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의 간’은 이해조 선생이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수궁가’ ‘별주부전’으로 알려진 판소리 이야기를 우리글로 전환해 사람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했다는 문학사적 의미도 있지만 간 수술을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수궁가나 별주부전에서 와병 중인 용왕과 용왕을 위해 살아 있는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신하 별주부의 관점이 부각됐다면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발간된 토의 간에서는 실제 간을 제공해야 하는 토끼의 시점이 부각됐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이야기에서 토끼의 등장은 별주부의 기망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토 선생, 용궁에 가면 감홍로(한국식 전통 소주의 일종)도 있소.”
별주부의 미끼에 넘어간 토끼는 수궁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간을 내어달라는 용왕의 참요구를 듣게 되고 죽기 전 최후진술을 하라는 용왕의 말에 간을 몰래 감춰두고 왔다는 잔꾀를 발휘해 수궁을 탈출한다. 토끼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황당한 일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술이나 준다는 거짓으로 꾀어내 깊은 바닷속으로 데려갔으니 말이다.
서구에서는 1957년 이러한 내용을 ‘환자 개인의 권리와 의사의 의무’라는 윤리 기준으로 확립했다. 의학적 치료를 시행하기 전에 그것의 목적과 기대하는 바, 합병증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후 진행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지금도 연구자들은 임상시험에 앞서 충분한 설명 후 피험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이를 ‘사전 동의(informed consent)’라는 학술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사전 동의는 가끔 매우 가혹하다. 간 수술을 하는 의사는 본인을 찾아온 환자에게 ‘당신은 수술 중 죽을 수 있고 수술 후 간부전에 빠질 수도 있으며 이러저러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거나 ‘당신의 암은 재발할 수 있으니 수술을 하기 싫으면 굳이 하지 말라’는 설명을 해야 한다. 흔히 은행에서 적금이나 보험을 가입할 때 깨알같이 쓰인 방대한 글을 절반도 채 읽지 않고 전부 이해했다고 동의하지 않나. 나의 무모한 설명은 살고자 하는 환자의 귀에 전혀 꽂히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환자를 위한 설명이 아니라 내가 이것을 이행했다는 법적인 보호 장치일 뿐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 된다. 물론 아무리 불편해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절차이며 나뿐 아니라 나와 함께 수술에 참여하는 사람을 위한 보호 장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부작용을 나열하느라 자칫 차갑게 여겨질 수 있는 설명 끝에 내가 진짜 건네고 싶은 것은 두려움에 떠는 환자의 손을 맞잡는 온기 섞인 확신이다. 환자를 살리고자 외과 의사가 됐기에 나는 담대하면서도 따뜻하던 스승의 목소리를 몰래 도용해 항상 마지막은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수술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수술을 잘하겠습니다.”
번외로 이 이야기의 결말은 구전되는 이야기나 판소리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토끼가 자신의 똥을 간이라 속여 자라에게 줬는데 그 똥을 달여 먹고 용왕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부터 결국 용왕은 병사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업무 실패에 자책한 별주부가 자결을 시도하려는 찰나 화타가 나타나서 준 명약으로 용왕이 살아났다는 이야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구두로 전해진다. 마치 모든 가능성을 설명해야 하는 사전 동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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