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은 기술 발전과 함께 등장하고 진화해왔다. 19세기 말 언론과 사진 기술의 확산 속에서 프라이버시는 ‘혼자 있을 권리’로 처음 정의됐다. 이는 개인의 삶이 무단으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소극적 방어였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세상을 연결하면서 프라이버시는 공간의 문제를 넘어 나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쓰일지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확장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개인정보 보호 제도다. 프라이버시가 가치이자 권리라면 개인정보 보호는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우리는 그동안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제공을 규율하는 틀 안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반 행정이 확산되는 시대에 이러한 보호 방식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날의 위험은 개인정보 유출에 국한되지 않는다. 데이터의 결합과 추론, 자동화된 결정과 예측 행정은 개인이 제공하지 않은 정보까지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개인의 권리와 기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간 개인정보 규율 체계에서 주로 다뤘던 개인정보 처리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는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식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관점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공공 부문에서 특히 중요하다. 공공기관은 국민의 삶 전반을 포괄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행정 서비스와 정책 집행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민은 공공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거부하기 어렵다. 공공 분야 AI 전환(AX) 과정에서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신뢰와 민주적 통제의 문제인 이유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시스템에 내재된 채 반복되고 확산된다. 사후에 제재하더라도 이미 이뤄진 자동화된 판단과 그 영향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사후 제재보다 사전 설계와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특히 공공과 사회의 AX 과정에서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도 안전하게 데이터를 활용하는 구조가 설계되도록 힘써야 한다.
올해부터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행정·복지 등 공공이 보유한 양질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이슈가 사전에 해소될 수 있도록 ‘공공 AX 혁신지원 헬프데스크’를 운영한다. 각 부처가 AX 기획 단계부터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법적·기술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프라이버시가 고려된 설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공공 AX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공 AX를 뒷받침하는 개인정보 보호 체계도 공고히 한다. 각 기관에서 인력·예산·시스템에 대한 실질적 투자가 이뤄지도록 유인 구조를 마련하고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주요 공공 시스템을 대상으로 침해 가능성을 상시 점검한다. 실제 시스템 관리 수준과 공공기관 개인정보 보호 수준 평가도 연계해 제도를 내실화할 계획이다.
AI 시대의 프라이버시는 선언이나 법 조문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설계와 운영, 책임과 설명의 구조 속에서 구현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기술 발전의 과정에서 프라이버시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신뢰받는 공공 AX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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