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역시 애벌랜치는 믿을 만하다. 아니,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렇게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한 차량은 최근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자동차 회사들은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결합한 복합 차량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왔다. 세단처럼 몰 수 있는 SUV, SUV처럼 몰 수 있는 세단, 스포츠카처럼 코너링 능력이 탁월한 미니밴, 왜건처럼 짐을 실을 수 있는 스포츠카가 그러하다.
실제로 제너럴 모터스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픽업 트럭으로 감쪽같이 변신하는 SUV를 창조했다. 피상적으로 보면 원리는 간단하다. 기존 트럭의 탑승 칸에서 뒷칸을 접어 숨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뒷창을 숨기고 적재함의 앞칸을 앞으로 밀어 접어 뒷좌석 위로 포개놓으면 픽업의 적재공간은 탑승 칸까지 확장된다. 뒷칸을 그대로 두면 애벌랜치의 탑승 칸에는 5명이 탈 수 있고 짧은 적재함에는 가벼운 짐을 실을 수 있다.
디자인을 비롯한 다른 문제를 해결해 안전하면서도 경제적인 차량을 만들어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애벌랜치의 브랜드 매니저 에드 쇼너는 “적재함은 줄이더라도 탑승칸은 넓히기를 원하는 트럭 소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추세는 199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비자의 80퍼센트가 앞좌석만 있는 일반 픽업을 샀지만 90년대 말에는 70퍼센트가 뒷좌석이 있는 트럭을 구입했다.
1999년 GM이 새로운 일반 트럭용 차대를 개발했을 때 극비 프로젝트 개발팀에서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SUV의 뒷좌석을 접어 내부 공간을 넓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트럭 뒷좌석을 접고 적재함 앞칸을 그 위에 포개면 적재함을 넓힐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실은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벌인 조사에서 한 소비자가 ‘적재칸과 탑승칸을 뚫으면 되지 않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쇼너는 귀뜸한다. 하지만 짐을 잔뜩 실은 상태에서 차가 부딪쳤을 때 그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금속 칸막이를 설치한다 해도 그 무게 때문에 탑승 칸 안에서의 조작이 쉽지 않다는데 문제점이 있었다.
새로운 고강도 합성수지를 개발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연구팀은 고밀도 유리섬유 형틀을 이용해 완성된 모양으로 만든 다음 우레탄 수지에 흠뻑 적셨다.
지금까지는 이런 고밀도 합성수지를 제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었다. 그러나 로봇을 이용해 진공 스크린 위에 섬유를 뿌리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유리섬유는 단 몇 분 안에 만들 수 있게 됐다.
이 새로운 공정은 적재함 바닥이 100퍼센트 합성수지로 된 시보레 트럭에 처음 도입되었고 이것이 애벌랜치의 바닥과 칸막이에 사용되는 것이다. 애벌랜치의 기본 차대는 정통 SUV 서버번을 그대로 활용했다.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트럭 대형화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쇼너는 설명한다. 따라서 애벌랜치는 GM의 가장 큰 SUV와 앞좌석, 뒷좌석 크기가 동일하다. 칸막이만 접으면 뒷좌석의 바닥은 적재함 바닥으로 연장돼 적재함 길이가 158cm에서 240cm로 늘어난다.
이런 디자인에도 단점은 있었다. 가령 악천후 때는 큰 짐을 싣고 갈 때 탑승 칸 뒷좌석으로 비가 들이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적재함에 덮개를 설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덮개를 씌우고도 적재함은 연장할 수 있다. 덮개를 벗기고 옵션으로 제공되는 텐트를 설치하면 야외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멋진 캠핑 카로 변신한다.
GM은 일단 내년중으로 캐딜락을 변형한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며 시보레도 뒷좌석을 변환할 수 있는 좀더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4륜 구동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닛산은 2년 전 출시한 앙증맞은 프론티어 픽업을 토대로 후방 노출형 소형 트럭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목적 차량이 점점 요구되는 현실에서 애벌랜치의 독주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감수:현대자동차 파워트레인 연구소 조영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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