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릴리가 약 150년간 축적한 방대한 의약품 데이터와 과학적 지식을 엔비디아의 컴퓨팅 파워, 인공지능(AI) 모델 구축과 결합하면 신약 개발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스타트업과 같은 환경에 모아놓고 두 기업이 단독으로는 달성할 수 없었던 혁신적인 성과를 창출할 것입니다.”
데이비드 A 릭스 일라이릴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 개막일인 12일(현지 시간) 엔비디아와 AI 공동 혁신 연구소 설립을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글로벌 제약사 시가총액 1위인 일라이릴리와 AI 인프라 분야의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는 이 연구소에 5년간 최대 10억 달러(약 1조 4600억 원)를 투자해 AI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연구소는 올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설립될 예정이다. 일라이릴리의 생물학·의학 전문가들과 엔비디아의 AI 개발자들이 이곳에서 함께 근무하게 된다.
엔비디아가 이달 초 공개한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과 신약 개발 플랫폼 ‘바이오니모’를 활용해 대규모 데이터를 생성하고 신약 개발을 가속화할 AI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양 사 협력의 핵심이다. 컴퓨터와 AI를 활용한 ‘드라이랩(Dry Lab)’과 생물·화학 실험이 이뤄지는 ‘웨트랩(Wet Lab)’의 연결인 셈이다. 드라이랩에서 AI로 신약 타깃을 발굴하고 구조와 결합력 등을 예측하면 웨트랩에서 실제 물질을 합성하고 독성과 약효 등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웨트랩과 드라이랩의 분리는 AI 신약 개발에서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AI가 발굴한 신약은 이론상 ‘완벽한 레시피’에 가깝지만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 AI가 발굴한 신약을 물질로 구현해 실제 개발 가능성이 있는지는 결국 웨트랩에서 확인하고 그 결과를 다시 AI 학습에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드라이랩이 정보기술(IT) 조직이라면 웨트랩은 생물학·화학 조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유기적인 연결을 어렵게 한다. 드라이랩을 대표하는 엔비디아와 웨트랩을 대표하는 일라이릴리가 뭉친 만큼 새로운 결과에 기대가 쏠린다.
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헬스케어 및 라이프사이언스 부문 부사장은 “실험실(웨트랩)에서 실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생성해 생물학 기반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이를 통해 대규모언어모델(LLM) 분야에서 이뤄진 모든 발전을 생물학 분야에 적용할 것”이라며 “릴리가 실험실과 제조 현장에서 피지컬 AI 활용을 강화하면 혁신적 변화가 일어나 높은 의약품 수요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글로벌 생명과학 기업 써모피셔사이언티픽과 AI 슈퍼컴퓨터 ‘DGX 스파크’를 활용해 자율 실험실을 구축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날 개막한 JPMHC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AI의 신약 개발 활용이었다. 제러미 멜먼 JP모건 헬스케어 투자 글로벌 공동 총괄은 개막 연설에서 “AI는 제약·바이오 업계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빅파마 최고경영자(CEO)들도 신약 개발 과정에서 AI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크리스 뵈너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CEO는 지난해 성과 중 하나로 AI 활용을 통한 비용 절감 등을 지목하면서 “올해도 연구개발(R&D) 효율화 등을 위해 AI 기술을 적극 접목하겠다”고 밝혔다. 바스 나라시만 노바티스 CEO도 “AI는 이제 타깃 최적화 등을 위한 필수 도구”라며 구글의 신약 개발 자회사 아이소모픽 랩스와의 파트너십을 소개했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 역시 올해 주요 목표로 AI의 전사적 활용을 지목하며 “지난해 AI가 비용 56억 달러를 절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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