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인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든 비싼 약물이었다. 처음에 제프는 약물중독 사실을 여자 친구에게 감추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을 알자 곧 그의 곁을 떠나 버렸다.
그는 사업에 점점 소홀해졌고 결국 파산했다. 마지막으로 친구도, 돈도 모두 떨어지자 누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금단 증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헤로인을 끊기가 두려웠어요.”
자포자기한 제프는 한 번 복용으로는 중독성이 없는 ‘이보게인’이라는 불법 마약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 약물은 금단증상 치유와 환각효과가 모두 있다. 이보게인을 맞은 뒤 30시간에 걸친 끔찍한 환영(幻影)은 아직까지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제프는 점차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들면서 헤로인을 했을 때 자기가 이중인격을 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좋은 사내와 친구들을 멀리하고 마약을 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돈을 끌어다 쓴 이기적인 사내가 공존했던 것이다. 이보게인을 통해 제프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이 약물 덕분에 내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로부터 빠져나오자 자신이 두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 변한 걸 느꼈다. 그 이후 제프는 헤로인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아직도 이보게인이 남긴 정신적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제프가 헤로인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탄포에 비유할 만한 화학물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은 약물중독에 대한 의료기관들의 접근방식이 얼마나 안이한지 잘 대변해 준다. 약물남용을 억제할 수 있는 약품이 몇 가지 있긴 하지만 치유방법은 가혹하다. 음주 억제제인 ‘앤터뷰즈(Antabuse)’는 체내에서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를 차단한다. 이 약을 복용하게 되면 증류주나 포도주, 맥주 뿐 아니라 구강청정제를 한 모금만 마셔도 혈류에 유독한 알콜의 부산물이 생성된다. 그 결과 구토, 두통, 호흡곤란, 가슴통증, 현기증이나 정신착란과 같은 불쾌한 증상들이 나타난다.
항진정제 웰뷰트린(Wellbutrin)의 명칭을 바꿔 만든 금연제 ‘자이반(Zyban)’도 직접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흡연자들은 잠재되어 있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하기 때문에 이것을 치유해 흡연욕구를 억제하는 게 이 약물의 치료 방식이다. 하지만 자이반은 입마름과 현기증, 무기력, 성욕감퇴와 같은 잠재적인 부작용이 있다. 항중독성 약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메타돈은 헤로인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일부 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약품이지만 메타돈은 다른 어떤 아편제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데다 저혈압, 구토, 불면증과 같은 고통스런 부작용도 있다.
반면 알콜중독과 아편중독 치료제인 ‘낼트렉손’은 기분을 좋게 느끼게 해 주는 뇌부분을 차단해 약효로 인한 황홀감을 방해함으로써 중독성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도 상당 부분 없애 버린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항중독성 약품들은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뉴욕 업톤 소재 브루클린 국립연구소 에너지부 과학자인 스테판 듀이는 “만약 즐거움을 빼앗아간다면 누구라도 그런 치료는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새로운 연구들이 진척되면 이런 원시적인 약품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과학자들은 기분전환용 약물들이 뇌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통해 사용자의 기분을 좋게 해 주어 끊기 어렵게 하는 지와 뇌에서의 정확한 중독위치에 관해 상당히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 일단 이와 같은 신경학상의 미스테리가 완전히 밝혀지면 과학자들은 크루즈 미사일 같이 표적이 되는 약물남용만을 치유하는 약품을 개발함으로써 일상생활의 즐거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약물사용 욕구만을 억제할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들의 개발이 성공하면 담배로부터 마약에 이르기까지 온갖 중독에 빠진 6천 50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된다. 국립약물남용연구소의 치료제 연구개발 부문의 책임자인 프랭크 보시는 “약물남용 문제는 늘 있었던 것”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약품들을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약물남용을 최소화 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분석한다.
이같은 야심찬 계획이 시작된 곳은 바로 브룩헤븐. 이곳에는 또다른 중독치유 연구프로그램들이 많이 진행 중인데, 예를 들면 존스 홉킨스와 에모리 대학을 비롯해 하버드와 펜실베니아 대학,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와 같은 기관들에서 코카인 남용 치유제만도 60종을 개발 중에 있다. 하지만 브룩헤븐에서는 12명의 과학자로 이루어진 한 팀이 연간 5백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받으며 첨단 조영술을 이용해 중독된 뇌의 구조를 지도로 작성하는 정교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사람이 즐거움을 느끼는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도파민’이라는 화학물이다.
