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대 도시 시드니의 교통 허브인 센트럴역.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센트럴역에서는 ‘마리융’이라고 적힌 2층 전동차를 만날 수 있었다. 4량짜리 두 대의 열차가 한 편성을 이뤄 운행하는 이 열차는 현대로템(064350)이 창원공장에서 제작해 납품한 ‘마리융(Mariyung)’ 2층 전동차다.
마리융은 시드니 지역 원주민 다루그족의 원어로 호주의 국조(國鳥)인 에뮤를 부르는 말이다.
이 열차는 현대로템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와 총 610량 규모의 NIF(New Intercity Fleet, 신형 도시간 열차) 공급 계약을 맺고 올 6월 납품을 마친 최신형 전동차다. 프로젝트의 규모는 호주에서 나온 단일 철도 프로젝트 중 2위에 해당하는 1조 6000억 원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시드니 북부로 이어지는 센트럴 코스트&뉴캐슬 노선에 처음 투입됐고 10월에는 시드니 서부로 향하는 블루마운틴 노선에서도 운행이 시작됐다. 내년 1분기에는 시드니 남부행 사우스 코스트 노선에도 투입되며 시드니 시민들의 발이 돼 줄 예정이다.
이날 센트럴역에서 터거라역까지 98㎞를 1시간 30분 동안 타 본 NIF 열차에서도 다른 열차보다 섬세하게 설계된 교통약자 배려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불편함이 없는 승객들은 1·2층을 선택해 탑승할 수 있게 한 동시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노약자, 자전거 이용자는 출입문 바로 옆 전용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휠체어를 탄 승객이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문 폭을 넓혔고 만약 쓰러지더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벽과 바닥에 비상벨을 하나씩 구비했다. 세면대 옆에는 주삿바늘을 안전하게 버릴 수 있는 의료용 폐기물 수거함도 설치했다.
이러한 교통약자 배려 전용 설계는 철도 수출 이력 경쟁력이 한참이나 뒤처졌던 현대로템이 중국의 중국중차나 프랑스의 알스톰을 제치고 1조 6000억 원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한 핵심 전략이었다. 철도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벗어나 글로벌 진출이 필수였지만 이미 프랑스,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철도 톱티어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해외 수출 경험이 없다시피 한 현대로템이 해외에서 대규모 수주를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은 부족한 글로벌 사업 경험을 ‘맞춤형 설계’ 전략으로 정면 돌파했다. 호주는 전체 인구 중 장애인의 비율이 20%가 넘는 국가라 장애인 친화적 열차에 대한 요구가 매우 컸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국가 문화와도 맞물리며 현지 시행청은 교통 약자를 포함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특수한 설계를 업체들에게 요청했다.
프랑스의 알스톰과 중국의 중국중차 같은 경쟁사들은 호주 정부의 이러한 요청에 난색을 표했지만 현대로템은 최대한 현지 피드백을 설계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대로템은 초주 철도 유지보수 업체인 UGL, 전장부품 담당 기업인 미쓰비시전기호주(MEA)와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13개월 동안 시각·청각 등 각 유형의 장애인 단체와 노인 협회, 기관사 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들과 215회의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를 통해 이뤄진 수정 사항은 2871건에 달했다.
이해관계자 협의에 참여했던 호주 척수장애인협회 소속 그레그 킬레인(63) 씨는 “오래된 열차일수록 승객이 잡도록 한 기둥이 많아 휠체어로 이동이 어렵지만 기둥이 거의 없도록 설계돼 휠체어를 타고도 편하게 탑승할 수 있다”며 “NIF 열차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10점이고 실제 규모의 시제품(목업)까지 만들어 우리의 의견을 들어줘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은 열차에서 취재진과 만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설계를 거쳐 열차를 완성했고 이 프로젝트를 토대로 모로코와 퀸즈랜드에서 추가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며 “호주에서 좋은 평판을 쌓아가며 K-철도의 품격을 보여준 훌륭한 차량”이라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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