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흥국생명이 법적 조치를 포함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자신들이 써낸 입찰가가 매각 측에 의해 유출됐고 이 정보를 취득한 경쟁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입찰가를 높여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따냈다는 것이다. 힐하우스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할지 여부도 주목받는 상황에서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 매각전이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끝난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본입찰 이후 주관사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에 입찰가를 재차 높여줄 수 있는지 직간접적 경로를 통해 문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쟁입찰 방식의 인수합병(M&A) 거래에서 매각 측이 최고가 입찰자 외 다른 후보자에게 가격을 다시 높이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레시브 딜’의 일환이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매각 측은 본입찰을 앞두고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면서 “우협 발표를 미루더니 힐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하고 인수 희망가를 본입찰 최고가 이상으로 올려줄 것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관사 측으로부터 본입찰 때 최종 가격을 내야 한다는 확답을 받고 본입찰 당시 최고가를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이지스운용 매각 측은 이달 8일 우협 대상자로 1조 1000억 원을 써낸 힐하우스를 선정했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본입찰 당시 최고가를 써낸 입찰자는 실제 흥국생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입찰 후 매각 주관사들이 입찰가를 올리기 위해 물밑에서 재차 경쟁을 유도했는데 그 결과 힐하우스가 가격을 높였고 인수전에서 승리했다는 게 업계와 흥국생명의 지적이다.
흥국생명은 “힐하우스의 우협 선정은 한국 부동산 플랫폼을 노린 중국계 사모펀드(PEF)와 거액의 성과급에 눈먼 외국계 주관사가 공모해 만든 합작품”이라고 거친 표현도 쏟아냈다. 또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스운용 우협 선정을 둘러싼 논란이 고조되면서 해외 PEF의 국내 최대 부동산 운용사 인수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국내 금융회사를 인수하려면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당국은 인수 자금 출처와 금융시장 안정성·공익성 등을 고려해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고 있다. 힐하우스는 중국 허난성 출신인 장레이 씨가 설립한 글로벌 PEF다. 장 씨는 중국 인민대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뒤 예일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고 텐센트·징둥닷컴 등 중국 빅테크 투자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일각에서는 힐하우스가 최근 일본 부동산 운용업에 진출한 사실에 주목했다. 힐하우스는 지난해 자회사 라바파트너스를 통해 일본 최대 종합 부동산그룹인 샘티홀딩스를 품었다. 이번 이지스운용 인수전에도 샘티를 인수 주체로 내세웠는데 한일 양국에서 부동산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으로 전해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본이 한일 부동산 운용사를 석권할 시 동아시아 시장 전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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