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모델이 정부의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와 연구개발(R&D) 예산 확대를 바탕으로 올해 세계 AI 톱 10에 2개 이상은 들어갈 것이라고 봅니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구랍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지표상 한국의 AI 수준이 미국과 중국에 약 6개월 뒤지고 있다고 보는데 올해는 격차를 빠른 속도로 따라잡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AI 혁명은 인류 문명을 낳은 불의 등장이나 산업혁명을 촉발한 증기기관과 전기의 사용에 비유될 정도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피지컬 AI의 발전과 AI 전환(AX)을 위해서는 데이터·투자·인재 측면에서 국가적으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의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기자와 스타트업 대표, 안철수연구소 경영지원실장, 엠파스 부사장, KTH 부사장 등을 거쳐 현재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유럽연합(EU) 등에서 정책 결정 전 다양한 질문과 의견 수렴 과정을 담아 내놓는 일종의 대화록인 ‘녹서(綠書·Green Paper)에 착안해 녹서포럼을 이끌고 있다. .
평소 정치권과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최근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버’ 모델이 세계 5위권으로 평가되고 LG의 ‘엑사원’과 업스테이지의 ‘솔라’ 등도 세계 20위 안에 있는데 앞으로 우리 기업들의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라며 AI 도약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박 의장은 그 근거로 AI 인프라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량으로 확보한 점을 꼽았다. 우리 산학연은 2월 중국의 ‘딥시크 쇼크’ 당시 그 회사가 갖고 있던 ‘A100’ GPU의 절반도 안 되는 2만 장의 GPU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성능이 3~10배나 뛰어난 ‘블랙웰’을 26만 장이나 확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이 전년 대비 19%대나 늘어난 35조 원 이상에 달하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그는 “한국은 중국과 함께 반도체·조선·철강 등 산업 밸류체인을 모두 갖춘 유이한 나라인 데다 자체 포털을 갖고 거대 데이터를 분산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4개국 중 하나”라며 “미중 패권 전쟁에 따른 세계 공급망 분리가 없었다면 중국에 치어 굉장히 힘든 국면을 맞았을 텐데 이제는 서방에서 밸류체인을 가진 유일한 나라가 됐다”고 평가했다. 휴머노이드·로봇·자율주행·드론 등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를 발전시키려면 산업 데이터가 필요한데 오픈AI와 구글 등 미국 빅테크의 선택지가 한국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박 의장은 AI 도약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시대와 맞지 않는 법·제도·관행을 과감히 바꾸지 않고서는 자칫 살아남기 힘들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피지컬 AI 발전과 AX 확산을 위한 데이터·돈·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며 “시대와 불화하는 법과 제도를 신속히 고치겠다는 의지와 산학연정의 협업 생태계 구축, 충분한 양의 자본 투입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의장은 명확한 저작권 표기와 사생활 침해 우려 해소 노력을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춰 AI 데이터 관련 법·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갈수록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피지컬 AI를 위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도록 경직된 법·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잇따라 데이터 공장을 개소하는 등 양질의 데이터 확보에 나서는 노력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의장은 “중소 제조 업체의 경우 피지컬 AI 투자 여력이 부족한 데다 현장의 데이터를 디지털로 변환하지 않고 AI 전환 인력도 마땅치 않다”며 “산업은행·벤처캐피털(VC)·사모펀드(PEF)가 함께 투자에 나서 모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이던 시절의 스마트공장 3만 개 육성 전략처럼 숫자 채우기 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산학연 등 지역 생태계를 살린다는 관점으로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박 의장은 “AI와 정보기술(IT) 정책의 경우 대부분 범부처 이슈가 많은데 부처마다 칸막이가 높아 협력이 잘 안된다"며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순환보직으로 1년마다 바뀌어 전문성이 전혀 쌓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제 같은 고시 출신 중심에서 벗어나 미국의 디지털서비스국(USDS)과 영국의 정부디지털서비스(GDS)처럼 민간 전문가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갖춰야 정책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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