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기술자인 25살의 데릴 폴리카가 5kW짜리 연료전지 시제품을 들고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 있는 누베라 연료전지 연구소 앞에 서 있다. 이 연료전지는 4인 가족에게 필요한 전기량의 대부분을 공급할 수 있는 ‘초소형 발전소’다. 금속표면을 제거한 탓에 150cm 길이의 정육각형 연료전지는 포장된 탱크와 밸브 그리고 전자부품으로 가득 찬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연료전지 표면 한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노키아 휴대폰이 눈에 띄었다. 폴리카는 “이것이 저희들의 마스코트지요.”라며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는 마치 전체 공장을 모두 껴안을 듯이 팔을 활짝 펴면서 “저희는 이 발전소 만한 크기의 공장을 바로 이 휴대폰 크기로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성능은 강하면서 좀더 작고 저렴한 크기의 연료전지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누베라 연구소의 운영책임자인 25세의 젊은 제프 벤틀리는 “연료전지의 개발까지는 아직 많은 난관들이 남아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연료전지를 연구하고 있는 폴리카와 벤틀리는 연료전지 개발에 대한 자신감에 차있으며 여러 면에서 이들의 연구기록은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2001년은 가정용 연료전지 분야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는 가정용 연료전지를 외면해왔다. 지난 90년대 말, 일부 연료전지 제조사들은 연료전지의 가격을 5,000달로 정도로 낮추겠다는 획기적인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정도의 가격이면 연료전지는 일반 가정에 필요한 전기량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감당할 수 있다. 연료전지의 가격인하가 내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간단한 화학반응에 의존해 공해가 전혀 없는 수소가스로부터 전기를 얻는 국가를 상상해 보자. 물과 소량의 이산화탄소만이 배출되어 에너지 고갈과 공해에 대한 염려가 없기 때문에 국가의 최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제조사들은 말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가정용 연료전지 제조사들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H 파워와 플러그 파워, 전기파워 연구소에서는 이 기술이 에너지공급의 실질적 원천이 될 수 있음을 홍보하기 위해 일부 가정에 연료전지 시제품의 설치를 약속했었으나 플러그 파워사만이 약속을 지켰을 뿐이다. 지난 98년에도 뉴욕의 연료전지 제조사인 레텀이 5kW짜리 시제품을 가정집에 설치했었으며 <뉴욕타임즈>는 이를 두고 연료전지의 “획기적인 기술이 낳은 결과”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플러그 파워사의 경우, 연료전지의 가격을 낮출 수 없었기 때문에 2년후 이 프로젝트를 조용히 덮어버렸다.
제조사들의 홍보와 성의부족으로 일반 사람들은 연료전지를 유리 혹은 플라스틱 위에서 햇볕을 받아 전기를 생산하는 광(光)전지와 혼돈 하는 경우가 많다. 광전지는 수 십 년 동안 환경 친화적인 전기문제 해결책이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아왔지만 여전히 가정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며 비용이 많이 드는 기술이다. 반면, 연료전지는 광전지보다 나은 장점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초기의 소규모 투자에 이어 일부 기업들은 연료전지 연구에 연간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실제로 가스테크놀러지사의 연구개발 담당 부사장인 로버트 스토크스는 “연료전지 개발에 투입된 개발자금은 지금까지 광전지나 기타 재생 가능한 에너지개발에 투입된 자금과 맞먹을 정도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투자에 힘입어 연료전지 제조사들은 연료전지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관련업체들은 미국산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연료전지 기술이 장차 해외 원유도입에 대한 부담을 덜어줄 것이며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연료전지사용으로 발생하는 뜨거운 물을 이용해 난방을 함으로써 난방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다. 연료전지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자들은 심지어 연료전지에서 발생하는 여분의 전력을 다시 지역발전소에 재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사항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비용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어떠한 제조사도 5kW짜리 연료전지의 가격을 3만 달러(kW당 6,000달러)이하로 낮추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장보고서들은 연료전지의 가격을 현행 6kW당 1,400달러정도 되는 가정용 가솔린 발전기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비용대비 편의와 연료전지의 집약적인 에너지 추출기술 수준을 고려하더라도 연료전지의 가격을 1kW당 1,000달러수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저렴한 가격 대는 7∼10년 내에 실현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료전지는 전기료가 비싼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처럼 1kW당 9∼10센트 정도인 지역에서만 경제적인 대안으로 인정받을 것이 확실하다.
연료전지의 가격을 낮추는데 있어 해결해야 할 점은 전기를 생산하는 ‘스택’과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변환기’. 두 장치 모두 화학반응의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백금을 촉매로 사용하는데 이 백금은 작년 대비 29g당 400∼500달러에 달하는 등 가격이 높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에서 수입해야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미 지난 5년 동안 제조사들은 주로 스택에 필요한 백금을 줄이고 얇은 백금에 값싼 금속을 합금 하는 방법으로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백금의 양을 8분의 1수준으로 줄여왔다. 하지만 연료전지의 가격을 내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기술의 발전이 절실하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현재 변환기내 백금의 양을 더욱 줄이기 위해 연구중이다.
