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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 완화 움직임에 공정위원장 “최후의 카드”[Pick코노미]

주병기 공정위원장, 출입기자단과 기자간담회

첨단전략산업 투자 해법에 “금산분리 아닌 다른 대안부터 먼저”

주병기 “대기업, 본업에 충실해야"

"금산분리, 수십년 된 규제 체계…민원 때문에 못 바꾼다"

지주회사의 GP 허용도 반대

연말 최대 정책 이슈로…부처 간 조율 난항 불가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둘러싸고 금산분리 규제 완화 여부가 연말 정부 정책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첨단전략산업 투자 촉진을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대통령실과 경제부처와 달리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를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 없다”며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신중 의사를 밝힌 만큼 관계부처 논의 과정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략산업 육성이라는 정책적 명분과 금융·산업 분리라는 원칙론이 충돌하며 정책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수십 년 된 금산분리 규제를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설 투자를 이어가기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이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대통령은 10월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인공지능(AI) 투자 규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재계에서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자본 규제와 지주 손자회사 투자 제한 등이 해소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주 위원장은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다”면서도 “사회적 합의로 이뤄져야 할 논의가 너무 한쪽 측면의 민원성 논의로 이뤄지고 있어 상당히 불만”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금산분리 불가’ 쪽에 기운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금산분리가 아니라 첨단전략산업 부문에 대한 투자 활성화”라고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이어 “금산분리 규제가 실효성이 없었다는 지적은 그 규제가 없어져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며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규제가 훨씬 더 강화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해 작심 발언을 쏟아내자 재계에서는 “예상보다 수위가 세 놀랐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국내 한 대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23일 “주 위원장의 발언이 용산과 어느 정도 수준에서 교감이 이뤄진 것인지 알아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경제 검찰’로 통하는 공정위가 대기업 전반에 대해 “규제가 더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향후 금산분리를 비롯한 각종 규제 완화 논의가 힘을 잃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공정위와 기획재정부·산업통상부 등 관계 부처는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의 금산분리 완화 검토 지시 이후 전략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밤을 새서라도 금산분리를 논의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 위원장이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위해 다른 대안을 먼저 고려하고 정 다른 방법이 없다면 금산분리 완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라고 밝히면서 입법 등 후속 논의 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경제력 집중이나 독과점 폐해는 아직도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며 “금융기관을 통한 산업 부문의 지배력 확장 문제,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상존하는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금산분리 완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이 펀드 위탁운용사(GP)를 보유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나 손자회사 지분 규제(손자회사가 기업 인수합병(M&A)을 할 때 반드시 지분 100%를 매입) 완화 등은 모두 기업 거버넌스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책들이다.

주 위원장의 기업관에 대해서도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연구개발(R&D) 혁신을 계속하는 것이 기업의 본분인데 전략산업 분야에서 잘나가는 기업들은 이런 투자를 잘해왔지만 주요 기업이 규제 탓만 하고 투자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본업인 제조업에 투자하기보다 대기업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면서 벤처투자 등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기업들이 투자회사를 만들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여기저기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혁신기업에 투자할 때는 자본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미래 기술을 선점하려는 포석도 있다”며 “기업 투자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주 위원장은 이날 지주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제한과 지주사의 GP 보유에 대해서도 모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총수 일가의 경영 참여에 대한 반감도 드러냈다. 주 위원장은 최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대기업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내놓은 것을 두고 “지금까지 규제를 통해 총수 일가의 잘못된 경영 참여 등 문제를 해결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최 회장이 말했듯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공시 대상을 줄여달라고 하는데 오히려 확대돼야 한다”며 “총수 일가가 다른 목적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숙제”라고 일축했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대기업의 사익 편취 규제 회피 방지를 위해 규제 대상 지분율(총수 일가 20% 이상 등)을 판단할 때 발행주식 총수에서 자사주를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중복 상장을 억제하기 위해 30%인 상장회사 의무 지분율을 신규 상장할 경우 일반 지주회사와 마찬가지로 50%를 적용하는 방식도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주 위원장은 공정위는 CVC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전향적 입장을 보여 규제 완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CVC는 외부자금 조달 비율이 40%로 낮은 데다 해외투자 한도도 20%로 규제가 강한 편이라 활용도가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주 위원장은 "CVC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개선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혀 지분 요건과 외부 자금 비중 등 요건에 대한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CVC 외부 자금 조달 비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고 해외 투자 한도도 20%에서 30% 상향하는 안에 대해 공정위도 반대하지 않아 조만간 CVC 규제 완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공정위는 금산분리 완화가 최후의 카드라고 언급하며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지 않은 만큼 관계 부처 논의 과정에서 금산분리 완화 방안이 일부 도출될 수 있다. 주 위원장도 “특정 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모든 전략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관계 부처와 업계와 충분히 소통해서 마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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