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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 엔진을 장착한 미국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러시아제 엔진을 장착한 미국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냉전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를 계기로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러시아의 우주산업시설을 들여다본다.

버스를 타고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북서쪽 교외 부근 킴키까지 가는 길은 단조롭기만 하다. 버스 운전기사는 미국의 첩보위성이 수십 년을 뒤졌어도 찾아내지 못했던 러시아의 로켓 연구소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전 셰르메티에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미국의 한 로켓 전문가가 차창 밖을 가리켰다. “저기 멀리 붉고 하얀 탑이 보이죠?” 그는 필자에게 뜬금없이 그렇게 물었다. 90미터 높이의 탑이니 당연히 잘 보일 수밖에. 그 탑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냉각탑처럼 보였다.

“저게 ‘에네르고마쉬’거든요.” 록히드마틴 우주항공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밥 포드가 말했다.
“저 안에다 그렇게 오랫동안 로켓 시설을 숨겨놓은 겁니다.”
기자 일행은 NPO(과학생산복합기업) 에네르고마쉬로 들어섰다.

에네르고마쉬는 후르시초프를 설득한 세르게이 코롤레프가 스푸트니크호를 궤도에 올려 ICBM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시험한 후 러시아의 로켓엔진을 도맡아 설계하고 제작한 연구소. 그러나 겉모습은 그 일대의 다른 아파트처럼 낡고 허름했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 아닙니까? 보세요. 영락없는 아파트잖습니까. 그러니 눈에 띄지 않을 수밖에요. 저건 발전소 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각탑이죠. 하지만 안으로 한 번 들어가 보세요. 저기가 바로 로켓 연구소의 심장부입니다.”
황량한 안내소로 들어가서 미국 여권을 보여주자 회색 양복을 입은 마른 체구의 한 러시아인이 옆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여기서 잠시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37년을 기다려왔는데, 겨우 몇 분을 더 못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달 전인가, 필자는 덴버 남쪽에 자리한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만든 화성 탐사선이 두 번이나 실패한 문제를 놓고 공장 간부, 기술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록히드마틴 공장측에서는 아틀라스와 타이탄 로켓을 제작하는 구역도 보여주었고, 아틀라스 III호에 장착할 RD-180 로켓 엔진도 보여주었다.

아틀라스 로켓은 1950년대 중반부터 배치되었고, 대부분은 소련을 겨냥한 핵탄두를 달고 있었다. 그 중 일부가 NASA로 왔는데, 1962년 2월 지구 궤도를 돈 최초의 미국인으로 명성을 얻은 존 글렌을 태운 것이 바로 이 로켓이다. 아틀라스 엔진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켓다인이라는 미국 회사에서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다.
에네르고마쉬는 모스크바 근교에서 RD-180을 만든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으면서 록히드마틴사의 제프 윌슨 부사장이 제안했다. “다음 출장 때 같이 가도록 합시다. 미국 언론인이 가도 들여보낼 겁니다.” 그렇게 해서 모스크바 취재가 결정되었다.

파퓰러 사이언스의 허락이 떨어지고 러시아측에서도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자 록히드마틴사는 필자외에 세 명의 기자를 더 추가했다. 필자가 1963년 처음으로 우주 비행을 취재했을 때 기자단 가운데 두 명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 놀랐다.

러시아인이 지난 37년 동안 필자의 글을 읽어왔을까? 그들이 관심이나 가졌을까?
러시아인들이 유인 우주비행의 세부 사항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던 1960년대에 미국측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살루트 우주비행장을 짓고 NASA와 공동으로 아폴로-소유즈 시험 계획을 추진하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소 정확성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필자가 러시아의 우주왕복선 계획과 미르 우주정거장의 초기 진행 과정을 보도한 80년대에는 돌아가는 상황을 제법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시절 러시아는 자신들의 비밀 로켓 우주선 공장으로 서방세계의 기자들을 절대로 초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 그 출입문에 서 있는 것이다.

