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체국 택배를 가득 실은 화물트럭이 라이트를 켠 채 심야 고속도로를 달린다. 도심 진입을 앞두고 톨게이트 부근에서 정체가 시작되자 트럭은 스스로 속도를 줄인다. 물류센터 인근 나들목에 이르러서는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을 변경한 뒤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당연히 화물트럭 기사가 운전대를 잡고 있을 것 같지만, 운전석은 비어 있다. 이 트럭은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주행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를 주행했다.
# 운전석을 비운 제네시스 GV80 차량이 도심을 누비고 있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차량은 자동으로 멈춰 서고, 교차로에서는 신호 흐름과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읽은 뒤 부드럽게 출발한다. 차로가 좁아지거나 불법 주정차 차량이 나타나도 차량은 스스로 판단해 진로를 바꾼다. 운전석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주행은 자연스럽다.
이는 국내 자율주행 기업인 '마스오토'와 '라이드플럭스'가 실제 수행하고 있는 자율주행 테스트 사례다. 운전석을 비우긴 했지만, 아직 보조석이나 뒷자리에는 사람이 타고 감독하는 역할은 하고 있다. 두 업체는 조만간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완전히 사람을 태우지 않고 테스트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7년에는 완전 무인 자율주행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다.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수준을 뜻하는 '레벨4' 기술 개발이 활발한 분야는 화물트럭 등 서비스 차량 분야다. 차량들이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만큼 자율주행 장치 도입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고, 운전기사 고령화 등으로 인한 운전기사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술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어서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화물트럭 운수 종사자 평균연령은 52.3세, 50대 이상 비중은 62%에 달한다.
저렴한 도입 비용 ‘E2E’·안정성 높인 ‘모듈형’ 주도권 경쟁
최근 자율주행 업계의 최대 화두는 기술 구현 방식인 'E2E(엔드투엔드)'와 '모듈형' 간 경쟁이다. E2E는 단일 신경망 모델이 대량의 주행 데이터를 학습해 인지·판단·제어 등 자율주행 전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수행한다. 주로 비전 기술을 담당하는 카메라와 인공지능(AI)에 의존해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경우다. 모듈형은 인지·판단·제어로 분리된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수행하고 각 모듈을 통합하는 방식이다. 카메라뿐 아니라 라이다(LiDAR), 레이더 등 다양한 유형의 인지 센서 데이터를 활용한다. E2E와 모듈형을 추구하는 각각의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테슬라와 구글의 웨이모를 꼽을 수 있다.
E2E 방식은 카메라와 제어 장치만 차량에 탑재하면 구현할 수 있어 도입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자율주행 시스템 제공 기업이 대규모 컴퓨팅 파워와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모듈형 방식은 다양한 센서와 장비를 적용하는 만큼 주행 안정성이 높다는 강점이 있지만, 라이다(LiDAR) 등 고가 센서 활용으로 차량당 도입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최근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E2E 방식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복잡한 주행 상황에 대한 인지 및 판단 성능이 향상되면서 E2E 방식의 구조적 한계로 지적돼 왔던 데이터·연산 부담 역시 점차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마스오토와 무인 자율주행 상용화 프로젝트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공승현 KAIST 조천식모빌리티대학원 교수는 "카메라나 라이다, 레이더 등 센서가 많을 수록 자율주행 기술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도입 가격과 관리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기업들이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마스오토, 1000만km 주행 데이터로 AI 트럭 시대 연다
자율주행 기술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행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효과적인 AI와 소프트웨어(SW) 기술력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트럭 등 대형 상업용 차량 자율주행 시장에서는 마스오토와 라이드플럭스가 다양한 실증 사업 등을 진행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트럭 자율주행은 아직 세계적으로도 뚜렷한 강자가 없는 만큼 국내 기업들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2017년 설립된 마스오토는 그동안 약 1000만㎞의 주행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는 미국 트럭 자율주행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오로라', '코디악' 등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마스오토가 이처럼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형트럭에 부착한 카메라 기반 데이터 수집장치 '마스박스'덕분이다. 마스박스는 화물운송 트럭에 부착하는 카메라 기반 데이터 수집장치다. 마스오토는 이를 통해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해당 차량을 운행하는 화물기업은 각 트럭의 위치와 주행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마스오토는 전체 데이터 중 200만㎞는 자체 자율주행 화물트럭 5대로 확보, 나머지 800만㎞는 외부 트럭 200대에 부착된 마스박스로 수집했다.
노제경 마스오토 부대표는 "우리는 카메라 기반 E2E 방식으로 트럭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규모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확보해 강력한 자율주행 AI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제경 부대표는 "1억km의 주행 데이터와 그래픽처리장치(GPU) 1000장 이상을 확보한다면 우리가 목표로 한 고속도로에서의 트럭 자율주행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스오토는 단기적으로 고속도로에서의 트럭 자율주행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현재의 인프라와 기술력으로 가장 빠르게 상용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를 실현한 이후 자율주행 트럭이 도심에서도 운행할 수 있도록 고도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라이드플럭스, 무인 화물·여객 고속도로 넘어 도심서도 주행
라이드플럭스는 현재 모듈형 방식으로 트럭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카메라뿐 아니라 라이다, 레이더 등 다양한 센서를 활용해 높은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기술 도입 비용이 높긴 하지만 상업용 차량인 만큼 투자대비수익율(ROI)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라이드플럭스는 최근 제주특별자치도 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제주도 내에서 제주삼다수 유상 운송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라이드플럭스의 강점은 고속도로뿐 아니라 도심에서도 자율주행 화물트럭이 운행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라이드플럭스는 국내 최초 무인 자율주행 임시운행 허가를 획득하고, 서울 상암동에서 운전석에 안전요원이 없는 자율주행 운행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안전요원은 조수석에 타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개입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4만 5000km를 주행했으며, 시간은 2300시간이다. 그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나지 않았다. 라이드플럭스는 향후 해당 성과를 바탕으로 안전요원 없이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도 정부와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정하욱 라이드플럭스 부대표는 "택시와 버스, 화물트럭 등 국내에서 가장 넓고 다양한 모빌리티 분야 자율주행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무인화 기술력과 기술 확장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 전체의 다양한 이동을 무인 자율주행으로 혁신해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내일의 이동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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