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정부 전망보다 0.1%포인트 낮게 제시한 것은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과 인공지능(AI) 투자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변수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들 산업이 단기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으나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한국 경제가 받는 충격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IMF가 통상 재정 당국과 중앙은행의 전망을 참고해 성장률을 산정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보다 우리 경제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IMF가 19일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재정경제부의 전망치(2%)보다 낮은 1.9%로 제시한 데 대해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과 반도체 가격 상승이 단기 성장 지표를 끌어올리고 있다”면서도 “AI 경기 사이클이 꺾일 경우 이를 대신할 완충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반영해 다소 보수적으로 예상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IMF는 세계경제의 주요 하방 위험 요인으로 △여전히 높은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 △주요국의 누적된 부채 부담 △AI 생산성 개선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자산 가격 조정 가능성 등을 지목했다. 반도체와 AI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 역시 이러한 위험 요인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다.
주요 지표를 보면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10%에서 2025년 24.4%까지 확대됐다. 수출 구조가 특정 첨단산업에 집중되면서 경기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함께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 역시 반도체 경기 사이클을 성장의 핵심 변수로 꼽으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을 1.8%로 전망했지만 반도체 경기를 제외할 경우 1.4%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올해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경기 흐름에 좌우되는 구조임을 시사한다.
한은은 반도체 수출 회복이 지연될 경우를 가정한 하방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수정경제전망에서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경우 올해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1.8%)보다 0.1%포인트 낮은 1.7%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AI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다는 평가 속에 반도체 수요가 올 하반기부터 둔화되고 내년에는 정체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여기에 고환율 장기화 역시 한국 경제의 구조적 하방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수출이 비교적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물가 압력이 커지고 이는 다시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는데 이 경우 수입물가를 자극해 물가 부담이 커지고 내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환율에 따른 금융 안정 우려, 성장률이 방어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한은의 금리 동결이 장기화될 경우 내수 하강 위험을 금리정책으로 막지 못하는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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