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한미 투자협상이 타결됐지만 환율은 유의미하게 하락하지 못했다. 배경은 먼저 각국의 협상 결과 해석에 있다. 7월 말 최초 합의 당시 우리 정부 구상에서 현금투자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했지만, 미국은 일본과의 합의 이후 전액 현금·선불을 압박했고 정부는 총 3500억 달러의 20%를 10년 간 분할해 연 70억 달러 상한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미국 요구에 가까운 연 200억 달러 상한 및 총 2000억 달러 현금투자로 타결됐다. 최악은 피했지만 외환시장은 우려와 부담이 크다. 미국과 협상에서 선방한 유로화·위안화는 강세이나 엔화·원화는 약세를 보였다. 세부적으로도 150억 달러를 해외자산 운용수익으로 충당하면 외환보유고는 10년 간 유의미하게 늘지 않고, 50억 달러는 기금채 등을 통한 추가 조달이 불가피하다.
대외적으로 원화는 최근 엔화에 연동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과거엔 위안화의 프록시(대체물)로 움직였지만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대미 관세협상 구도, 중국 의존도 축소, 미국 시장 내 수출경합도 영향으로 엔화 연동성이 커졌다. 일본에서 10월 다카이치 총리 취임 후 ‘아베노믹스’ 계승 전망 속 확장적 재정·완화적 통화정책 기대가 형성되며 엔화 약세와 장기금리 상승이 이어졌고, 원화도 동반 약세에 노출됐다.
구조적 수급 부담은 내국인 해외투자 증가다. 한국은 2014년 3분기부터 순대외금융자산이 플러스 영역에 들어섰고 지난해 4분기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2분기 GDP 대비 비율은 55.7%에 이르렀다. 특히 2020년 이후 미국 중심의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했는데, 올해 10월 개인 순매수는 68억 달러로 사상 최대이며 연간 누적 약 239억 달러다. 법인·금융기관을 포함하면 1~9월 해외주식 순매수는 718억 달러로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 828억 달러를 거의 상쇄한다.
이 구조는 장단이 공존한다. 대외지급능력은 양호해 외환위기 우려는 없지만 순대외자산이 외환보유고·금융기관에서 개인·연기금 등 민간으로 이동해 원화 약세 압력에 더 노출된다. 수출기업도 달러 보유 수요가 커져 환전을 꺼린다.
결론적으로 환율은 구조적 불리함에도 추가 상승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의지, 일본은행의 12월 금리 인상 시사로 엔화 가치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급 부담 완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연기금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방안을 추진 중이며 국민연금·한국은행 통화스왑(650억 달러)도 연장될 전망이다. 정책금융 제도와 증권사 해외투자 점검을 통해 과도한 달러 수요도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한국 경제전망 개선으로 내년 미국과 성장 격차가 축소될 전망이다. 양국 주식시장 성과와 금리차 축소 등 자산시장 측면에서도 원화 회복이 지지된다. 내년 4~11월 시행되는 글로벌 대표 채권지수 WGBI 편입도 호재다. 향후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추진 등 금융시장 투자여건 개선과 외국인 자금 유입 확대를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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