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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pital Automation

병원이 변하고 있다. 종전에는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새벽부터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가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비치된 여성잡지를 뒤적거리며 무료한 반나절을 보낸 후에야 겨우 10여분간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진료차트를 찾기 위해 컴컴한 자료실을 뒤지고, 조제실에서는 의사의 ‘악필’에 고전을 면치 못하기가 다반사. 동네병원에서 찍었던 MRI, CT 등의 필름을 종합병원에 제출하려면 환자가 직접 그 병원을 찾아가는 발품도 팔아야 했다.

하지만 OCS, PACS, EMR, LIS 등 이름도 생소한 첨단기술들이 이 같은 환자와 병원의 번거로움을 풀어주는 해결사로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의사는 디지털화된 차트로 진료기록을 확인하고, 처방전은 병원과 약국의 네트워크로 전달해 준다. 또한 집에서 담당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의 시대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디지털을 이용한 의료정보화 기술의 발달과 함께 병원운영의 비효율성과 환자의 번거로움은 하나하나 ‘정복’되고 있다.

어떤 기술이 있나
우선 가장 기본적인 의료정보화 기술로는 처방전달시스템(OCS : Ordering Communication System)을 꼽을 수 있다. 처방전달시스템이란 의사가 디지털로 작성한 처방을 네트워크망을 통해 각 진료부서로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진료 및 처방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고, 처방 내역을 컴퓨터에 저장할 수도 있어 환자를 진단할 때 손쉽게 과거 진료기록을 조회할 수 있다.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급속히 확대되 현재 400병상 이상의 병원은 90% 이상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변화하는 인터넷환경과 다양한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기존 OCS시스템 업그레이드 작업이 한창이다. 최근 웹기반 서비스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이 진행 중이며 고대안암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대학 병원들이 수년 전 구축했던 OCS를 새로운 IT환경에 맞게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

의료정보화의 기본시스템인 처방전달시스템을 기반으로 지난해에는 의료영상저장전송장치(PACS : 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열풍이 불었다. 팩스란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화상법(MRI) 등의 단층 진단시스템이나, 핵 의학 진단시스템, 초음파 진단시스템 등으로 촬영한 화상을 광 디스크, 서버 등에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해 컴퓨터망을 통해 전달 및 검색하는 시스템이다. 이른바 ‘필름 없는 병원’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으로 환자의 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필름 낭비를 줄여 효율적인 진료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개선에도 일조할 수 있다. 정보보호 부문만 해결되면 환자의 기록을 CD로 저장해 직접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GE, 아그파, 지멘스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3D를 활용한 입체파일, ASP서비스 등의 개발이 한창이며, 최근에는 3D기술을 활용해 컴퓨터가 자체적으로 환부 필름을 판독해 진단하는 기술도 개발중이다.

전자 의무기록(EMR : Electronic Medical Record)은 각종 기록업무를 전산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의료정보화의 가장 높은 단계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 의무 기록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처리하고 있는 데 반해, 이 방식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광디스크나 CD로 기록 및 저장한다. 따라서 신속한 업무 처리와 인력 및 비용 절감, 의료정보 공개를 통한 국민건강 증진, 환자 대기시간 단축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시스템통합(SI)의 성격을 띄고있기 때문에 중ㆍ소형병원에서는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대형병원은 설치소요기간,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 등의 문제로 아직까지는 그다지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병원 전체 진료시스템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기술력은 물론 현장 구축 경험도 필수적이어서 향후 가장 성장성 높은 부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각종 검사기록을 디지털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임상 정보 시스템(LIS : Laboratory Information System), 원격진료를 가능케하는 텔레메디신, 환자의 진료기록을 휴대용 카드로 제작하는 스마트 진료카드 등의 분야도 점차 관심을 끌고 있다.

국내 시장 현황
의료정보화 관련업계는 의료정보화의 3대 축으로 여겨지는 OCS, PACS, EMR부문의 국내시장규모를 올해는 대략 3,000억원 정도, 내년에는 6,500억원 가량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급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는 국내 의료정보화 시장의 특징은 외국과 달리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점. 벤처기업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져 일부에서는 업계 공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한 지난 1월 의료기 업계의 거목인 메디슨이 부도를 맞아 쓰러진 이후 메디슨 관계사들의 자금 및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올들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로 메디슨 관계사들을 중심으로 연내 설립을 목표로 추진되던 ‘디지털병원’프로젝트도 전면 중단된 상태. 게다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시장 진출을 저울질하며 관망세를 유지하던 GE, 지멘스, 아그파 등의 해외 대기업들이 틈틈이 국내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국내업체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의료정보화 업계는 기술력 향상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에 주력하고 있으며, 기술 및 영업 차별화 전략으로 ‘생존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OCS분야는 비트컴퓨터, 우신정보기술, ICM 등의 업체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PACS 분야는 마로테크, 메디페이스 양강 체제하에 독특한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벤처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EMR은 메디다스와 인포메드가 중소형병원을 중심으로 시장확대에 나서고 있으며, 비트컴퓨터, 투윈정보시스템 등이 대형병원에 진출하고 있다.

한 업계관계자는 “보수적인 병원을 공략하기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대부분의 의료정보화 기업이 자체 영업망이 빈약한 벤처기업들이다 보니 수주에 의존하는 매출구조를 탈피하기도, 안정화하기도 어렵다”라며 “가격보다 기술력으로 입찰경쟁을 유도하는 병원 및 업계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보완해야 할 문제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표준화. 의료정보 디지털화의 최종 목표는 병원간, 병원과 환자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각 부문간 호환성은 필수조건. 특히 구축 초기부터 상호시스템간 연동 및 호환을 고려해야 시스템간 혼란을 방지하고, 추가비용의 낭비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의료정보화는 전세계적으로도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업계 전체가 수긍할 수 있는 기술표준 자체가 아직 미비하다. 호환성, 압축기술, 소프트웨어개발 소스 등과 관련된 의료기기 및 소프트웨어 개발 표준인 HL7, DICOM, IHE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기준들도 상당히 포괄적이며, 애매한 부분이 많아 논란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학계나 업계의 합의를 통한 표준화 보다 오히려 시장을 선점해나가는 업체들의 기술이 세계 표준화를 이끌고 있는 추세다. 특히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표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국내상황에서는 추후에 국민들의 의료건강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막대한 추가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의료보험수가를 기술력에 따라 차등적용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PACS의 경우 시스템을 설치하기만 하면 보험수가가 적용돼 병원측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저가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이는 결국 업계의 단가경쟁을 유발하게 돼 지속적인 투자를 어렵게 만들고, 국민건강으로 직결되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현재는 기술력을 검증할 전문인력과 제도적장치 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가야 할 길이 멀다. 김일출 경희대학교 교수는 “업계와 학계의 기술력 향상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개발투자에 따른 대가를 차등 적용해야 한다”며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기술력이 전제되야 하는 만큼 정부 및 병원들이 기술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동기유발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의료정보화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는 의료정보보호. 환자의 진료기록이 보험사, 취업 등에 악의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제 막 꽃을 피기 시작한 의료정보화 사업은 채 열매를 맺기도 전에 사그러들 가능성도 있다. 최근 업계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내외 인터넷 보안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관련 기술을 보완하고 있지만 시장이 확대되는 속도에 비해서는 상당히 뒤쳐져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서울경제 성장기업부 김민형기자 kmh20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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