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케어텍(099750)은 국내 병원정보시스템(HIS) 분야의 압도적 1위 기업이다. HIS는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진료·처방·간호뿐 아니라 행정·재무 등 병원 운영 전반을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하는 시스템이다.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한 핵심 정보기술(IT) 플랫폼으로 꼽힌다. HIS가 멈추면 병원 전체가 멈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지케어텍은 2001년 서울대병원 전산팀에서 스핀오프(분사)해 20여 년간 이 분야 톱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중소형 병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에까지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국립대병원 12곳 중 8곳이 이지케어텍의 HIS를 쓰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장성과 수익성은 압도적이지 않다. 매출은 창립 이래 연간 1000억 원을 넘어선 적이 없고 영업이익률(OPM)도 2024년 3.0%에 그쳤다. 한 분야 1위 기업의 성적표로는 초라한 상황이다. 특히 상장사인데도 증권사들이 기업가치를 분석하는 리포트가 아예 없을 정도로 증시에서 주목을 못 받는 부분은 뼈아프다.
홍우선 이지케어텍 대표는 이 같은 한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2024년 11월 최고경영자(CEO)로 투입됐다. 그동안 서울대병원 출신 의료인을 대표로 기용해오던 관례에서 벗어나 회사 창립 이래 첫 비(非)의료인 출신 CEO다. 실제 홍 대표는 KIS채권평가(현 KIS자산평가), NICE정보통신, 코스콤 등에서 20년 이상 대표를 역임한 베테랑 경영인이지만 의료 분야의 경험은 전무하다. 그의 이지케어텍 대표 취임은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신호탄인 셈이다.
홍 대표는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지케어텍 CEO로서의 경영철학에 대해 “업계 1등 기업이 그에 걸맞은 실적을 내지 못하고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일류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고객으로부터 일류 서비스에 돈을 더 내겠다는 의사를 이끌어내야만 성장과 수익성 모두 향상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신년사에서도 ‘일등이 아닌 일류가 되자’를 제목으로 잡아 임직원들에게 변신을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간 성과는 어땠을까. 홍 대표의 눈높이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확실한 진전을 이뤘다. 이지케어텍은 3월 결산법인으로 지난해 상반기(4월~9월 말) 매출액은 33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가량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2억 4000만 원으로 20% 가까이 늘었다. 외형을 확대하기보다 내실을 꾀한 경영이 성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IR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로는 매출은 761억 원으로 전년 대비 4.8%, 영업이익은 45억 원으로 10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률은 6.0%로 전년 대비 2배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 대표는 “취임한 순간 남은 임기가 3년뿐이라 시간이 없다고 항상 느낀다”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좋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수익성 개선 경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첫 비의료인 출신으로 이지케어텍의 사령탑을 맡은 그는 어떻게 경영 관행을 혁신했을까. 지난 1년간 그가 집중한 것은 제값 받기와 해외시장 진출이다. 홍 대표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장에 관행으로 굳어 있던 ‘덤핑 수주’를 중단하고 제값 받기에 나섰다. 또 외주 영업 마케팅 인력을 줄이고 기관마다 계약 규모에 비해 기능을 과도하게 많이 추가하거나 고급 옵션을 탑재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뿌리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형 병원의 HIS 수주전을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한 강원권 대학병원과는 계약 조건을 두고 끈질긴 밀고 당기기를 벌인 끝에 예상보다 3개월 늦게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매출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수익성을 높이려는 선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병원 8곳의 의료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연계하는 차세대국립병원정보시스템(MEDIRO) 사업을 수주해 지난해 11월 대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데이터 이관을 마쳤다. 기존 HIS보다 진화한 시스템 공급에 성공한 것이다. 홍 대표는 “업계 1등 기업도 수익을 내기 힘들 정도로 기술력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했던 시장”이라며 “저가 수주보다 제대로 된 값을 받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는 데 영업·판매·마케팅의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레드오션이 돼버린 기존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도 펼쳤다. 우선 ‘의정 갈등’ 속에 급속히 성장한 500병상 안팎의 중대형 병원과 전문병원을 공략하기 위한 맞춤형 HIS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단순화돼 있던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고객층 확대에 나선 것이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는 “이지케어텍의 HIS를 쓰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던 중소형 병원들도 맞춤형 버전을 보여주니 만족해 했다”며 “지금은 상품의 모듈화를 통해 병원 규모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새로운 시장으로 꼽은 곳은 바로 해외다. 특히 중동 지역에 공을 들였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IMARC에 따르면 중동 지역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4년 218억 달러에서 급속한 고령화 속에 연평균 7.13% 성장해 2033년 40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중동 국가 기업인이나 관료들은 영미권 유학 경험 등이 많아 의료 서비스에 대한 눈높이가 높다”며 “우리나라 업체들이 높은 가격 대비 성능을 바탕으로 먼저 중동 시장에 깃발을 꽂으면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지케어텍은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헬스케어 박람회 ‘GHE 2025’에 처음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다른 의료 IT 업체 11곳과 ‘K헬스케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헬스케어 자회사인 린비즈니스서비스, 사우디보건과학대(KSAU-HS)와 각각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홍 대표는 “현재 사우디 병원 13곳과 HIS 설치를 논의하고 있어 최대 7곳까지 고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중동 매출이 앞으로 매년 2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침체돼 있던 조직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신경을 썼다. 그는 지난해 신년사에는 ‘체인지 더 비즈니스’를 강조했다. 취임 첫해를 도약을 위해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만든 시기로 규정했던 것이다.
홍 대표는 “비즈니스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직 내 본부를 많이 축소시키고 임원도 상당 부분 바꿨다”며 “조직평가·성과평가도 실시하며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우수한 직원들이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도록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내부 복지를 개선하고 주 1회 직원들과 티타임도 열어 소통의 자리도 마련했다.
비의료인 출신인 홍 대표가 지향하는 이지케어텍의 미래는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헬스케어 플랫폼’으로의 진화다. 미국식 전자건강기록(EHR)이 응급의료(ER) 등 분야마다 시스템이 따로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HIS는 병원의 모든 일을 한곳에서 커버하는 ‘올인원 플랫폼’이라는 강점이 있다. 플랫폼에 다양한 기능을 탑재함으로써 ‘이지케어텍 HIS만 쓰면 여러 가지 좋은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게 그의 의도다. 이를 개별 의료기관마다 자체 서버와 소프트웨어(SW)를 구축해 운영하는 방식에서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한 다음 AI를 적용하면 모든 의료데이터와 기술들을 한곳에서 연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 대표는 이 같은 체질 전환을 여러 기업들과 함께 해나갈 생각이다. “의료 AI만 해도 수많은 스타트업, 중소·중견 기업 제품을 이지케어텍 플랫폼에 얹어 판매하면 그만큼 영업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소개는 우리가 하면 됩니다. 우리도 1등이 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분야의 1등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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