문이 열리자 러시아인들이 웃으면서 반겨주었지만 왠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최근 그들은 록히드마틴, NASA, 미국 의회, 심지어는 CIA 대표단까지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수백만의 독자들에게 눈으로 본 것을 글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장은 아무런 장식도 되어 있지 않고 깔끔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방들은 시원하다 못해 좀 추운 편이었으며, 카메라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소그룹으로 나뉘어진 기술자들이 다양한 크기의 엔진들을 효율적으로 조립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RD-180 조립장은 다른 곳보다 눈에 띄게 분주해 보였다. 조립 구역이 엄청난 규모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여느 로켓 공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환상은 몇 분만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매서운 3월의 바람이 몰아치는 그곳에서 필자는 90미터에 달하는 ‘냉각탑’을 올려다보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녹이 슬어 있었고 흠집이 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영락없는 냉각탑이었다.

“이렇게 해서 엔진 시험 때 나오는 배기 가스를 흐트러뜨리는 겁니다. 발사실은 더 놀랍죠”라고 밥포드가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발사실을 들여다보고 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험대’는 강도 높은 거대한 산업용 주물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나는 고정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움직이면서 로켓 엔진을 수평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각종 전선과 연료케이블, 산소공급 케이블, 그 밖의 보조 장비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한층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일 주일에 두 번 시험 가동을 하는데, 바깥에서 측정하면 소음이 60데시벨을 넘지 않습니다. 이웃 주민들도 거의 눈치채지 못하지요”라고 밥포드가 설명했다.
로켓의 배기가스는 움푹한 통으로 들어가 고압의 빠른 물살과 섞이면서 차단막을 거쳐 탑 위로 올라간다. 꼭대기에서는 하얀 수증기만 뽀얗게 뿜어져나와 누구도 전혀 눈치를 챌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 정보국이 찾아내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정찰위성은 멀리 떨어져 있는 로켓 시험 시설만 뒤지고 다녔던 것이다.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엔진을 모스크바 코앞에서 시험하리라는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화배우처럼 용모가 수려한 선임엔지니어 보리스 카토르긴은 이 회사의 상무다. 그는 거대한 전시물 때문에 비좁게 느껴지는 사내 박물관에서 회사 연혁을 소개했다.
에네르고마쉬는 1929년 카잔의 한 작은 항공수리점에서 출범하여 1946년 모스크바로 옮겨왔다고 한다. 카토르긴은 러시아인들이 베르너 폰 브라운의 독일 로켓 공장에서 가져올 수 있는 공장 설비를 모두 뜯어 모스크바로 실어왔다는 소린 하지 않았다.

카토르긴은 “에네르고마쉬는 스푸트니크, 루나, 보스토크, 보스코드/몰니야, 소유즈, 코스모스 2단계 발사체의 로켓 엔진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뿐 아니라 예산 부족으로 아쉽게 중단된 부란 우주왕복선의 엔진도 여기서 만들었다고 한다. 부란 우주왕복선은 지금은 모스크바 한 공원의 관광명소로 남아 있다.

박물관에는 크고 작은 엔진이 즐비하다. 구조도 단순하고 크기도 작은 초기 엔진도 있지만 프로톤 로켓을 우주로 띄워올린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엔진도 있다. 대형 엔진 중에는 1960년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뜨겁게 달구면서 미·소 양국의 미사일 격차 문제를 촉발시킨 장본인도 있고, 21세기의 화합을 상징하는 아틀라스 미사일을 겨냥한 엔진도 있다.

