터짜리 4밸브 엔진을 가지고 있다. 랠리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가 거의 필요 없기 때문에 이 엔진들은 순간 최고 마력보다는 중간 범위에서 엄청난 파워(약 70kg·m의 토크)를 구현하도록 튜닝 되었다. 따라서 무서운 가속이 가능하다. 그러나 랠리 자동차들은 미끄러운 표면 위를 장악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엔진과 기어박스에서 바퀴까지의 동력 연결에 차동 장치라고 알려진 엄청나게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랠리 경기는 표면 접지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바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영국 회사인 프로드라이브 사의 팀 매니저인 데이빗 캠피언은 말한다.
자동차가 회전할 때 바깥쪽 바퀴는 안쪽 바퀴보다 빠르게 회전한다. 차동 장치는 바퀴들이 다른 속도로 회전하도록 해서 이러한 불균형을 조정해 준다. 4륜 구동 랠리 차량들은 보통 4개 이상의 차동 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각 바퀴에 하나씩 적용되며, 추가로 바퀴들 사이의 동력을 배분하는 중앙 차동 장치가 적용되기도 한다. 프로랠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이색적인 자동차는 중앙 차동 장치가 수동형이 아닌 자동형으로 컴퓨터가 바퀴 속도, 스로틀 위치, 핸드 브레이크와 풋 브레이크의 위치, 엔진, 기어 박스 입력 등에서 얻은 수치를 기초로 토크 배분을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차들이 있다.
WRC 자동차들은 보다 더 첨단을 달리고 있다. 대부분 능동형 자동 장치가 하나가 아닌 3개 씩 장착되어 있고 신속한 기어 변환이 가능한 연속 기어박스가 적용된다. 이러한 기어박스는 미국 내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WRC 팀들은 챔피언십에 도전할 만한 성능을 가지는 프로랠리 자동차 제작을 위해 필요한 비용 이상을 엔진과 트랜스미션, 차동 장치 등에 투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시즌 오픈 랠리에서 미쯔비시의 돌풍에 뒤이어 스바루에서는 SCCA 규정 조항들을 준수하면서도 WRC 사양에 근접한 두 대의 자동차를 출전시켰다. 금속성의 차가운 청색으로 빛나는 신형 WRX를 살펴본 히긴스는 “스바루가 이 랠리 시리즈를 휩쓸 것같다”라며 스바루의 성능을 높이 평가했다.
‘림 오브 더 월드’에서는 총 13개의 스테이지가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열리며 누적 시간을 기준으로 결과가 결정된다. 금요일 저녁에 땅거미가 지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미쯔비시 진영에서는 버펌이 에보에 어떤 타이어가 맞을지를 고르고 있었고 오설리번의 정규 보조 운전자로 투입된 에드스트롬은 코스가 그려진 노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WRC에서는 경기 참가자들이 각 스테이지를 사전에 주행할 수 있도록 보조 운전자가 랠리 중 주 운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노트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랠리가 비공개로 이루어진다. 즉, 참가자들은 각 스테이지를 미리 볼 수 없다. 대신 ‘림 오브 더 월드’는 조직 위원회에서 표준 랠리 표기 방식으로 작성한 코스 노트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4L/Crest 250!!! 1R’이라는 표기는 ’도로 상승 지역 왼쪽 옆으로 중간 속도로 주행 후 250야드 직선 주행, 그 이후에 오른쪽이 매우 위험, 저속 운전‘을 의미한다.
처음 시작 후에는 매우 절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조건에서 신형 스바루가 예상대로 선전을 했다. 러벨과 래그먼이 각각 1, 2위를 달리고 있었고 그 뒤로 히긴스와 오설리번이 각각 3, 4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 계속 내림에 따라 미쯔비시 팀이 더 나은 타이어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 졌다. 4스테이지에서는 히긴스가 선두로 나서는 동시에 래그먼이 도로에서 이탈해 9분을 낭비했다. 하지만 래그먼만이 이런 문제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
크라이슬러의 엔지니어인 더그 셰퍼드와 피트 글라데이즈는 회사의 지원으로 닷지 SRT-4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차가 도로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이들은 사진작가의 도움으로 차를 원래대로 위치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셰퍼드는 “작가는 먼저 사진부터 찍자고 했어요”라며 불평했다. 서리 제거 장치에 과부하가 걸려 차 앞유리가 뿌옇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몇 명의 보조 운전자들이 멀미를 느꼈다고 했다. “(보조 운전자 마이크 폴린이) 제 귀에 (인터콤에 대고) 토해 내는 바람에 아무 도움도 없이 혼자 운전했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닷지 니온 SXT를 가지고 출전한 또 다른 크라이슬러 엔지니어인 크리스 화이트먼은 이렇게 말했다. “상황이 좀 심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반드시 그러한 일이 벌어지더군요”. 주행 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아마추어 부문 랠리에서는 4번째 스테이지가 진행되는 도중 저체온증 환자가 발생했으며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단축 운영되기도 했다.
