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 상태의 시료를 자장안에 넣고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라디오파를 가해주면 공명현상이 일어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다. 에너지를 흡수한 시료는 평형상태로 돌아가면서 일정 신호를 나타내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핵자기공명 스펙트럼이 발생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옥희 박사는 고체 핵자기 공명을 이용한 새로운 치환원소 위치측정법을 개발하고 이를 사용해 알루미늄 원자를 직접 관찰하고 확인했다.
이로써 산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흰색 파우더형태의 제올라이트 중의 하나인 ZSM-5를 합성할 때 알루미늄과 규소의 조성비에 따라 알루미늄이 규소를 치환하는 위치가 무작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일정한 선택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즉 한 박사는 알루미늄과 규소가 무작위적으로 분포하는 것이 아니고 선호도를 가짐으로써 알루미늄과 규소의 혼합비율이 바뀌면 선호도도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오랫동안 제올라이트 연구자들이 궁금해왔던 알루미늄 원자의 제올라이트 골격내 분포 특성을 명확하게 규명했으며 알루미늄 이외에 다른 원소를 치환 또는 첨가했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분석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새로운 산업용물질 개발 길 열어
나노미터 크기보다도 작은 극미 세공을 내부에 무수히 갖고 있는 다공성 결정물질인 제올라이트는 이온교환제, 분리제, 촉매제 등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나노구조체다. 제올라이트의 중요 성질은 그 골격을 이루고 있는 알루미늄 원자의 양에 의해 결정되지만 골격내 존재하는 알루미늄의 양이 같더라도 알루미늄 원자의 분포가 다르면 제올라이트가 나타내는 물리화학적, 촉매적 특성이 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원하는 용도에 따라 이들 물질의 물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기존 물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성을 갖는 제올라이트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제올라이트인 ZSM-5에서 규소와 알루미늄이 치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위치를 규명하지 못했었다. 기존 방법으로는 규소와 알루미늄의 산란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두가지 원소를 구별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구별이 쉬운 원소라도 3차원적 규칙성을 갖지 못하고 불규칙적으로 일부 치환 또는 미량 첨가된 원소의 위치를 구하기는 힘들었다. 한 박사는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기법을 이용해 이를 해결했다.
한 박사는 전산모사를 통한 새로운 해석방법에 따라 ZSM-5의 12개 알루미늄 자리의 위치와 상대적 크기를 계산해 비교함으로써 알루미늄의 위치 분포에 대한 정보를 구했다. 이번에 개발된 치환 원소 위치 측정법은 제올라이트, 메조포러스물질 등의 다공성 물질뿐 아니라, 반도체, 고온초전도체, 인광재료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신소재들의 치환물 또는 첨가물의 분포 분석에도 응용될 수 있는 원천기반요소기술로 신소재의 개발과 품질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도 뛰어난 여성과학자 많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첫번째 여성수상자인 한옥희박사는 어린시절부터 과학자를 꿈꿔왔으며 화학이 좋아서 화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한 박사는 현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소 대구분소에서 고체시료분석팀을 이끌고 있다. 대구분소는 국내에 1대뿐인 600Hz 핵자기공명기를 갖춘 국내 최고수준의 고체시료분석기관이다.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어서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들어왔다는 한 박사는 고가장비를 갖추고 대학, 출연연구소, 기업체연구소, 중소기업 등의 연구를 지원하는 연구원의 업무가 자신의 성격에 맞는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여성과학자들이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한 박사는 “국내에도 뛰어난 여성과학자는 많다”며 “그러나 여성과학자들은 개인플레이를 위주로 해서 조직에서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다 보니 프로젝트 따기, 학회활동 등에 소극적이어서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 박사는“국내에서는 분석업무는 과학으로 보지 않고 단순기술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신소재를 개발했어도 성분 분석이 제대로 돼야 실효성을 인정받게 된다”며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심사위원들은 한옥희 박사가 고체 핵자기 공명을 이용해 격자구조내에 치환돼 들어간 원소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수진기자<popsci@sedail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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