도파민은 뇌세포들간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많은 신경전달물질들 중 하나. 이 화합물은 한 뇌세포에서 다른 뇌세포로 건너뛰는 방식으로 뇌 속을 돌아다닌다. 한 뇌세포에서 분비된 후 신경전달물질은 다음 세포의 특정한 수용체에 들러붙어야 계속 돌아다닐 수 있다. 도파민의 주요 역할은 흥분과 고통에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식사나 승진, 포커게임 승리, 또는 섹스와 같이 쾌감을 주는 것들로부터 얻게 되는 기쁨은 부분적으로 도파민에 의해 전달된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과학자들은 도파민의 어두운 측면을 발견했는데, 도파민이 뇌에서 약물중독을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정상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일정한 비율로 도파민이 분비되고, 이 중 극히 일부만이 특정 시점에 수용체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코카인과 같이 감정변화를 유발하는 약물의 영향을 받으면 뇌에서 즐거움을 유도하는 도파민이 대량으로 분비된다. 이렇게 많은 화학물질이 분비되면 뇌 속의 거의 모든 도파민 수용체들이 한꺼번에 활성화된다. 그 결과 약물 사용자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지만 뇌는 중압감을 느껴 일부 도파민 수용체를 닫아버려 이런 효과를 줄이려고 한다.
결국 약물효과가 점차 줄어들게 되면 약물 사용자의 뇌에 작동하는 수용체의 수가 적어져 기분이 약물복용 이전보다도 더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 해서 더 많은 약을 복용함으로써 약물 중독에 이르는 부정적인 악순환고리는 시작된다. 도파민 수용체들의 기능이 점차 중단되면 약물 사용자들은 환각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약을 먹어야 하고, 약효가 떨어지면 점점 더 큰 불행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코카인이 뇌에서의 도파민 수치를 대부분 조절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약물중독자는 정상적인 정도의 행복감을 느껴도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독자들이 약물복용을 끊을 경우 뇌 내의 도파민 수용체들은 자가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동물 뇌의 절개를 통해 과학자들은 도파민이 모든 습관성 약물에 비슷하게 반응함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1997년 브룩헤븐 생명과학 연구실 부소장인 노라 볼코프는 새로운 기술인 양전자방출 단층X선 사진법(PET)을 고안해 냄으로써 살아있는 사람의 중독과정을 보여 주었다. 최초로 단층X선 사진촬영법은 실시간으로 뇌를 관찰하는 비침투식 방법이다. 볼코프는 이 방법과 구두 인터뷰를 통해 17명의 코카인 장기복용자를 연구한 결과 뇌에서 관여하는 도파민 수용체가 증가할수록 약물복용자의 행복감도 증가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NIDA의 로이 와이즈는 “볼코프는 우리가 지적하는 반응체계를 잘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촬영해 본 후 우리가 답하지 못했던 물음들에 대답을 해 준다”고 말한다.
볼코프의 동료인 스테판 듀이는 이 연구 결과들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비가배트린’이라는 간질 치료제가 부분적으로 뇌 내의 도파민 양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알고 있던 듀이는 이 치료제가 코카인 중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비가배트린을 한 무리의 비비(baboon)들 중 절반에게 주사한 다음, 전체 비비들의 코카인 주사 전후 뇌 스캔 사진을 조사해 보았다. 비가배트린을 주사한 비비들에게서는 뇌 내의 도파민 활동량이 증가하지 않은 반면, 간질약을 주사하지 않은 비비들에게서는 수용체에 들러붙은 도파민의 수치가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물론 듀이는 비가배트린을 코카인 사용자들에게 적용할 경우 도파민 활동량이 증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 약품의 제조사는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가배트린 실험연구 착수를 놓고 협상 중이다.
듀이는 연구 결과 우연히 자극반응이라는 흥미있는 현상을 밝혀냈는데, 이것은 스카치잔에 얼음이 딸랑 떨어진다든가 거울에 면도날이 긁히는 것과 같은 친숙한 광경이나 소리에 의해 음주나 약물복용 욕구가 유발되는 현상이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반응들이 근본적으로 행위상의 습관에 의해 유발된다고 과학자들은 믿어 왔다. 그래서 회복중인 중독자들은 약물중독 습관의 발단이 된 오래된 이웃 친구들과 다시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발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듀이는 비가배트린을 주입한 코카인 중독 쥐들의 연구를 통해 자극반응의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간질약을 주입하기 전에 쥐들은 우리 안에서 습관적으로 코카인이 놓여 있는 쪽으로 몰려가곤 했다. 그런데 비가배트린을 주입하자 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코카인이 있던 지점을 거의 의식하지 않았다.