모두가 토요일에는 날씨가 좀더 좋아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비가 멈췄다 내리기를 반복했을 뿐 아니라 지면이 너무 젖어 먼지들이 진흙 수렁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오히려 자동차들이 지나간 후라면 타이어로 다져진 지면이 좀더 안정적으로 변했겠지만 그런 것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따라서 날이 밝기도 전에 몇 개의 스테이지는 아예 취소되기도 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천둥이 친다는 예보가 있더군요”. 코스 담당자들은 일기예보까지 전했다.
그러나 히긴스는 능수능란한 운전 실력을 통해 전날의 우세를 전체 스테이지 중 여섯 번째에 해당되는 토요일 첫 번째 스테이지까지 이어 갔다. 그가 탄 예보가 어둠 속을 뚫고 나타났다가 다시 산 속으로 질주하는 모습에서 선두를 유지하는 이유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는 오른쪽 급커브를 향해 돌진하면서 ‘펜들럼(진자) 턴’ 또는 ‘스칸디나비아 플릭‘, 또는 ’랠리 페인트‘라고 알려진 전형적인 랠리 테크닉을 구사했다. 순간, 그의 차는 왼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와 차체 뒤쪽이 크게 힘을 받아서 멋진 파워 슬라이드를 구사했다(이 기술은 브레이크를 크게 걸지 않은 채로 감속이 되어 바퀴에 락(lock)이 걸리기 때문에 미끄러운 도로에서 효과적이다. 또한 뒤쪽을 치고 나옴에 따라 운전자가 실수를 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커진다).
6 스테이지까지 꿋꿋이 고군분투하던 히긴스였지만 이제 거의 기진맥진한 것처럼 보였다. “(헝그리 밸리에서) 테스트하던 그 길들이 기억나십니까? 제 생각에는, 이 길이 한 세 배는 더 열악한 것 같습니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최 측에서는 이 스테이지를 (반대 방향으로) 다시 달리라고 하는데, 그건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 동안 40km 떨어진 곳에서는 지원 인력들이 랠리 중간에 차들의 수리와 보수를 하기 위해 몇 시간 정도 머무르는 서비스 구역으로 집합했다. 스바루와 미쯔비시 팀들은 정비를 위한 텐트와 장비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비 미소유자들은 장소마저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중 일부는 지원 팀조차 없어서 비를 맞으며 진흙 바닥에 앉은 채 차를 수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거의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하는 것 같았다.
도로는 거의 유실되었으며 차들-특히 2륜 구동-은 속속 탈락하고 있었다. 조직 위원회의 정찰 차량도 마지막 스테이지를 사전에 미리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진흙 속에 빠져 버렸다. 최악의 상황이었으며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미 26대의 차량이 랠리를 포기했으며 최종 스테이지들이 모두 취소되었다. 따라서 히긴스는 3분 차이로 2위를 차지한 러벨을 따돌리고 우승자로 확정되었으며 오설리번은 3위, 래그먼은 6위로 확정되었다. 스바루팀의 챔피언은 결과에 대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지는 게 좋지는 않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잖아요. 안 그런가요? 정말 모두들 눈물을 흘리는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사실 랠리 챔피언의 이 말은 두 달 이후 그 무시무시한 사건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지난 7월 러벨과 보조 운전자로 탑승한 로거 프리먼이 오리곤 주에서 열린 레이스에서 고속 주행 중 충돌로 인해 두 명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 사망 사고는 프로랠리 서키트 20년 역사에서 최초로 발생한 레이싱 사망 사고였다).
대회가 끝나고 몇 시간 동안 클럽 레이서들은 기나긴 귀향 준비를 위해 부서진 차들을 트레일러에 싣고 하나 둘 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터에 마련된 호화스러운 방수 텐트 안에서는 미쯔비시 팀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축하 행사는 포뮬러 1이나 윈스턴 클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미쯔비시가 이렇게 파티를 연 것은 프로랠리에서는 최초다. 모두들 샴페인에 취했고 연설을 하고 사진 촬영과 사인 받기 경쟁도 있었다. “이 차를 운전하는 게 운이 좋았습니다”. 오설리번은 감격해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강력한 놈이죠”. 히긴스도 웃음을 보였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던지는 역경들을 이기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원시적 도로에서 진짜 자동차로 개최되는 경주. 그러나 이번 주말엔 진짜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하면서 그 모습을 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랠리 경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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