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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력 카트카의 위력과 스릴

필자는 평생 경주용 자동차를 타며 지냈다. 어느 날 오클랜드 밸리에서 처음으로 23살 난 딸 브룩과 카트 경주를 하게 되었다. 딸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여행을 다니는 배낭 여행족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필자가 곡선 주행로인 언덕에서 굴러 연못가의 갈대 숲에 쳐 박혀 완패하고 말았다. 이 언덕을 내려서야 하는 곡선 주행로는 아주 위험하여 카트의 방향을 틀면서 일찍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만 방심해도 주행로에서 벗어나 울퉁불퉁한 안전지대를 지나 연못을 향해 돌진하기 십상이다.

카트카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카트카를 놀이공원에서 타는 범퍼카 정도로 생각하지만 유럽과 남미에서는 카트카를 타던 10대들이 세계 최고의 F(포뮬러)1드라이버가 된다. 실제로도 F1 드라이버들은 모두 과거에 전국 카트카 챔피언이었거나 세계 카트카 챔피언들이었다.

그 날 필자는 딸과 함께 오클랜드 밸리 레이스 파크에서 장장 4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경주를 했다. 뉴욕 주에 위치한 저비스 항구 근처에 있는 이 경기장은 뉴욕주 모퉁이에 있는 산림지대로 펜실베니아와 뉴저지가 맞닿는 곳이다. 경주에 참패한 뒤 필자는 ‘카트카를 10년 전에만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평생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많은 운전기술을 터득하기는 처음이었다.

카트카는 보기에 어설프다. 단순한 프레임에 손수레 타이어, 잔디깎이 엔진과 우스꽝스러운 운전석에 앉은 자세 같은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 타이어는 작지만 경주용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홈이 없고 프레임도 튼튼하며 고속 카트카인 경우는 모터사이클에 뒤지지 않는 각도로 코너 주행을 한다. 결국 카트카는 가속력과 속도에서 중형 엔진을 탑재한 경주용 자동차에 뒤떨어지지만 역동성에서는 전혀 손색이 없다. 차체 중심을 낮게 설계한 레이다운 쉬프터형의 카트카는 최고시속 224km도 가능하다.

지금 필자가 감탄하는 카트카는 우습게도 혼다의 9마력, 4행정, 박스형의 산업용 엔진에 싱글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를 뒷차축에 장착하고 있다. 최고 속도는 64km이지만 마치 작은 쾌속정을 타고 96km로 달리는 듯한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아스팔트에서 엉덩이가 겨우 5cm떨어져 있고, 직선 주행로의 막판에서야 최고 속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타이트한 트랙에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카트카의 스피드 감각이 얼마나 다른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카트카 운전에서 터득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겁에 질려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것보다 안정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고속으로 힘있게 운전하는 편이 훨씬 자동차를 제어하기 쉽고 앞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이다.
다행히, 딸아이와 필자는 함께 팀을 이뤄 같은 카트에 탔다. 그리고 지역 포르쉐 클럽 지부의 드라이버 한 명도 같이 탔다. 안 그랬으면 딸애와 같이 시합해야 할 상황에 닥쳤을 때 정말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 그전에 오전 내내 이뤄진 훈련과정에서 우리는 각자를 경쟁 상대로 삼아 서로 다른 카트에 탔다. 훈련은 제이 드 마켄이 진행했는데, 마켄은 자신이 손수 제작한 카트카 몇 대를 타고 카트카 초보교실을 열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나이였다.



실제 레이스에 나섰을 때, 브룩은 선두로 출발해 가장 빨리 달려 우승깃발인 체커 플래그를 받았다. 포르쉐 클럽 지부 회원인 패트릭과 필자는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반면 딸애는 우리 중에서 트랙 일주기록이 빨랐다. 딸아이는 꾸준히 기록을 줄여나갔다. 견디기 힘든 딱딱한 운전석에 앉은 중년인 우리는 차츰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대도시의 스포츠 기자가 카트카 드라이버는 “운동선수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필자는 속이 쓰렸다. 한 시간 정도만 카트카에 꼼짝 못하고 앉아 있기만 해도 그 스트레스가 진짜 레이스카 경주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다름없으리라는 점을 온몸으로 느끼고도 남을 텐데 말이다. 4시간 후에 우리는 온몸이 경직되고, 멍들고, 쥐가 난 채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차에서 내렸다. 사실 패트릭은 3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딸아이 역시 힘이 빠졌다. “아, 사실 이건 장거리 경주라고 하기도 힘들어요.” 드 마켄의 조수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장거리 경주는 대부분 8시간, 12시간 또는 24시간이지요. 얼마 전 플로리다에서 열린 24시간 경주에서는 르망사의 웨인 테일러 10살짜리 소년이 자신의 형과 함께 1위를 차지했었죠.”

한 가지 카트자동차가 좋은 점은 후사경이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경주용 트랙에서는 필자 뒤에 바짝 따라붙는 차를 볼 때마다 항상 느끼던 협박, 으름장을 한켠에 재워둘 수 있었다. 필자보다 빠른 운전자들은 아주 많았는데 하나같이 필자가 욕설을 내뱉을 만큼 필자의 차 앞으로 세게 질주하면서 지나가고픈 욕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차선에서만 제동과 가속을 적정한 정도로 유지했다. 적어도 아무 일 없던 레이스의 마지막 30분쯤, 어떤 바보같은 놈이 U자형 커브를 직선으로 가로질러 오더니 순간 필자 앞으로 바짝 끼어 들어와 조명이 켜진 트랙바깥으로 튕겨져 나갈 때까지 말이다. 필자는 오클랜드 파크의 클럽하우스에 있는 레이스 위치를 비춰주는 큰 비디오 모니터에 브룩이 “팀 최고속도 기록” 이라고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필자는 브룩이 작은 자동차로 연신 기록을 갱신하고 바람소리를 내며 추월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레이스에서 브룩을 쫓아오던 남자들이 나중에 피트로 와서 빠르더라고 칭찬할 때 브룩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꼭 봤어야 해요.” 패트릭이 나중에 귀뜸했다.

큰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에서 출력이 작은 카트카는 경주용 차량으로써 마땅히 누릴 존경을 받지 못해왔다. 카트카는 가장 간단하고, 단순하며, 안전하고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레이스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자동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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