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빠르게, 보다 뛰어나게, 모두 집어치워! NASA를 러시아에 팔아먹다니! 앨 고어의 시녀로 전락한 NASA! 우주항공 및 우주왕복선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실수로 점철된 NASA의 우주탐사 계획!’ 따위 비난 문구들도 미국인에겐 매우 익숙하다.
이렇듯 엇갈리는 두 평가는 바로 다니엘 S. 골딘에 대한 것이다. 골딘은 1992년 NASA 국장직에 임명됐는데, 역대 국장 중 가장 오랫동안 국장직에 재직한 사람이다. 그는 업적도 많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오점도 남긴 인물로, 만일 이번에 재임명이 안되면 내년 1월 사임할 예정이다.
“내가 이뤘던 업적이나 실패가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이루고자 했던 유일한 것은, NASA의 우수인력들에게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라고 단호히 말하는 골딘은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 키에 가끔 엉뚱하게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다니기도 하고, 우주왕복선 발사가 있을 때에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골딘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위 사람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좌절시키며, 화나게 만들기도 한다.
골딘이 국장으로 임명될 당시 NASA측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주정거장 건설은 정치적, 기술적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바람에 큰 골치를 앓고 있었다. 이 와중에 클린턴 행정부가 러시아와 합작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1993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앨 고어 부통령은 결코 아무런 이득이 없는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에 러시아를 통찰시키는 계약을하고 말았다. 이후 NASA는 값비싼 대가를 치뤄야 했다. 러시아가 즈베즈다 거주 모듈을 제때에 인도하지 못하게 되자 우주정거간 건설 계획은 수년간 지연되었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수십 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골딘 국장 밑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그를 “NASA를 러시아에 팔아 넘긴 장본인이며, 다른 사람의 충고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라고 평가한다.
골딘은 재정난을 해결하는데도 지지부진했다. 그 결과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NASA의 예산이 20%나 삭감되는 등 우주사업에 대한 백악관의 지원은 매우 미약해졌다. 골딘 자신도 재임 초기 실수를 인정한다. 골딘은 TRW 우주기술그룹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국방과 우주에 관한 주요 프로그램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NASA로 자리를 옮긴 후 정부기관의 생리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골딘은 ‘보다 빠르게, 보다 뛰어나게, 보다 저렴하게’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운영 방침으로 인해, NASA는 우주선 제작에 오랜 기간 동안 수십 억 달러를 투입해야 하는 행성 탐험을 포기하게 된다. 이 후 NASA는 주로 3억 달러 이하의 소규모 우주선을 설계하고, 승인을 받으면 3년 이내에 발사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1997년 패스파인더 화성탐사대는 골딘이 추진한 대표적인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에로스 소행성 궤도를 돌고있는 우주선, 화성 지도를 작성하는 우주선, 혜성의 암석을 채집하여 지구로 보내주는 우주선 등도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계획은 계속 실패했다. 1999년에 발사된 두 개의 화성 탐사선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임무 수행에 실패했다. 원인은‘저비용’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이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골딘은 자신의 운영 방침을 계속해서 밀어 부쳤다. 그러나 ‘보다 저렴하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융통성을 인정했다. 골딘은 “거대한 우주선을 한 대 제조할 가격이면, 탐사선을 5-6번이나 쏘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화성으로 항해하는데 ‘암초’를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며, 국민들이 받은 충격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덧붙였다. 그는 화성탐사선 사고가 발생한 지 8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2003년에 발사 예정인 새로운 화성 탐사 계획을 승인했다. 이번에는 우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충분한 자금도 투입될 것이다.
마침내 정상 운영궤도에 진입한 국제우주정거장은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됐다. 이에 대해 하원과학위원회 회장인 제임스 센브레너 의원은 불만을 토로한다.“국제우주정거장 프로그램에 러시아를 끌어들인 것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치적 결정이었다. NASA 국장은 그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그러나 골딘은 오히려 러시아에게 미르호를 포기하고 국제우주정거장 프로그램에 집중할 것을 촉구했다. 미르호는 현재 비행을 계속하고 있으며(파퓰러 사이언스 7월호 관련기사 참조), 국제우주정거장에 연결된 즈베즈다 모듈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궤도상에서 수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골딘 체제 하에서 NASA는 우주항공과 우주선 프로그램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국제우주정거장의 구조선을 소유즈 대신 X-38로 대체하는 계획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으며, 발사 로켓을 개발하려는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도 그다지 원활하지 못하다. 따라서 민간 부문 자금난은 더욱 심각해진 실정이다. 한 관련 인사는 골딘이 민간기업들을 지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민간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우주 개발 프로젝트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혹평한다. 골딘은 이런 비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X-38은 현재 낙하 시험중이며, 4년 안에 가동이 가능하다. 궤도에 여러 해 동안 머물 수 있고, 착륙 시에는 속도를 줄이면서 하강한다.”
그는 앞으로 있을 그 어떤 새로운 계획이나 사업에 대해 지원하지 않을 방침이다. 골딘의 이력을 보면, 골딘의 고집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초 뉴욕시립대 4학년 시절, 골딘은 미공군 제트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장교 후보 시험에 지원했으나 신체 검사에서 시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받고 탈락했다. 공학을 전공한 골딘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공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 도중에 주디를 만나 결혼을 하고, NASA의 루이스(현재, 글렌)연구소의 전기우주추진시스템 엔지니어가 되었다. 골딘은 자신의 일에 만족했다. 뒤늦게 공군으로부터 입대 허가서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골든은 당시를 회상한다. 그 후 30년 뒤,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NASA의 국장직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는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국가를 위해 헌신할 기회가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골딘은 NASA 국장에 임명된 초기부터 NASA의 많은 고위급 관료들을 해고하면서 적을 만들게 된다.골딘은 NASA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심한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반면 골딘을 비난하던 사람들도 성공적인 업적에 갈채를 보내며,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것엔 동의한다. 일부에서는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화성 탐사대 경우를 제외하면, 과학과 우주 분야에 대단한 성과를 이룬 셈”이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과거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시한다. “냉전시대나 아폴로 세대는 이제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훌륭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거에 얻은 교훈을 그냥 썩혀서는 안 된다.” 골딘은 MIT에서 새로운 NASA 시스템 관리 과정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또한 공과대학의 교과과정에 ‘배우면서 얻는 교훈’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골딘 자신이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NASA를 소유한 자는 미국인들이며,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항에 대해 국민들과 의논해야 합니다.”아마도 그는 집무실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이 말을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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