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존재하던 스프가 어떻게 지금처럼 은하를 이루는 빽빽한 덩어리 거품 같이 변신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천문학자 마이크 터너가 줄곧 연구해온 주제였다. 오랜 연구 결과, 일리노이주의 바타비아에 있는 페르미연구소 우주과학자인 터너와 수많은 동료 과학자들은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를 상당 부분 파악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이 작은 이론을 ‘표준 핫 빅뱅 이론’이라 이름 붙였다.
표준 핫 빅뱅 이론은 대략 이러하다.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너무나 뜨거우면서도 작고 촘촘한 우주가 대폭발했다. 다시 몇 초가 흐르자 스프 같던 우주는 식었고, 쿼크는 양전기를 띤 양성자와 그 사촌뻘인 중성자로 형성되었다. 양자와 중성자는 다시 수소, 헬륨, 리튬 같은 가벼운 원소의 핵으로 융합되었다. 핵은 수십만 년 동안 계속 온도가 내려가던 중에 음전기를 띤 전자와 결합해 원자를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중력이 원자들을 끌어당겨 별과 은하를 만들었다.”
터너는 “이 이론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 너무나 잘 설명해주므로 기존 학설이나 이론들도 여기에 굴복해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더불어 그는 뒤에 나올 어떤 이론에도 끄떡없이 명확히 입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터너가 발견한 이 이론이 정확한지는 조만간 판명될 듯하다.
작년 한 해 동안 새로운 발견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우주과학자들이 빅뱅 이론을 재검토했기 때문이다. 프린스턴대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는 “2000년은 1930년대 이후 우주과학 분야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한 해였다”고 강조한다. 우주 공간과 산봉우리, 기구에서 행해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우주 과학자들은 우주의 생성 원리를 어느 때보다도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터너에게는 신나는 일이었다. 뜻밖의 수확을 거뒀기 때문이다. 페르미연구소의 물리학자 스콧 도덜슨은 이를 한마디로 “모든 증거가 동일한 결과를 낳았는데 그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고 요약한다.
이 방향이란 바로 ‘팽창’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80년대 초반 모든 가시권의 우주가 사실은 빅뱅이 일어난 지 1032분의 1초 동안 급속히 확대된 수없이 많은 작은 공기 방울들 중 하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 펴졌다. 이른바 ‘빅버프(Big Burp)’ 이론이다. 이 팽창기 동안에 우주가 얼마나 확대되었는지 정확한 수치로 말할 수는 없지만 터너는 “전무후무한 비율로 급속히 커졌을 것”이라 추정한다.
팽창 이론은 두 가지를 예측한다. 첫째, 초기의 우주는 모두 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물렁물렁했을 것이다. 핫 빅뱅의 멀리 사라져 가는 메아리에서 나온 음파는 복사 에너지와 촘촘한 입자들의 출렁거리는 파도를 타고 뻗어나가면서 고밀도와 저밀도의 반복되는 패턴을 낳았다.
부풀어오르는 팽창은 이 태초의 파도를 우주가 고요한 봄날의 연못처럼 잔잔해질 때까지 지속됐을 것이다. 30만 년 뒤 이른바 우주 배경 복사는 매질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도 빅뱅 메아리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니나 다를까. 1992년 우주 배경 복사 탐사 위성은 팽창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놀라운 증거가 발견됐다. 우주 배경 복사의 밝기에서 0.001퍼센트의 편차가 나타난 것이다.
두번째 예측은 다소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팽창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평평’하다. 물론 책상 바닥처럼 평평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주과학자들이 신봉하는 4차원 세계에서 ‘평평하다’가 의미하는 것은, 두 개의 평행선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휘어진’ 우주에서 두 직선은 풍선의 표면에 그었을 때처럼 언젠가는 엇갈릴 것이다. 우주가 평평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물질과 에너지의 전체 밀도가 특정한 임계치와 정확히 맞아 떨어져야 한다.