미 고등과학협회장인 알랜 레쉬너는 “이 연구는 육체의 기능과 뇌의 기능이 별개라는 기존의 견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았다”며 “정신과 육체가 별개라는 견해는 사라지고 이젠 모든 중독이 뇌와 관련한 질병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룩헤븐의 과학자들은 카운셀링과 행동교정이 중독을 치유하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하지만 생화학적으로 바꾸는 치료법이 핵심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볼코프는 “특정 부위의 단백질을 바꾸면 바람둥이 남편도 착실하게 변한다”고 농담섞어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약물중독에 빠지기 쉬운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생리적인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도파민 수용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코프는 믿고 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도파민 수용체가 적든지 어두운 삶의 경험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용체들이 소실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두 번이나 희생을 치르게 된다. 도파민 수용체의 부족으로 인해 중독에 빠지기 쉽고, 일단 중독에 빠지면 더 많은 수용체들의 기능이 정지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작년 말 완료된 한 연구의 PET 스캔결과에 따르면 각성제 중독으로부터 회복중인 환자 15명이 약물복용 경험이 없는 다른 20명의 사람들에 비해 도파민 수용체가 10~16%가 적었다. 알콜중독과 코카인, 헤로인 사용자 대상의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생리학적 결함때문이라고 볼코프는 믿고 있다. 볼코프는 “수용체가 적은 경우 어쩔 수 없이 약물이 중요해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최근 발표된 브룩헤븐 연구에 따르면 중독자들의 쇠약해진 도파민 체계는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뇌 부위인 전두피질에서의 신진대사 활동둔화와 항상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발견에 내포된 함축적 의미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두피질이 뇌의 중독에 있어 핵심부라고 추측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브룩클린의 과학자들은 뇌 속에 있는 수십만 개의 수용체들 가운데 특정 중독만을 억제하는 약품이 표적으로 삼는 ‘건초더미에 묻힌 수용체들’의 위치를 밝혀내게 될 것이다.
약물중독과 관련해 모종의 인과논리는 전두피질에 있다. 이 부위는 강박관념과 충동적인 행위를 관장하기도 하는데, 대개의 경우 일반 사람들보다는 약물중독자들이 강박관념이 심하다. 볼코프는 다음으로 약물중독이나 ‘강박관념-충동성’ 질병이 도파민계의 기능장애로 인해 건강한 생존본능이 변형된 것에 불과한 것인지를 규명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꼬인 머리카락들을 하나씩 모두 풀어낸다든가 종이조각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주워 모으려고 하는 통제 불가능한 욕구가 도파민 문제 때문인가 하는 것이다. 볼코프는 “첫아기를 낳은 엄마들은 아기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지만 이는 긍정적인 생존 본능”이라며 “자제가 안되는 도박, 식욕이나 약물남용도 이와 같은 본능에서 비롯되지만 이들은 파괴적인 것이 특징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없애지 않으면서 끔찍한 부작용도 없이 안전하게 약물중독을 치유할 수 있는 최적의 약품을 만들어 낼 때까지 중독자들은 다른 방법을 택할 것이다. 1960년대 초 헤로인에 중독된 채 또다른 약물을 찾고 있던 호워드 랏소프는 플로리다의 사업가 제프가 복용했던 약물 이보게인을 찾아냈는데, 이 약물은 서아프리카의 한 관목에서 추출되는 것이었다. 이 약물을 한 번 복용한 후 헤로인에 대한 욕구가 가라앉자 랏소프는 동료 사용자들에게 알렸다. 10년 전 마이애미 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데보라 메쉬와 동료 연구자들은 처음으로 이 약물 사용을 주창했다.
이보게인은 그 작용방식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이 약품은 도파민 분비를 억제하고 전율할 정도로 왕성한 뇌세포 활동을 통해 마약으로 찌든 몸을 정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의 다른 중독 치료제들과 마찬가지로 이보게인에도 끔찍한 결함이 있다. 전문가의 지시 없이 이를 복용한 후 현재까지 최소한 두 명이 사망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브룩헤븐 같은 곳에서 다급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과학자들은 아주 간단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복잡한 생화학 문제를 풀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지상에서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습관을 끊으려다 세상을 등지는 일이 없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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