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과학기술자상 3월 수상자
한국과학재단(이사장 김정덕)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최하고 과학기술부와 한국방송공사(KBS)가 공동 주최하는「이달의 과학기술자상」(제60회)시상식이 지난달 20일 과학기술부에서 채영복 과학기술부 장관과 김정덕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서울경제신문 김서웅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제60회 수상자는 빛이 식물생장호르몬의 일종인 브라시노스테로이드(BR) 호르몬의 합성을 조절함으로써 식물 생장 활동의 하나인 황화현상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힌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 박충모(朴忠模·45)연구원이 선정됐다. 박 연구원에게는 과학기술부 장관상과 상패, 그리고 1천만원의 상금이 전달됐다.
빛의 식물생장 조절기능 첫 규명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 박충모 연구팀은 빛이 생장호르몬을 통해 식물생장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식물의 생장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장호르몬과 같은 생장조절물질에 의해 조절되지만 다양한 외부 환경변화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식물은 동물과 달리 이동 할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장소에서 외부환경변화에 더욱 정교하게 적응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게 된다.
식물은 동물의 시각단백질인 로돕신과 구조와 기능이 유사하지만 더욱 정교하고 다양한 광 수용체 단백질인 파이토크롬, 크립토크롬, 포토트로핀 등을 가지고 있다. 빛은 신호전달물질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식물 광 형태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한다.
박 박사 연구팀은 완두에서 분리한 신호전달단백질인 Pra2가 빛이 적은 상태에서 크게 늘어나 DDWF1이라고 불리는 브라시노스테로이드(BR) 생장호르몬 합성효소의 활성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식물의 길이를 자라게 하는 생장호르몬인 BR호르몬이 식물 하배축(뿌리와 떡잎 사이 부위) 길이만을 생장시켜 황화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그동안 Pra2와 BR호르몬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이들이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황화현상을 일으킨다는 원리는 처음 발견됐다.
이번에 규명된 식물생장조절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원리는 아직 연구기반이 취약한 국내식물학 연구분야에서 순수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향후 국내 식물학 발전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 평가를 받고 있다.
취약한 국내 식물학계 수준 높이는 계기마련
연구팀은 BR호르몬 합성효소를 추출, DDWF1으로 명명했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Pra2와 DDWF1이 만나면 그 기능이 수십 배 이상 강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상의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빛 환경에 따라 Pra2 신호전달단백질이 DDWF1의 활성을 조절해서 BR 호르몬 합성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일종의 광반응성 분자적 스위치(molecular switch)임을 알수 있다. 즉, 빛⇒ Pra2⇒ DDWF1⇒ BR호르몬 합성⇒ 하배축 세포의 길이 신장으로 이어지는 신호전달 과정이 식물 황화현상을 조절하는 분자적 메커니즘을 나타낸다.
이번 연구에서는 광반응성을 보이는 Pra2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Pra2는 암실에서 기른 어린묘목의 하배축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또 이 부위는 파이토그롬 광수용체와 BR호르몬 함량이 가장 높은 부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Pra2가 빛이 적은 상태에서 하배축의 길이 성장, 즉 황화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Pra2와 DDWF1의 합성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빛이 없는 땅속에서 씨앗이 발아한후 어린묘목의 하배축에서 두 단백질이 늘어나게 된다. Pra2는 DDWF1 효소의 활성을 촉진시키며 그 결과 BR호르몬 합성이 증가한다. BR호르몬의 작용으로 하배축 세포의 길이가 신장됨에 따라 하배축만 길게 자라는 황화현상이 발생한다.
어린묘목이 계속 자라서 지상으로 나와 빛을 받게 되면 Pra2와 DDWF1의 발현이 억제되고 그 결과 BR호르몬 합성이 감소하기 때문에 하배축 성장이 멈추고 엽록소 합성이 촉진됨으로써 탈황화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묘목은 줄기가 굵어지고 잎이 자라면서 정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연구에서 정립된 Pra2-BR 생장호르몬 상호작용에 의한 식물생장 조절 원리는 식물 유전공학적인 면에서 응용이 가능한데 이 광신호전달 경로상의 신호전달체 및 그들간의 신호전달 원리를 이용하면 농작물의 음지회피성을 적정한 수준으로 조작 할 수 있게 된다. 즉 밀집재배가 필수적인 작물의 음지회피성을 감소시키면 키가 줄고 길이생장에 쓰이는 영양분이 잎이나 열매 등의 다른 부위 생장에 쓰여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또 식물이 전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기 때문에 병해충이나 바람 등의 외부환경에 대한 저항력이 증진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가 응용될 것으로 보이는 작물은 벼, 인삼, 잔디 등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반이 취약한 국내 식물학계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박 박사는 미국, 일본, 유럽 등에 이미 특허를 출원했다. 박 박사는 “유전자를 조작해서 뿌리ㆍ잎ㆍ열매 등 식물의 유용한 부위를 원하는 대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작물에 응용하는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며“빠르면 2~3년 후에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학으로 전공 바꾼 후 많은 업적 이뤄
박충모 박사는 서울대와 대학원에서 생물교육학을 전공한 후 교직에 6년 동안 몸담았다.
33살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박 박사는 94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식물에 기생한 곰팡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박사학위 취득 후 버팔로 암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96년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에 입사했다. 그러나 박 박사는 연구소에 들어가면서 분자생물학이 아닌 식물학으로 자신의 전공을 바꾸는 모험을 단행했다. 당시 연구소가 식물학 전공자를 찾고 있어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던 박 박사가 어쩔 수 없이 전공을 바꾸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 박사는 “전공을 바꿨을 때 모험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잘 됐다”며 “미생물학을 연구했던 경험이 식물학 연구에 많이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국제 생명공학 개발경쟁이 우리나라가 파고 들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식물”이라며 “우리나라는 식물연구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됐으나 최근 들어 이 격차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광생물공학팀 연구원 10명을 이끌고 있는 그는 “동물분야는 선진국이 기술력을 선점하고 있고 연구비나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며 “식물분야는 식물이 생산해내는 2차 대사 산물이 수없이 많고 그 중에서 유용한 물질도 많기 때문에 우리 기술력으로 접근할만한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한수진기자 <popsc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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