우주의 무게를 재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고 여기서 모두 동일한 결론이 나왔다. 과학자들이 측정한 우주의 밀도는 임계 밀도 중 기껏해야 40퍼센트밖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1993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 솔 펄무터가 이끄는 연구진과 브라이언 슈미트가 이끄는 하버드대 천체물리학센터 연구진은 우주의 무게를 측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전체 우주를 하나의 척도로 재기 위해 두 연구팀은 드넓은 밤하늘의 디지털 사진을 판독하면서 la 유형 초신성이라고 불리는, 태양과 비슷한 폭발 항성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흔적을 뒤졌다. la 유형 초신성은 초신성 중에서는 비교적 흔히 관찰되는 남다른 특징이 있다.
처음 폭발한 지 1주일 뒤에 모든 la 유형 초신성은 똑같은 최고 광도에 도달하며 몇 달 뒤 암흑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때 최고 광도는 웬만한 은하 하나에 들어 있는 1천억 개의 항성이 내는 광도와 맞먹는 밝기다. 멀리 떨어진 초신성의 관측 광도는 지구와의 거리에 정확히 반비례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la 유형 초신성 하나 하나의 밝기를 측정해 지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 물론 최고 광도에 도달하기 전에 초신성을 찾아내야만 이런 계산이 가능하다.
펄무터에 따르면 은하 하나에서 찾을 수 있는 la 유형 초신성은 평균 1천년에 두 개꼴로, 그것도 불규칙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그렇지만 며칠에 한 번씩 1만 개의 은하를 로봇 천체망원경에 장착된 디지털 광각(廣角) 카메라로 검색한 끝에 펄무터의 연구진은 몇 개의 갓 태어난 초신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세계 전역에 흩어진 천체망원경들로부터 들어온 후속 사진을 통해 점점 멀어져가는 초신성의 색깔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이 색깔을 분석해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동안 우주가 얼만큼 팽창했는지 계산할 수 있었다. 1999년 말까지 수집한 40여 개의 초신성을 토대로 초신성의 거리와 우주의 팽창도를 비교하던 펄무터는 깜짝 놀랐다. “우주의 팽창 속도에 가속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생성 초기의 우주가 허공에 미립자와 방사선을 발사하면서 팽창한 이후, 모든 빛과 물질을 끌어당기는 힘, 곧 중력은 우주를 안으로 끌어당기려고 힘써 왔다. 이 효과를 감안하면 팽창 속도는 점점 더 느려져야 한다. 그런데 펄무터는 정반대의 결과를 발견했던 것이다. 마치 우주의 무게를 쟀더니 결과가 마이너스로 나온 격이었다.
우주의 무게를 모두 합했는데 마이너스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왜냐하면 중력의 세기는 물체의 전체 질량에 비례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는 당기는 힘이 아니라 밀어내는 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주 상수’ 또는 ‘암흑 에너지’라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암흑 에너지를 더하면 우주의 무게는 당연히 늘어나고, 정상 물질의 당기는 힘을 상쇄해 풍선으로 공기를 불어넣을 때처럼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킨다.
우주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물질은 인력을 낳고 암흑 에너지는 척력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주의 가속률은 우주 질량의 밀도와 어두운 에너지의 밀도의 차이에 비례한다. 지금까지 계산한 질량 밀도 중 가장 믿을 만한 것을 기준으로 관측된 가속도가 나오는데 펄무터는 필요한 암흑 에너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했다.
에너지는 임계 밀도의 60%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것은 바로 평평한 우주를 유지하는 데 추가로 필요하다고 우주과학자들이 계산한 질량, 에너지의 양과 정확히 일치했다. 펄무터는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도대체 어디가 틀렸는지 고민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오류는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작년에 나온 새로운 연구 데이터는 그들이 얻은 결과를 더욱 강하게 뒷받침해주었다.
빅뱅의 메아리는 심벌즈를 부딪칠 때 나는 소리처럼 단음(單音)으로 퍼지지 않는다. 우주의 배경 복사파에 새겨지는 진동은 먼저 기본음이 깔리고 파장이 점점 짧아지고 강도도 약해지는 배음들이 뒤를 따른다.
각 음의 파장은 빛이 물질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우주 크기에 의해 결정되며 우주의 크기는 다시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우주가 평평하다면 기본음의 파장, 즉 우주 배경 복사파 중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융기의 크기는 지구에서 보았을 때 1도쯤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주 배경파 탐사 위성은 그 정도로 작은 얼룩까지 잡아낼 만큼 성능이 좋지 않았다. 칼테크의 우주과학자 앤드류 랭은 “그저 덩어리와 혹만 보이는 뿌연 사진이었다”고 설명한다.
