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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창] 퇴직연금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

■김민태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부장

김민태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부장




퇴직연금은 오랫동안 ‘안전하게만 운용하면 되는 자산’으로 인식돼 왔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낮은 상품에 맡겨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이 가장 큰 위험이 되는 순간에 우리는 이미 들어섰다.

DC와 IRP는 운용 성과가 곧 개인의 퇴직 자산으로 연결되는 제도다. 가입자는 스스로 자산 배분을 결정하고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제도는 ‘운용을 전제로 한 연금’이지만 실제 운용은 여전히 안전자산 중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실제 데이터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국내 DC형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69%, IRP 적립금의 약 60%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집중돼 있다. 장기 자산임에도 상당 부분이 단기 금리형 상품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운용 방식이 특히 취약해지는 지점이 바로 인플레이션과 수명 연장이다. 인플레이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의 구매력을 잠식한다. 연 2~3%의 물가 상승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원금이 유지돼도 실제 생활 수준은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여기에 평균 수명 연장은 연금 자산 사용 기간을 늘린다. 은퇴 이후 20년 이상 자산을 써야 하는 구조에서 실질 성장이 없는 운용은 자산 고갈 위험을 키운다.



해외 연금 선진국들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 설계 단계부터 반영해 왔다. 미국의 401(k)는 주식형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생애주기형 펀드(TDF)를 중심으로 운용된다. 다수 가입자는 TDF를 기본 선택지로 활용하며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위험자산 비중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구조를 따른다. 이는 연금 자산을 단기 금리 환경이 아닌 장기 성장 경로에 올려두기 위한 설계다.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은 DC형 연금을 의무화한 제도로, 자산 운용에서 더욱 적극적이다. 다수의 슈퍼 기금은 주식, 인프라, 부동산, 사모투자 등 대체자산을 포함한 성장자산 포트폴리오를 기본으로 운용한다. 실물자산은 물가 방어력과 장기 현금흐름을 동시에 제공한다. 핵심은 단기 수익률이 아니라 물가와 수명 리스크를 고려한 장기 실질 수익률 관리다.

이 같은 관점은 투자 전문가들의 조언과도 맞닿아 있다. 피터 린치는 “투자에서 가장 큰 위험은 변동성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했다. 연금처럼 긴 시간을 가진 자산일수록 단기 안정성보다 구조와 전략이 중요하다.

DC와 IRP의 성과는 은퇴 직전에 갑자기 결정되지 않는다. 지금의 운용 관점이 이미 미래의 노후 소득을 좌우하고 있다. 가장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가장 위험해질 수 있는 지금 DC와 IRP 운용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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