박물관 한구석에는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기념물이 있고, 그 옆에는 에네르고마쉬 엔진이 쓰였던 로켓 모형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에네르고마쉬 엔진은 바로 1961년 가가린을 우주로 쏘아올린 그 엔진이다.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엔진을 찍기 위해 기자가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자 한 보안요원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필자는 카메라를 허리춤으로 내리는 척하면서 셔터를 눌렀다. 소리가 안 나는 카메라라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엔진 위에 놓고 여기저기 걸어가서 자동 셔터 장치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에네르고마쉬 간부들이 사진 촬영 금지를 철회했다. 어차피 이곳은 박물관이고, 이제 미국인은 적수가 아닌 파트너라는 사실을 그들도 알아차린 것이다.

에네르고마쉬는 지금까지 1만여 개의 엔진을 만들었고, 그 중 9,000개가 실제 비행에 쓰였다. 나머지는 개발용이나 시험용으로 쓰였다. 9,000개의 엔진 중에는 실패작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공을 했다. 무겁고 튼튼하고 실용적이고 강력한 로켓엔진을 만들기로 정평이 난 에네르고마쉬의 명성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423톤의 추진력을 가진 RD-180은 이중 노즐을 가진 대형 엔진이다. 구조는 간단하면서도 세련됐다. 부품의 70퍼센트는 좀더 규모가 큰 RD-170에서 물려받았고, 나머지는 아틀라스 제작의 일환으로 개발되었다. 록히드마틴사는 이 엔진을 받아서 간단히 조립만 하면 된다. 이 엔진을 로켓에 장착할 때 걸리는 시간은 불과 24시간. 옛날 엔진은 몇 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이런 앞선 기술력은 기술 이전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부 당국자 간에는 단일화 이야기가 오가지만 “러시아의 규제법은 발주자가 미국이건 프랑스건 똑같이 적용된다”고 카토르긴은 말한다. 그 순간 노트북을 두드리던 필자의 손가락이 그만 얼어붙었다. “이럴 수가!” 필자는 깜짝 놀랐다.“첨단기술이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전된다는 말이지. 역할 바꾸기라, 말 되네.”

카토르긴은 RD-180이 “혁신적 폐쇄회로 시스템”을 탑재한 덕분에 동종업체의 엔진에 비해 약 5분의 1가량 더 힘이 좋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로켓 전문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묻자 그들은 함구로 일관했다.

두 달 뒤인 5월 24일 최초의 아틀라스 III호가 케이프 캐네버럴 발사장에서 통신위성을 궤도로 쏘아올렸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위성, 지상 레이더의 고장, 심한 강풍과 전기버스의 고장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발사는 자꾸만 지연되었다. 하지만 RD-180으로 인한 문제는 전혀 없었다. 아주 완벽하게 작동했다.

록히드마틴사가 주문하는 모든 엔진은 상업 위성을 쏘아올리는 데 이용될 것이다. 하지만 엔진의 성능이 워낙 뛰어나 NASA 등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현행 미국 법규에 따라 이 엔진은 러시아에서 부품을 가져와 미국에서 조립하도록 되어 있다. “충분히 가동할 수 있는 상태로 인도해야 한다”는 계약 조건에 따라 러시아의 기술진도 엔진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고 카토르긴은 웃으면서 말한다.
현재 이 회사에서는 다른 엔진도 한창 개발중에 있다. 그들은 세계 로켓시장의 강자로 떠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긴 하루의 마감을 알리듯 잿빛 하늘에 눈발이 휘날린다. 내일은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과 미국 국제우주정거장에 같이 들어갈 모듈이 만들어지고 있는 후루니체프 우주센터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기자들에게 이미 공개된 바 있는 코롤레프 우주센터의 러시아 관제소도 견학할 계획이다.

후루니체프를 방문한 날 밤, 기자는 호텔에서 붉은 광장까지 걸어갔다. 60번째 맞는 생일. 크렘린 옆에 서서 취재하던 옛 시절을 되돌아본다. 1960년대에 배치된 아틀라스 미사일의 일부는 의심할 나위 없이 지금 서 있는 이 지점을 겨누고 있었으리라.
“여기가 바로 낙하지점이군.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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