연료전지의 가격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만 연료전지의 경제적 이점을 전문적으로 다루어 온 캘리포니아 퍼시픽 펠리세이즈 컨설팅회사의 CEO인 피터 보스는 “많은 사람들이 연료전지에 대해 잘못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료전지의 신봉자인 보스는 전통적인 가격산정이 ‘생산 학습 곡선’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생산 학습 곡선’은 잠재적인 시장에서 최초 1%의 시장 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수 년 간의 연구와 자금이 들어가지만 이후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고 가격이 급격히 감소할 때는 초기에 기울인 노력으로 습득한 교훈(학습)이 보다 효율적인 생산 파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근거로 보스는 연료전지의 가격 변화가 VCR과 에어컨, 난방기구의 가격변화와 거의 똑같이 일치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보스는 2006∼2010년 사이 5kW 연료전지의 가격이 7,000달러 수준이 되면 미국 전체 가정의 1%가 연료전지를 쓰고 이후 몇 년이 지나 연료전지의 가격이 1,200달러로 떨어지면 미국 가정의 절반이 연료전지를 사용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보스는 향후 29년 이후를 더욱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2031년이 되면 미국 내 가정의 99%가 기존의 전력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가격문제에 비해 연료전지의 크기도 문제다. 가정에서 연료전지를 사용하려면 5kW자리 연료전지 시스템을 최소한 소형 냉장고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모델은 휴대 전화기만큼은 아니지만 몇 년 전의 크기에 비하면 6분의 1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연료전지 부피가 지나치게 큰 이유는 대부분 변환기와 펌프, 파이프, 전자 부품들 때문이다. 효율적인 설계를 통해 부품의 크기를 줄이는 일은 가능하지만 변환기의 경우는 조금 어려울 수 있다. 변환기는 다양한 화학반응으로 발생하는 열을 관리하는 중요한 열 교환기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열 교환기의 크기를 소형화하는데는 아직 한계가 있다. 누베라사의 벤틀리는 열 교환기의 크기를 줄이는 기술을 두고 “현재의 자동차 라디에이터를 10분의 1로 줄이는 하이테크 기술”이라고 비교하고 있다.
내구성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중 하나다. 연료전지 변환기는 수소와 함께 미량의 일산화탄소를 생성하는데 벤틀리에 따르면 일산화탄소가 마치 하얀 목화에 잉크 얼룩을 남기듯이 백금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4∼5년마다 전체 시스템 가격의 10∼15% 정도의 막대한 비용을 들여 스택을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사실 10년에 한 번 스택을 교체함으로써 가정용 연료전지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10년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닐 수 있으므로 연료전지로 인해 지역발전소가 문을 닫게 된다는 생각은 다소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지역 전력회사나 에너지회사가 연료전지를 보유함으로써 가정용 연료전지를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각 가정에서는 매월 요금을 지불하고 대신 회사에서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는 비영리 에너지 연구 컨소시엄인 일렉트릭 파워리서치 인스티튜트의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분야 관리자인 댄 래슬러는 이러한 연료전지의 미래에 대해 “연료전지를 기본으로 하는 전력 시스템이 널리 확장되어 기존의 전력사업을 확실하게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부 전력회사는 가정에 직접 연료전지를 도입하지 않고 지역마다 공급거점을 두어 전력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롱아일랜드 전력 관계 기관에서는 이런 구상을 시험하기 위해 최근 뉴욕 웨스트 바빌론의 일부 현장에서 75.5kW 플러그 전력 유닛을 가동시킨 바 있다. 이 플러그 전력 유닛은 실험 표본 크기의 100가구를 관리하기 위해 전력 공급 망에 필요한 전력을 추가하는데 성공했다.
NASA의 우주선에 40여 년 동안 전력을 공급해왔던 연료전지는 이제 수많은 병원과 폐수처리 공장, 군사기지 시설에서 비상전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3메가와트 짜리 연료전지를 포함해 연료전지 제조사들의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 연료전지 개발연구를 최근 시작한 기업들은 3M과 듀퐁, 제너럴 모터스, 유나이티드 테크놀러지 등 거대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연료전지가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전세계적인 에너지 공급의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 가격을 급등하게 만드는 환경재난이나 지리적·정치적 위기 또한 변수다. 따라서 연료전지는 비교적 대안적인 경제적 해결책으로 환영받을 만하다. 누베라사의 벤틀리는 “문제는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품질 및 환경 수준이며 연료전지는 이 세 개의 사항에 모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료전지에 대한 설문
지난 12월 파퓰러 사이언스 웹사이트(www.popsci.com)는 가정용 연료전지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바 있다. 다음은 설문에 응한 1,660명의 대답을 정리한 것이다.
49% 의 응답자들이 모든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연료전지를 5,000달러에 구입하겠다고 대답했으며 29%의 사람들이 연료전지의 최고가격이 3,000달러라고 내다보았다. 20%는 1만 달러라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36% 의 응답자들은 신뢰성문제 때문에 연료전지의 도입을 꺼린다고 밝혔다.
14%의 응답자들은 연료전지가 가정에서 최초로 사용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60%는 자동차, 24%는 소비자용 전자제품에 사용될 것이라고 각각 대답했다.
26%의 응답자들은 2050년이면 전력회사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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