우주 배경 복사파를 탐지하기 위해 새로 도입된 천체망원경이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주었다. 칠레의 안데스 산맥에 설치된 비등방성(非等方性) 전파 망원경과 은하 외부 미세 복사 지구물리학 관측기구(boomerang: Balloon Observations of Millimetric Extragalactic Radiation and Geophysics), 미세 비등방성 실험 이미지 배열장치(Maximi: Millimeter Anisotropy eXperiment IMaging Array) 같이 지구 상공 높이 떠 있는 기구는 6분의 1(방위각으로 따졌을 때 10분에 해당)도 안 되는 깨알 같은 덩어리를 모두 탐지할 수 있다. 부메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랭은 “그 정도 크기면 보름달의 3분의 1크기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개의 천체망원경에서 최근 관측한 결과는 모두 일치한다. 기본음의 파장은 1도다. 우주는 평평한 것이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분교의 우주과학자이자 맥시마 계획에 핵심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폴 리처즈는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지는 결과”라며 “드디어 정답을 알아낸 것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가 평평하다면 암흑 에너지는 어떻게 되는가? 여기 저기서 내놓은 설은 많지만 펄무터는 아직 연구 단계에 있다.
우주 상수에 대해 이론적으로 가장 정교한 계산 방법을 동원했을 때 나온 수치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어두운 에너지의 무게를 무려 10100!이나 더 높이 잡고 있다.
암흑 물질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천문학자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은하와 은하군에 있는 암흑 물질은 이것이 항성의 궤도에 미치는 중력의 흔적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은하와 은하 사이에 있는 광막한 허공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뉴저지 머레이 힐에 있는 루슨트 테크놀로지 벨 연구소의 우주과학자 토니 타이슨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앞으로는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그 안에 숨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타이슨은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우주라는 바다를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암흑 물질의 무게를 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들은 이것을 ‘약한 중력 발산’이라고 부른다. 질량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어 있으면 그 주변을 둘러싼 시공간이 휘어진다.
질량을 통과하는 빛은 접시 안에서 굴러내리는 구슬과 마찬가지로 휘어진 경로를 통해 나아간다. 그래서 만약 아득히 먼 은하에서 나온 빛이 지구로 오는 도중에 암흑 물질과 조우하면 그 은하의 모습은 뜨거운 여름날 복사열 때문에 멀리 보이는 도로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왜곡되고 발산된다. 타이슨은 이것이 우주의 신기루라고 설명한다. 타이슨은 수많은 은하들의 사진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질량의 진화 과정을 3차원 영상으로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일대 장관이 펼쳐질 것”이라고 타이슨과 테그마크는 생각한다. 우주천문학에서 또 하나의 혁명을 예고하는 서곡이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펄무터는 그 뒤로도 새로운 초신성을 꾸준히 찾아냈고(현재 82개) 새로운 연구 단체들이 참여하면서 팽창하는 우주 그림은 더욱 정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부메랑과 맥시마 두 기구는 앞으로 2년 안에 성층권으로 돌아와서 우주 배경 전자파에 대한 정밀 사진을 촬영할 것이다. 이런 실험과 함께 금년에는 전파 비등방성 탐사 위성도 발사된다. 약한 중력 발산파만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암흑 물질 천체망원경, 우주의 가속화를 측정하는 초신성 가속 프로젝트 위성도 현재 입안 단계에 있다.
이런 놀라운 탐사 장비가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머지않아 어두운 에너지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테그마크는 “다방면에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고생하는 연구팀은 있겠지만 연구 전체가 실패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것이 성공을 거둔다면 각광을 받았던 표준 핫 빅뱅 이론은 예측 불허의 새로운 이론에 밀려날 것이다.
현재로서는 팽창 이론을 포함한 그 어떤 이론도 암흑 물질의 위치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위력을 떨쳤던 표준 모델이 새로운 정보에 의해 공격 받고 그토록 맥없이 무너지는 것에 혹 서운한 감정은 들지 않을까? 터너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웃는다. “과학은 원래 그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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