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빼빼로데이’로 인식하는 이들이 더 많겠지만 ‘11월 11일’은 섬유의 날이다. 정부는 섬유산업이 단일 업종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한 1987년 11월 11일을 기념해 섬유의 날로 지정했다. 하지만 약 40년이 지난 지난해 섬유 수출액은 96억 달러까지 줄어들며 수출 100억 달러 시대를 마감했다. 섬유가 ‘15대 주력 수출 품목’으로서의 자리를 K뷰티나 K푸드에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K섬유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섬유 업계는 중국과 베트남 등 후발국들의 추격을 받으며 시장을 급속도로 빼앗겼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은 범용 의류용 섬유가 대부분이었던 까닭이다. 낮은 가격으로 몰아붙이는 후발국들에 밀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추락했고 수출액 역시 급감했다. 기술 투자에 소홀한 것도 섬유산업의 침체를 불러왔다. 미국과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이 고부가가치의 산업용 섬유와 친환경 섬유 등에 주력한 것과 달리 국내 섬유 업계는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의 작업에만 치중하며 기술 격차를 줄이지는 못했다. 업계에서는 첨단 섬유 분야에서 한국이 선진국 대비 3~5년 수준의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섬유산업이 위기에 몰리면서 업계의 구심점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섬산련)의 역할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개별 섬유 기업들이 각자도생의 길에서 고군분투할 때 섬산련이 산업 전체의 로드맵을 선제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 안일한 행보를 이어왔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섬산련이 보유하고 있는 ‘섬유센터’에 들어선 섬유 관련 기업은 거의 없다”며 “현재 입점한 곳들은 로펌, 증권사, 은행, 공유 오피스 등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강남 건물주로서의 역할에 더 치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 4층~지상 18층으로 구성된 섬유센터에는 섬산련 외에 ‘한국섬유수출입협회’와 ‘한국패션협회’ 정도만 입점해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업통상부 등 정부로부터의 용역이 사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업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섬유는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 미래 첨단산업으로 꼽히는 반도체나 우주항공·모빌리티에도 첨단 섬유는 필수다. 전 세계 산업이 친환경을 기조로 삼으면서 친환경 섬유에 대한 수요 또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섬산련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달 초 신년 인사회에서 이상운 명예회장이 “다시 한번 1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도약의 한 해를 올해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오 회장 역시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체질 혁신 △글로벌 진출 확대 △핵심 전략 소재·부품으로서의 역할 확대 등의 3대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섬유산업이 무너진 제조 기반을 가다듬고 첨단산업으로 재도약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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